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통제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뿐..
2021년 00월 00일, 흐림 그리고 비..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을 씻어주기 위해 내리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길 바랐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기분을 환기시켜주는 무지개와 신선한 공기가 뒤 따르면 좋겠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사실, 켜켜이 쌓여 진한 먹색을 띄고 있는 비구름은 누가 봐도 하루 종일 내릴 비를 머금고 있었다.
1년 6개월 가량 나름의 노력을 다해 준비해 온 첫 번째 전시회가 개최되는 날이었다. 어느 누가 호우 주의보가 나올 법한 강한 비에 나서길 좋아하겠는가.. 그건 본인도 마찬가지였으니, 많은 참관객이 전시회에 방문해 주길 바라는 건 주최자로써의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햇빛을 조금도 내어주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하늘을 뒤 덮고 있는 먹구름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는 푸념뿐이었다.
“언제쯤 스스로 만족할 만한 편안한 삶을 살게 될까?”
안타깝지만, 나를 비롯한 그 누구도 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내놓을 수 없다. 직접 방문한 적은 거의 없지만, 사주풀이, 신년 운세를 통해 들었던 다양한 예측들도 대부분 빗나갔다.(분명 대운이 들었고, 잘 풀릴거라고 했었다!) 진지하게 예측해 본들 의도하지 않은 많은 변수들에 의해 예상은 빗나갈 것이다.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을 땐 희망적인 계획이 있었고, 가능성도 보였다. 나름의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탐탁치 않았다. 심혈을 기울인 첫 전시회가 끝나고, 심신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받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왜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해서 이 고생일까? 하는 자조가 뒤섞인 바람은 불안, 걱정, 무력함을 내세워 나를 넘어트렸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상황들이 혼자의 힘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고, 언제나 쉬지않고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시간은 애석하게도 기다려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상황 그리고 주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의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사소한 거짓말을 하다 걸린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뜨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날 궂은 날씨를 보며, 하늘에 대고 불만을 토로하던 내가 바로 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혀 우왕좌왕 헤매고 있던 무렵, 내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한탄하고, 비관하며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 했을 뿐더러 오히려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방해꾼일 뿐이었다. 결국 내 통제 영역을 벗어난 상황에 대해 무의미한 감정과 시간을 소모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세상에 존재함도 우리의 선택은 아니었다. 태어난 가정 환경도, 타고난 신체 조건도,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삶 속의 많은 일들 또한 내 의지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삶의 흐름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유년 시절 아버지의 쓰러짐, 부모님의 이혼과 그로 인한 전학 그리고 휴학, 대학 진학과 졸업, 군복무, 취업, 와이프와의 인연, 결혼, 소중한 아이들.. 적지 않은 풍랑 속에서 살아온 40여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 의지대로 삶을 이끌어 온 것이 아니라, 삶의 거대한 흐름이 지금 이 순간으로 나를 데려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통제 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통제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높은 벽의 존재를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해야 할 일이었고, 나는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삶의 흐름이 나를 데려가기 시작하다.
삶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통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순간, 완벽하진 않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의 바다로부터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동시에 이전보다 편안한 마음 상태와 함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조금 더 긍정적인 자세로 하루하루 주어진 상황을 헤쳐나갔고, 그렇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일을 하며 알게 된 분의 연락으로 전시회에 대한 투자와 함께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이다. 이런 뜻 밖의 제안이 나에게 주어진 삶의 흐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항하지 않고 맡겨보기로 했기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맡김으로써 나타난 효과는 의외로 컸다. 이후 안고 있던 몇 가지의 고민이 단 번에 해결되었다. 말그대로 ‘오늘의 운세’에서나 나오는 ‘동쪽에서 귀인이 나타날 것이다.’ 수준의 예상 못한 전개였다. 비로소, 마음 속을 가득 채웠던 먹구름 사이로 새로운 삶의 여정을 위한 빛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삶의 흐름에 나를 맡겨본다. 세상의 큰 계획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 기대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느라 키보드를 타닥거리며 전에 안 쓰던 뇌의 영역을 괴롭히는 이 순간 역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위한 흐름의 일부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물론 어떤 모습의 미래일지는 예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하는 것은 결과나 미래에 대한 섣부른 추측이나 근거없는 걱정이 아닌 지금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결국 삶이란, 어제와 내일이 아닌 ‘지금’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니까.
*추천 도서 : 될 일은 된다(마이클 A. 싱어) /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