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늦은 세뱃돈 이야기
한국에는 세뱃돈이 있듯 싱가포르에도 중국의 문화를 받아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주는 문화가 있다. 이 빨간 봉투를 '홍빠오, hongbao'라고 부르는데 빨간색은 에너지, 행운, 행복을 상징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세뱃돈, 축의금, 금일봉 등을 주고받을 때 홍빠오를 사용한다.
돈봉투를 전달하는 이들이 항상 빨간 봉투를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구정 인사를 하며 용돈을 줄 때는 대부분 어김없이 이 봉투를 사용한다.
그래서 그런지 구정이 가까워오면 물건을 살 때마다 브랜딩이 크게 된 빨간 봉투 한 묶음씩을 사은품 형태로 준다. 사실 나는 싱가포르에서 용돈을 줄 일이 전혀 없는데, 이 시기가 지나면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사고받은 빨간 봉투들이 집에 몇 개씩 굴러 다닌다. (안타깝게도 빈 봉투들이다.)
세뱃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미 마지막 세뱃돈을 받은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가풍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한국에는 일을 시작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면서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면서 나 역시 어느 순간 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구정을 서너 번 지내다 보니 한국의 그것과 조금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세뱃돈을 주고받는 사람은 꽤 단순하다.
그 구분은 바로 <결혼>의 유무이다. 물론 가풍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기혼자들이 아이들, 부모님, 결혼을 하지 않은 어른(!)에게 세뱃돈을 준다. 결혼을 하면서 돈 쓸 곳이 더 늘어나는 셈이다.
미혼 = 홍빠오 받는 사람
기혼 = 홍빠오 주는 사람
물론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무조건 줄 필요는 없지만 환갑이 되어도 미혼 상태라면 홍빠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완전한 어른이 아니라는 말일까?
한국의 경우, 대부분 봉투에서 빳빳한 새 지폐를 꺼내서 주시는 그 순간, 지폐의 색깔을 자동으로 보게 된다. 이곳에서는 홍빠오 안에 돈을 넣어 주시기 때문에 금액이 얼마인지 바로 알 수가 없다. 홍빠오를 받고 나서 바로 열어보는 것은 큰 실례! 나중에 따로 봉투를 열어보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또한 두 손으로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Gong Xi FA Cai 공 씨 파 차이)"라고 말을 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홍빠오와 관련된 또 다른 규칙 중 하나는 바로 '액수는 짝수로 맞춘다'!이다. 짝이 맞는 숫자에 길한 기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 옛 말 중에 '좋은 것은 항상 같이 (짝을 맞춰) 온다'라는 말이 있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짝수라고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불길한 숫자라고 여기는 4가 들어가는 액수는 주지 않는다. ($4, $14, $44). 반면 중국계 문화에서 8은 최고의 숫자이다. 중국식으로 8을 발음하면 그 소리가 마치 '돈을 많이 번다'의 뜻을 지닌 단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8, $18, $88 이런 식으로 돈을 넣는다고 한다.
이번에 회사에서 받은 금일봉에도 $88불과 싱가포르 복권인 TOTO가 들어있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싱가포르에서도 신정이나 구정 (특히 구정) 즈음이 되면 긴 줄의 행렬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복권을 살 수 있는 SingaporePool 앞이다. 싱가포르 역시 사람들이 복권을 정말 좋아하는데.. 구정 전후로 "줄이 저렇게 기다니! 뭐 파는 곳이지?"라고 들여다보면 복권을 파는 곳일 것이다.
어젯밤 9시 30분에 (2022년 2월 11일) 발표한 토토의 당첨금의 누적액은 약 140억 정도(S$16M)로 2000년 이후로 최대 금액이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받은 홍빠오 안에는 토토 번호도 두 개 들어있었다. 복권을 사고 나면 이상하게 찾아오는 가벼운 설렘이 있다. 안될 걸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만약에... 가 머릿속의 작은 한 구석을 차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남자 친구에게 상상 한가득 담긴 이야기를 하고 나서 결과를 확인했다. 오! 숫자가 좀 맞는다.
3개 맞춰서 7등에 당첨되었다! 상금을 찾아보니 10불! (8천 원 정도)이다.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 읽으면 되겠다.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는 모두의 마음, 세뱃돈을 많이 받고 싶은 아이들과 어쩌면 그 돈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어른들, 어떤 경우든 오래간만에 가족이 모여 행복한 이들, 복권을 사며 신년 운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 동시에 큰 액수에 당첨되고 싶은 마음, 또 한 해를 잘 보내고 싶은 바람은 여기나 거기나 저기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께,
비록 늦었지만 꼭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너무도 흔해서
어쩌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해도 건강하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