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메일링 - 영화와 대담
안녕하세요, 욱림솔훈의 대욱입니다.
더운 여름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저희가 준비한 각각의 글 한 편씩을 잘 받아 보셨는지요? 한 편뿐인 글로 무엇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의 마음 가까이에 다가간 글은 누구의 글이었는지요? 묻고 싶은 것이 자꾸만 늘어 가는 것은 아마도 메일이 쌓이면서 여러분과의 거리가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볼 수 없는 여러분을 향해 글을 쓰고, 메일을 예약하고, 인삿말을 가다듬는 이 순간은 저에게 바쁜 하루 속 잠깐의 휴식 같습니다. 햇빛은 타오르고 냉방기는 쉴새없이 돌아가는데도 마음은 차분히 내려앉는 이 순간을 여러분 덕분에 보낼 수 있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요. 이번 주에는 영화 <로봇 드림>을 보고 저희가 나눈 대화를 보내드립니다. 원래는 두 편으로 계획했지만 얘기하다 보니 세 편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는데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늦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것처럼 저희가 모여 나눈 대화가 그러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저희 욱림솔훈이 보낸 주말의 어느 부분을 보내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영화를 보았든 그렇지 않든, 편안히 흘러가는 기분으로 이 메일을 읽어주시기를 청합니다.
Part 2. 영화 <로봇 드림>을 보고
1) 대화와 말 없는 영화
2) 자세히 들여다보면
3) 관계의 방식
영화 <로봇 드림>을 보고
1) 대화와 말 없는 영화
대욱
영훈 씨가 <로봇 드림>을 보자고 했던 이유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영훈
저는 친구가 보고 별말 없이 좋으니까 꼭 보라고 얘기를 해서 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은솔
찐 추천이네.
영훈
맞아. 이번 메일링 주제가 "대화"잖아요. 대사가 하나도 없는 힐링 애니메이션을 보고 욱림솔과 대화를 나눠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에 함께 보자고 얘기했어요. 저는 보고 나니 단순히 힐링 영화로만 정의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고 나서 다들 어땠는지 궁금해요.
전반적인 인상
대욱
저도 처음에 봤을 때 아무래도 좀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림체가 엄청 캐주얼하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어느 정도 선입견 아닌 선입견을 갖고 갔던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 무성 애니메이션인 줄 알고 ‘어, 소리가 많이 나오네’ 싶었는데 보다 보면 대화만 소거되어 있잖아요. 그 지점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어요. 주변에 다른 소리는 엄청 많은데 대화만 없는. 그런데 보면서 어떤 순간에 멈추게 되더라고요. 갑자기 마음이 확 오는 부분도 있고 먹먹해지거나 하는 순간도 있고요. 결말 부분은 저도 조금 놀란 부분이 있어서 이건 다 같이 한번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감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림
영화가 스펀지밥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 그림체여서 지브리처럼 잔잔한 류는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그래서 블랙 코미디 같은 식의 전개가 될까, 하면서 봤는데 초반부는 평이하게 흘러갔던 것 같고 중간중간에 연출 같은 데서 헉! 했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어떤 지점들이 애니메이션이라서 할 수 있는 효과들도 분명히 있고, 감독의 연출이나 아이디어가 좀 빛났던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결말은… 저는 좀 납득하기가 힘들었습니다만. 삶에 있어서 언제나 그런 결말들이 있을 수 있지만 뭔가…
은솔
슬펐다~ 슬펐다~ (하고 웃는다.)
유림
어어 슬펐다. 슬펐다. 결말이 너무 슬펐고. 이 뒷부분에 대해서도 같이 차차 얘기해보겠습니다.
은솔
저도 유림이랑 평이 비슷한데, 영화 초반에 주인공 ‘도그(Dog)’가 외로움을 느끼는 부분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TV에 자신의 혼자 있는 모습이 비춰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을 딱 본 순간부터 이 애니메이션은 연출 보는 재미가 있겠다. 표현이 너무 좋다. 하면서 봤던 것 같고. 서사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충격적인? 초반에 둘이 헤어지게 되는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되게 흥미롭게 지켜봤던 것 같아요.
인상깊었던 장면
대욱
그러면 다들 인상깊게 봤던 장면이 혹시 있었나요?
영훈
저는 초반에 로봇이 도그에게 배달되고 둘이 여행을 떠날 때, 로봇이 바깥 풍경들을 신기하게 보다가 다른 차에 탄 로봇을 처음 보게 되잖아요. 근데 그 로봇이 아이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표정이 안 좋았던 장면이 떠올라요. 처음엔 로봇은 항상 생긋 웃고 있어서 웃을 수만 있나?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주인공 로봇이 나 같은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그 로봇의 감정을 처음 보게 된 거잖아요. 그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가 생각보다 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뒤로 로봇이 바다에서 겪게 되는 일들이 분명 가만히 누워 있지만 되게 많잖아요. 그러면서 이 영화가 단지 강아지 도그와 로봇 둘만의 관계를 다룬 게 아니라 각자가 여러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나아가는 얘기구나 이렇게 봤던 것 같아요.
