이방인

2019 가을 지읒시옷 콘서트

by 레아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1030224001_1_filter.jpeg


아침마다 우루사 광고를 보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난다.

언젠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우루사를 건네기도 했다.

우루사 광고 모델은 지읒시옷 님.

팩트입니까.

시옷시옷 아나 고정멘트처럼 묵직하다.


지난해 시월 지읒시옷 님 콘서트에서는

우루사 대웅 제약의 사은품이 제공됐다.

노란 봉투 안에 홍삼과 마스크, 야광시계 등이

들어 있었다. 우루사 하면 예전엔 곰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지읒시옷 님 이미지가 겹쳐 웃는다.

쉽사리 지칠 것 같지 않은 꾸준함의 상징으로

에너제틱한 도전자로

그가 떠오른다. 그리고 '멋'있는 사람으로.



가을이 오니 예전 가을 콘서트가 떠올랐다.

이방인 프로젝트를 위해 가수는 출국하기 전이었고,

관객들은 그를 보러 올림픽공원 공연장에 모였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낯선 이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면

모르는 이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껴 신이 난다.


어딘가로

끝없이 달려가는 가수의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를 응원하는 관객.

일찌감치 앞자리를 끊은 터라

우측 무대 시선이 좋은 자리에 앉았다.

혼자 간 콘서트. 내 오른쪽도, 왼쪽도 혼자였다.

지읒시옷님 공연은 홀로 보는 사람 비중이

높은 편이다.

공연 때 어디선가 훌쩍이는 비율조차도,

눈짐작으로 꼭 몇 명은 있고 나도 그랬다.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혼자 보게 되는

콘서트. 그러다 보니 추억이 극단적이다.

너무 사랑했거나 외롭거나.

과거 관람의 기억 거리가 멀다.


노래가 주는 울림과

그 노래에 실려오는 기억들 때문에

대놓고 감성적이 되는 시간.

그 자체를 믿고 오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오른쪽 혼자 온 분은

런워이 모델처럼 스타일리시하게 밝은 색으로

슈트를 입고 한쪽 허리에 파우치를 낀 분이었고

왼쪽 분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안경 낀 학생이었다.

둘 다 관람 매너를 갖춘 듯 했다.

미드와 고전흑백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관객이었다.

공연장은 번잡했으나 그들은 섬처럼 고요했다.

그 분위기에 나도 사진이라든가 영상촬영,

튀는 환호는 자제하고 온전히 노래에 집중.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른 때에는 소리를 지르는 편이지만

그날은 양 옆 기운에 눌리었다.

가끔 노래도 따라 부르고도 싶었지만

폐를 끼칠까봐 조용히 관람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5호선 올림픽공원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고개를 돌렸는데

걷는 속도가 비슷했던 것인지

공연이 끝나고 머문 시간이 나처럼 길었던 것인지

옆자리 한 관객이 노약자석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책을 꺼내고 있었다.

요새는 지하철에서 폰이 아닌 책을 읽으면

약간 예스러운 느낌에 눈길이 가고

동질감도 느낀다.

원래는 신문에 그런 맘을 느꼈는데

이젠 신문 독자는 거의 0%.

(공연장 대기실이나 백스테이지 같은 곳에서도

나는 책을 읽고 있는 스태프나 출연진을 보면

눈길이 가는 버릇이 있다.

무슨 책인지 굳이 묻진 않아도

그가 들고 있던 책들로 기억되는 이들이 있다.)

오호선 전동차 관객이 꺼낸 책은

무슨 책인지 궁금해졌다가,

이내 딴 생각에 빠졌다.


지읒시옷님 공연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일 년에 한 번씩

예전에는 몇 년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거의 출근 도장을 찍으며

그곳에 오는 이들에게 관심이 간다.

콘서트장에 왔다가 뿔뿔이 헤어지지만

아마 서로 닮은 사람들일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느다란 취향 서클을 그려본다.


그 기억은 아주 오래 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가는데

밀레니엄을 앞둔 해, 대학로 소극장 앞.

지읒시옷님 콘서트장 앞에서

줄 선 사람들 무리에서

어느 분이 독서를 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포즈가 조각처럼

신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다소 번잡한 대학로 골목 길에서

가수의 콘서트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던 관객.

나는 그 표지를 보았고

그 제목에 반했다. 그 길은 소극장들이

밀집한 길로 한 건물 건너 한건물이

모두 극장이고

골목 끝에는

죽기 전 꼭 읽어야할 책 시리즈를 내는

북카페도 있다.

넓지 않은 야외 로비 길목,

김광석 흔적이 있는 극장 길에서 콘서트 시작 전

그 어느 관객은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 보았는지 기억은 희미하나,

그때의 책 제목을 외웠다.


'바다'가 들어가는 긴 제목의 책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가 포털 메일의

아이디를 그 이름으로 바꾸었고

또 시간이 십 년이 흘러

대학로 오래된 호프집에서

어느 분에게

메일 아이디가 책 제목이더군요,

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잊고 지내다 떠올랐던 또 그날의 풍경.

그분은 출판사 대표님이었는데

자신의 친구가 쓴 소설이라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인데 발견하고 놀랐다며

반가워했다.


지금도 그 책을 직접 읽진 않았는데

대학로 어느 토요일 오후

신비롭고 평화롭던 느낌을

그저 담아두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늘 언제라도 바다를 갈 수 있는 것만 같은 마음.

어느 자리에서라도 불쑥 여행자가 되고픈 기억.

우아한 독서가와 콘서트 입구.

그런 게

그때의 지읒시옷님 관객의 책 읽는 풍경과 함께

떠오른다.


이제는 아이디에 의미를 두거나

늘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나이가

지난 것 같다가도

여느 공연장에서는 어릴 시절 나를 만나게 된다.


이방인이 되고 싶던 어느 계절의 나도

윤종신 이방인 콘서트를 보며 그리웠더랬다.


아마도 이런 자기심취, 그리움 놀이에 잠긴 이들이

지읒시옷님 노래의 방문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만나고픈 이방인.


사진은 마지막에 가수가 인사하고 떠날 때

한 장 남겼다.

이마저도 고요하던

양 옆 관객님들에게는 민폐였을 것이다.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