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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May 29. 2024

딱딱한 의자에 앉은 그녀

취향에 대하여 | 은솔


안녕하세요. 유림입니다. 

잘 지내셨을까요? 벌써 5월이 끝나가고 있어요. 메일링이 끝나고 개인작업과 일정이 겹쳐 너무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는 꾸준히 만나 뵐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글로 돌아가서, 여러분은 '취향'이란 단어를 보시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이번 에세이의 주제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만나보셨던 <Replay- 벚꽃엔딩>은 노래에 대한 저의 취향을 다뤘다면, 이번 글에선 '딱딱한 의자'가 취향인 은솔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 저는 딱딱한 의자에 곧게 앉아 명료한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는 은솔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등은 곧게, 시선은 또렷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은솔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º 주제: 취향에 대하여 자유롭게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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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의자에 앉은 그녀

 from. @ ohnlysol

 

그녀는 바퀴도 팔걸이도 없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토독거리고 있다. 그녀의 키보드 자판은 새끼손가락 한마디보다 작고 동글한 모양이다. 시원하고 요란한 타자 소리 대신에 토독토독 귀여운 소리가 난다. 그녀의 키보드 옆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딱복이 접시에 담겨있다. 딱딱한 복숭아, 딱딱한 밤, 딱딱한 강정, 그녀의 치아는 무엇이든 씹고 깨트리는 맛이 있어야 즐거워한다. 와그작와그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잘게 부서진 조각에서 흘러나오는 단맛을 충분히 음미한다. 윗니와 아랫니가 규칙적으로 부딪치는 박자를 따라서 그녀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녀는 오늘도 속으로 바른 자세를 외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가 바른 자세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방법으로 “바른 자세”라는 구호를 가르쳤다. “바른 자세”는 앉는 면과 등받이가 직각으로 만나는 지점에 엉덩이를 깊숙이 넣고 등을 등받이에 붙이고 무릎을 90도로 내리는 자세를 말한다. 그녀는 선생님의 “바른 자세” 구호에 맞춰 엉덩이를 의자 끝까지 넣고 허리를 아주 꼿꼿이 폈다. 등허리가 등받이에 닿으니 묘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의자에 몸을 맞춰 앉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바른 자세로 앉아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2단 뛰기를 성공한 것처럼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어린 그녀는 의자에 앉아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꼭 맞는 의자를 찾기 위해 여러 의자와 교감을 시도했다. 바퀴가 달린 의자, 사무실 의자, 식탁 의자, 빈백, 소파, 스툴까지, 어떤 의자는 너무 불편했고, 어떤 의자는 아주 편했다. 그중 바퀴가 없고, 등받이가 딱딱한 의자에 유난히 좋은 기운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어른이 된 그녀의 집중력은 쉽게 흩어졌고, 그녀를 피해 부유하는 집중 분자를 한 곳에 모으는 일은 어려웠다. 그런데 집중 분자들은 딱딱한 의자를 만나면 의자에 찰싹 달라붙었다. 등허리를 등받이에 붙이면 의자에 붙어있던 집중 분자들이 그녀의 척추를 따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흘렀다. 그녀는 짜릿한 느낌을 놓치지 않고 키보드를 재빠르게 눌러 토도도독 글자를 옮겼다. 


그녀는 딱딱한 의자에 오래 앉아있기 위해서 궁둥이가 닿는 부분만큼은 메모리폼 방석을 덧대어 앉는다. 그녀에게는 처음 메모리폼을 만져봤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가볍고 평평한 표면부터 느낌이 좋았다. 가볍게 잡았을 때는 쉽게 뭉그러지지 않는 단단함이 있는데, 힘을 주면 푹신해졌다가 다시 천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메모리폼의 푹신한 반전 매력이 아니라 다시 단단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한결같은 매력에 푹 빠졌다. 하지만 두께가 겨우 4cm에 불과했던 메모리폼 방석은 세월이 흐르며 처음의 단단함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방석을 찔러보지만, 방석은 작은 자극에도 푹신하게 패이고 만다. 그녀는 그동안 궁둥이를 지켜 준 방석에게 실망 대신 고마운 마음으로 쉼을 허락한다. 


그리고 그녀는 방석이 없어도 다시 딱딱한 의자로 돌아온다. 방석은 쉴 수 있어도 그녀에게는 마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얇고 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가져와 새하얀 책상에 올려놓는다. 그녀의 엉덩이는 딱딱한 표면에 닿아있지만, 그녀의 물컵은 도톰한 니트 재질의 컵 받침 위에 올려둔다. 등을 붙이고 고개를 살짝 당긴다. 그녀의 데스크톱 안에는 열일곱 개의 창이 동시에 실행되고 있다. 그녀는 그중 능숙하게 문서 창을 열어 토독토독 자판을 두드린다. 그녀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2022. 04. 19

딱딱한 의자에 앉은 그녀

은솔 쓰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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