대욱
그래서 로봇이 바다에 누워 있는 동안 상상 속에서 도그를 만나러 가잖아요. 만나러 갔는데 옆에 또다른 로봇이랑 약간 견제하듯이 할 때의 미묘한 표정들이 나오잖아요.
영훈
맞아요. 맞아요.
대욱
그런데 강아지는 그 장면을 하나도 못 보고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이렇게 로봇 간에는 서로 오히려 더 이해하는 지점이 있으려나? 공감을 더 할 수 있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좀 재밌었던 게 나중에 로봇이 머리는 그대로인데 몸을 바꿔 끼우잖아요. 사람들이 보통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머리 혹은 뇌, 그리고 심장을 말하잖아요. 근데 여기서 로봇은 심장이 없이 그냥 몸을 갈아 끼우는 거네,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예요. 보통 사람의 살아있음을 비유할 때 머리나 심장을 말하는데 로봇은 머리만 있어도 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냥 큰 의미 없이 몸을 갈아 끼울 수도 있고, 대체될 수 있는 것이 로봇이라고 표현한 건가? 이런 게 궁금하긴 했어요.
은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지점인 것 같아요. 약간 비슷하게 감독은 어느 부분까지 로봇한테 허용하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장면이 로봇이 몸통 부분이 바뀌고 다시 눈을 떴는데 그때 바로 도그한테 달려가지 않잖아요. 저는 이 부분이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자기가 가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로봇이라는 경계가 있는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인간적인 감정을 다 학습한 로봇이었다면 훨씬 더 사무치게 그리워해서 달려간다거나 이런 전개가 됐을 수도 있는데, 나는 로봇이고 주인이 바뀌었고. 그리워는 하지만 나는 새로운 주인이 있고. 이게 딱 뭔가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만들어버린 지점인 것 같아서. 그래서 아까 심장에 대한 얘기도 만약에 로봇에게 심장이 없는 설정이라면?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유림
저는 사실 중간부터는 로봇이라는 생각을 거의 안 하고 봤는데, 얘가 상상을 하잖아요. 저는 그 순간부터 거의 인간에 가까워졌다고 생각 했던 것 같아요. 상상하고, 근데 그 상상이 실현되지 않는... 이런 게 영화적인 연출일 수도 있지만요. 저는 요즘 ‘인간만이 이야기를 만든다’라는 책 사피엔스의 문장에 꽂혀있어서… 저 로봇은 인간의 특징을 학습한 로봇이고, 그런 로봇이 상상을 한다면 인간에 가깝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봤어요. 그리고 로봇이 겪는 일이 되게 되게 가혹하잖아요. 너무… 다리도 잘라가고 뭐 하면 다 거절당해서 계속 누워 있어야 되고. 이런 시간을 거치는 것도 뭔가 인간으로서 탄생하는 과정, 시련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 느꼈기 때문에 저는 거기서부터는 로봇이라는 개념보다는 한 캐릭터로서 바라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다음 아까 그 교체되는 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그 교체품이 라디오로 바뀐 게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을 했어요. 대화가 없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게 음악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음악은 대화를 대신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또 영화에 나오는 음악이 되게 상징적이잖아요. 특히 후반부에 로봇의 플레이리스트와 라스칼의 플레이 리스트가 등장하는데, 로봇이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를 틀고 도그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상상하죠. 여기에서 저는 로봇이 정말로 도그를 사랑 했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상상으로 그치지만 내 욕망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상대를 배려 해서 지난 날을 추억으로 남기고 그 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사람도 못하는 성장을 로봇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막… 어떡해… 이 기특한 로봇을 어떡하지…? 이러면서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파스칼의 플레이리스트를 켜고 춤을 추는 마지막 연출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유림
연출적으로 좋았던 부분이 되게 많았는데 바다에서 로봇이 갑자기 몸이 안 움직여져서 도그가 신고를 하러 가잖아요. 911을 누르는. 그 절박함에 공감은 되지만 로봇한테 119가 출동을 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생각을 대변하듯이 전화기 선이 딱 끊겨있는…! 이게 너무 진짜 세상과 단절되고 딱 떨어진 느낌을 너무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지점이랑 플레이리스트. 거기가 가장 제일 생각나는 거 같아요.
영훈
거기서 도그가 전화하는데 실패하고 다음으로 구청 같은 곳을 가잖아요. 그곳에서 폐쇄된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 있게 요청 시도를 했는데 결국 허가가 안 되잖아요. 그 장면 보면서 영화 배경인 뉴욕은 다 동물들로 가득한데 그중에 가끔 로봇들이 있는 세상이니까. 그래서 동물들끼리의 우정 혹은 사랑 같은 관계는 사회적으로 인정이 되지만, 로봇과 동물의 관계는 합의가 안 되는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이 관계가 단지 로봇과 동물이라기보다는, 그냥 다 같은 사람인데 그 안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와 아닌 관계. 그렇게도 인식하며 영화를 봤던 것 같아요.
