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무용

극장의 위로

by 레아

낯선 사람과 이질적인 공간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대상들,

어쩌면 지금 내가 존재하는 세계에 강렬한 호의를 느낄 수 있다.

연 없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어지는 감정의 교류.

굳이 성선설을 믿지 않더라도,

이토록 비슷한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동일하지는 않지만)

엇비슷한 고민과 감정들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위로 또는 위안.


내가 그 위로를 받은 게 극장이었다. 특히 무용이 강렬했다.

친구가 예약해준 초대표 덕분에

현대무용을 처음 관람한 적이 있다.

이전에도 일적으로 무용수들의 군입대 관련 아이템을 취재한 적이 있어,

극장에 가 공연을 보고 인터뷰이를 만난 적이 있지만,

그땐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편하지 않던 시기였다.

어두컴컴한 자리, 문 앞에서 카메라를 잡은 선배와 나란히 서서 공연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렇게 무용은 그저 일적으로나 가끔 만나는, 어떤 동떨어진 세계의 대상이라고 여겼다.

그저 막연하게 안무가들에 대한 직업적 동경은 갖고 있었다.

연인과 나누는 평범한 대화 속에서,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나, 어떤 직업을 갖게 될까.

이런 미래 얘기를 나눌 때 나오는 소재로 말이다.

만일 내가 엄마가 되어 아들을 낳는다면,

무용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딸을 낳는다면 다큐멘터리 감독이나 피디가 되도록 해야지 그런 생각도 했다.

지금은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무용을 공부하는 아들을 둔 엄마가 되지 못했지만,

서른 즈음엔 그렇게 현대무용이나 교양(고발) 다큐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무용은 여러 예술 장르가 혼합되어 열린 사고가 가능한 매체로 보였고,

다큐는 어떤 한 세계를 깊이 파헤치는 전투적인 장르라 생각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와 달리, 견고한 성 안에 사는 듯한 무용 관계자도 보았고,

전투적이다 못해 너무 폐쇄적인 다큐 관계자도 보았고,

사회가 그렇게 내가 기대한 바처럼 단선적이지 않고,

내게 호락호락하지도 않을 뿐더러

나도 계속 변해 왔다.

사람은 매체 영향을 받지만 또 다른 환경적 영향이나 애초의 성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것을 그즈음엔 몰랐나 보다.

가끔 내가 품었던 환상을 그리움처럼 떠올려볼 때면,

그렇게 어린 사고를 지녔기에 좀 더 세상에 열려 있지 않았던가 싶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 변할 수 있는 여지를 품고서,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보거나 단순하게 파악하지 말자고 돌아보곤 한다.

그래도 그 와중에, 무용이라는 장르를 먼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

친구가 준 무용 초대 표 한 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그때 받은 감동이나 충격은,

고 안성기 배우님의 영원한 카피,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마시고 싶습니다"처럼

누구에게라도 함께 보자고 권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그 안에는 어릴 적 경험해온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

인간관계, 감정의 소요 등 온갖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있었다.

특정한 언어가 없어도 말 없이 전달되는 것들이 더 많은 말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의 언어가 주는 다의적인 면에 금세 매료되었다.


처음 봤던 작품은 독일 피나 바우쉬 안무가의 내한 공연이었고,

독일 문학을 좋아하며 느꼈던 인간의 근원적 고독감이나 섬세함이

고스란히 그 무대에 펼쳐지고 있다고 느꼈다.

10대부터 20대까지 남산과 용산 도서관, 독일문화원 사이를 오가며 책을 읽던 그 자리를

안무가와 무용수, 여타 스태프들이 그대로 시각적으로 펼쳐져 보여줬다.


무용 한 편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읽던 시집과 소설책, 과거 친구, 선생님,

지금의 고민 ... 이런 것들이 둥둥 떠올랐다.

공연을 보며 스스로 삶의 질문을 던졌다.

뿌옇게만 느꼈던 인간의 감정을 조명과 의상, 음악, 무대 디자인을 배경으로 몸의 언어로 알려주니,

나름의 답안도 얻어갔다. 마치 산파술처럼.


또 놀라웠던 점은,

무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순간,

동시에 눈앞에서 형상은 사라지고 있었다.

기록을 한다치더라도 저때의 찰나를 담아놓을 수 있을까.

카메라로 촬영을 하더라도 이미 렌즈를 거르고 시간차가 생겨버리는 저 장면을 고스란히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딱 그 순간, 폭발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찰나를 나는 무용에서 발견했다.

한 번뿐인 인생처럼 다가왔다.

그 무렵부터는 극장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그 전에는 어두컴컴한 곳에 대한 공포도 없지 않아,

소극장 공연을 보면 지하 극장에 들어가는 게 답답했다.

거기서 몇 시간을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무대의 언어에 집중하면서부터는

어느새 극장에도 조금씩 길들여졌다.


일상과 다르지만 일상의 언어가 스민 그 곳을 사랑하게 됐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춤은, 지금 일어나고 있지만

퍼포머들의 과거가 축적된 것이고, 또 동시에 소멸되지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한 무대에서 보고 있다는 게,

그대로 '지금'을 감지하는 느낌이었다.


가령 톨스토이의 부활을 하루 내내 읽은 적이 있다.

아침에 읽기 시작해 밤에 페이지를 덮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대문호가 여러 해를 공들이고 고생하며 쏟아냈을 부활을

단지 하루에 그냥 읽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깨어있던 시간이 톨스토이의 긴 시간과 평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물리적 시간 대비에 대해 새삼 놀라며, 잠시 멍해졌는데 ...


처음으로 좋은 무용 작품을 만날 때 그랬다.

무언의 테크닉이든 숙련된 기술이든, 저 순간을 만들기 위해 축적해왔을 시간의 양과,

미적 표현을 위해 갈고 닦았을 사색의 시간.

내외적인 시간의 집약체.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무대 앞으로 전해졌고 나는 그 물음을 지금 여기서 받아내고 있다.

심지어 안무가나 연출이 지닌 문제의식 또는 미의식이 나와 비슷한 경우에는

묘한 위로를 받았다.

언어를 교환한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이 무대 위에 펼쳐놓은 것들이

평상시 고민했던 것들이라는 데에 놀라고 감탄했다.


지난해 나는 다시 그 처음에 마주했던 안무가의 작품을 보러 극장에 갔다.

첫인상 그대로일 수는 없지만,

여전히 무용단은 안무가가 지녔던 색채를 이어가며,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간결하게 사계절을 펼쳐보였다.

시간은 또 흘러가고 있지만,

우연히 또 어딘가 극장이나 여행 중 장소에서

이들 공연을 마주한다면,

나는 또 그 첫마음을 기억할 것이다.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지독하게 어떤 내적 물음들에 천착했던 그때 .

너무 강한 강도로 다가왔던 공연장의 에너지를.

그리고 또 달라지고 싶다 느꼈던 내 자신을 말이다.


사람은 멀리 있는 대상에게도,

진심 어린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그게 이뤄지는 게 극장이었다.


https://youtu.be/52Dub1eTipY?si=YUHYmgRUGYCTd3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