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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완독 후기

by 고들정희

예전 북클럽에서 고전을 읽고 싶어하는 멤버들을 대상으로 소모임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 볼까 하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첫 번째 책으로 선택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유명한 책이라서였다. 사실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고전이라면 어떤 책이든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민음사에서 나온 완역본을 선택했다. 총 3권으로 되어 있었고, 한 달 기간 동안 다 완독해야 하는 상황은 사실 너무 무모해 보였으나, 결국 다 읽고 말았다. 제목으로 대했을때는 아주 고상한 책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던...ㅎㅎ


《데카메론》은 1348년 페스트가 만연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전염병은 당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보카치오는 이를 직접 목격하며 그 참혹한 상황을 그린 책을 썼다고 한다. 등장인물은 페스트에서 살아남은 10명의 젊은이들로, 이들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잃고, 그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적한 별장으로 떠나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이 하루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며 10일 동안 총 100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구성이다. 각 이야기는 그리스와 로마 문학, 전설, 민담, 그리고 보카치오의 상상력으로 엮여 있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데카메론》은 단순히 고전적이고 고상한 내용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숨겨져 있던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초기에는 등장인물들이 다루는 주제가 대부분 인간의 욕망, 사랑, 배신 등으로, 다소 불편하고 속어가 많이 등장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보카치오가 그린 여성상은 대부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주체적이지 않고, 남성의 영향력 아래에서만 존재하는 비굴한 인물들이 많다. 이런 여성상의 묘사는 읽기에 다소 불편함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영리하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여성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기도 한다. 이는 보카치오가 단지 비판적인 시각을 넘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카메론》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그 현실적인 묘사와 사회적 풍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카치오는 단순한 고전적 이상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도 깊은 탐구를 시도했다.

당시에는 종교적 고위층과 사회적 권위자들이 겉으로는 고귀한 모습만을 드러냈지만, 그들의 숨겨진 추악함은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을 거라 생각한다. 시대적 환경으로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에 사람들이 더 통쾌해하며, 즐겁게 읽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현실을 그리고 있는 이런 이유로 이 소설이 오랫동안 읽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 《데카메론》을 읽으면서 내용이 너무 사실적이고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져서 중간에 책을 그만 덮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보카치오가 의도적으로 인간의 현실적인 욕망과 사회적 부조리를 그려내기 위한 목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그린 세상의 속물적이고 때로는 추악한 모습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여전히 그런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단순한 고전이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데카메론》을 읽고 나면,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교훈을 찾아볼 수 있다.


작품 해설을 보니, 김별아 작가는 "시가 천상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천민의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데카메론이 고상하고 고결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삶의 보기 흉한 모습까지 그리고 있고, 인간의 추악함을 들춰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씩 이솝우화같은 짤막한 이야기들도 등장하고, 탈무드에 나오는 지혜에 비견되는 이야기도 나오긴 하지만, 사실, 8할이 남자나 여자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주로 육체적인 사랑) 이야기들이 지배적이어서 이 소설은 야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사랑에 대한 묘사가 "행복한 밤을 보냈다." "그렇게 열망하던 것을 드디어 이루었다." "원하던 것을 하게 되었다" 또는 "밤새 몇 번이나 했다"라는 식의 표현이 전부이기 때문에 실제로 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데카메론에 나온 이야기 중에, 하인이 주인에게 요리로 만들어 주는 학의 다리 하나를 뜯어먹다 원래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고 거짓말하면서, 잠잘때 다리 하나를 숨기고 자는 학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내용은 어릴 때 교과서에서 나왔던 이야기인데, 데카메론에 수록되어 있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보카치오는 원래 굉장히 정통 인문주의 철학을 추구했기에 속어로 썼던 이 소설을 불에 태워버리려 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 작품으로 그가 지금까지도 대단한 고전작가로 남아 있게 되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이다.

100편의 이야기들 중 비슷한 내용들도 많고, 너무 지나치게 길게 썼다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도 있다. 내 생각엔 굳이 100편을 다 읽어볼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어떤 책인지 궁금하면 조금 간추려진 책을 읽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첫 고전을 데카메론으로 고르고, 결국 완독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고전읽기 소모임은 이 책을 끝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첫 책을 잘 골랐어야 하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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