대욱
그래서 저희도 지금 말할 때 개와 로봇인데 개라고 안 하고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가 충분히 나의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로봇의 심장 같은 설정이 궁금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겠구나. 왜냐하면 그런 디테일한 설정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아니라 영훈 씨가 말했던 것처럼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에 가까운 지점들이 많아서… 그래서 영화를 보는데 더 이입해볼 수 있어서 서글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관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갈등이 있고 폭발하고 터지고 그런 과정이 아니라 그냥 한쪽은 되게 아물듯이 끝나잖아요. 근데 그런 것도 얼마 전에 유행했던 ‘시절인연’ 이런 말 있잖아요. 이런 거랑도 맞닿아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소설이나 영화처럼 적절한 시기에 시작하고 서로 끝내고 그런 것이 있는데, 꼭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 접하게 되는 인연은 그런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영훈
어떤 관계든 다 대입해 볼 수 있는 영화 같았어요. 저는 로봇과 도그의 관계가 부모님과 자식 관계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처음에 도그가 외로워서 로봇을 사고 조립해 로봇을 살게 만들잖아요. 물론 부모님이 자식을 외로워서 낳는 건 아니지만, 총체적인 감정을 멀리서 봤을 때 그 외로움도 부모 자식 관계도 적용할 수 있다 생각했어요.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과정도요. 그렇게 자식과 부모 관계로 대입해 보면 또 이야기가 되게 다르게 와닿기도 하고요.
대욱
연인이 아니라 친구와 친구일 수도 있고요.
은솔
그 해수욕장에서 로봇과 도그가 원치 않았던 이별을 하잖아요. 저는 그 과정에서 사별 정도 깊이감을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상황이 둘 다 의식이 있고 활동적인 상태에서 이별을 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강제로 이별하게 된 거라, 이 이별이 엄청 깊은… 너무 큰 상처처럼 다가왔던 것 같아서 가족과의 사별 같이 어떤 깊은 인연의 무게까지 생각하게 된 것 같았어요.
유림
그래. 세상이… 너무 억까 하잖아…!
욱솔훈
(일동 웃는다)
유림
너무, 너무 못하게 하잖아요.
영훈
감옥까지 가게 하고 (하하 웃는다)
유림
맞아 맞아.
대욱
너무해..... 그래서 상상이 더 절절했어요. 그리고 상상은 엄청 구체적으로 하잖아요. 어느 순간에는 이게 상상인 건가? 그렇게 약간 정신 놓고 있다가 보면 어 상상이 맞았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하고. 그런 겹쳐지는 상상의 순간들이 그래서 더 잔인하고 슬프고ㅡ 그래서 더 특정한 지점에서 사람들이 자기 얘기처럼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애니메이션이니까 현실에서의 제약 없이 펼칠 수 있는 상상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영화 속 시공간은 엄청 구체적이라고 들었거든요. 제가 뉴욕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어떤 공간들은 실제 뉴욕을 정확하게 묘사해 놓은 지점이라 들어서, 만약에 이게 서울 배경이었다면 더 눈물이 날 수도 있었겠다?
영훈
너무 그럴 것 같아.
대욱
남산 팔각정 같은 데나 한강공원이거나. (각자의 기억이 있는 공간이) 많잖아요.
은솔
맞아요. 냉장고에서 밀키트를 꺼내서 데워 먹고, 그 아파트 창문 바깥으로 내 이웃의 풍경이 보이고. 이런 모든 묘사가 거기 사는 사람들이 봤다면 진짜…!
대욱
네. 자기 얘기 같은? 그리고 심지어 전 세계의 수도라고 하는 그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게.
영훈
실제로 그 상징적인 장소들을 일부러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브루클린 브릿지도 그렇고 센트럴 파크도.
대욱
네 맞아요. 맞아요.
유림
어. 인생네컷처럼 네컷이 나오는 걸 보고 약간. 하? 한류인가? 약간 이 생각 잠깐 했었어.
영훈
그 장면 너무 귀여웠어. (ㅋㅋ) 근데 한류의 영향이었어?
대욱
여기도 K가…
유림
아, 사진 네컷이 요즘 역수출되서 어디에 가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포인트도 요즘에 녹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은솔
난 반대였어. 왜냐면 영화 속에서는 사진 비율이 달라.
유림
오…!
은솔
한국 네컷 비율이랑 다르게 60년대 유럽 포토 부스는 사진 비율이 1대 1에 가깝단 말이야. 영화 속에서도 그 비율이 그대로 나오는 거 보고 예전부터 있던 데이트 코스겠구나 생각했어.
영훈
그 생각은 들기는 해요.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이 영화 한국판 포스터를 보면 그 인생네컷 사진이 나와 있는데 다른 나라도 포스터가 저걸까? 한국이라서 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2편에서 이어집니다.
2024. 08. 12.
영화 <로봇 드림>을 보고
욱림솔훈 대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