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시 뉴스

[평범하고 비범한 사람] #1

돌보는 이들이 멸시받지 않기를, 웹툰 작가 소만(39)

by 다시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育兒)이며 동시에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일(育我)이라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시기의 경험은 언어로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곤 한다. 고통이 거세된 낭만적인 경험으로만, 혹은 제때 자지도 , 먹지도 못하는 고통의 기억으로만 남기도 한다.


아이가 첫 뒤집기를 한 날, ‘누가 뒤집기 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하는 경이감에 웹툰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가 있다. 생명에 대한 경이에서 시작한 웹툰 작업은, 24시간 아이에게 붙들려 있는 육아의 힘겨움, 가사분담으로 인한 부부싸움, 돌봄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등으로 확장되어갔다. 딸 봄이가 태어난 후의 일상을 그린 웹툰 <봄이와>로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 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한, 소만(본명 천정연, 39)이다.


그는 자신의 육아 경험에서 어떤 이야기를 길어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걸까.


"아이만 키우는 게 더 힘들다는 말, 아이 낳고서야 이해했죠."


Q: 웹툰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아이만 키우는 것이 힘들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작가 소개말에 쓰셨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아이를 낳기 전에, 저보다 일찍 아이 낳은 친구들이 아이 키우면서 독서모임이며 마을모임이며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걸 많이 봤어요. 애 키우느라 잠도 부족할 텐데, 활동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아이만 키우는 게 더 힘들다고…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요.


제가 올해 마흔, 82년생인데요. 저희가 자랄 때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배우고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름의 성취도 하면서 살아왔죠. 그런데 결혼 후의 삶은 여전히 ‘봉건적 세계(?)’에 있는 거예요. 아이를 잘 키우는 걸로 모든 게 환원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무척 힘들었죠. ‘지금까지의 내 삶은 뭐였지?’ 하는 분열이 생기고요.


게다가 아이를 낳으면 삶의 모든 스케줄이 아이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잖아요. 아이가 깨 있을 때 깨고 아이가 잘 때 자야 하고. 아무리 졸려도 아이가 울고 배고파하면 그것에 맞춰야 하고. 모든 시계가 아이에게 맞춰지는 삶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아무리 육아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도 24시간 육아만 하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저도 뭔가 재미있는 걸 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게 만화였던 것 같아요.”

20211111_49c0b9d84c2a16fcaf9d25694fda75e1.png 웹툰<봄이와> 40화 중에서 (이미지 작가 제공)

Q: 육아를 하면서 기쁨, 고통, 이야깃거리, 질문이 엄청나게 쌓이지만, 정작 육아 집중기에는 그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잖아요. 소만님이 아이를 낳고 발견한 ‘이야깃거리’는 무엇인지, 그것들을 끈질기게 붙들고 창작물로 만들어갈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의 동력은 일단 아이와 ‘감금’되어 있어서 딴 걸 할 수 없었어요. (웃음) 남편의 노동시간이 길었고 친정도 시가도 다 멀었기 때문에, 아이 돌보는 건 오롯이 제 몫이었죠.


그런데 ‘아이’라는 존재는 정말 독특한 것 같아요. 그 작은 세포가 분열해서 점점 커지고 키도 자라고 활동도 더 크고 정교해지고, 그런 생명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정말 놀랍잖아요? 살을 부대끼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고요. 그렇게 한 생명의 성장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신기한 일인데… 놀라운 건 제 안 어딘가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을 막 끄집어내는 기분이었어요. 잊고 있었던 기억, 경험들을 마구 소환하는 느낌.


아이 맡겨두고 어디 갈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책상 위에 놓여있던 노트에 봄이의 재미있는 모습들을 그리고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 라이프>라는 웹툰을 보고, ‘이런 식으로 그려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정말 ‘소재 고갈’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시기였죠. 감금 생활의 아이러니랄까요.(웃음)”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무렵부터였다. 아이가 갓 태어나 젖꼭지를 물던 감촉, 유두 균열로 인한 고통, 아이가 혼자 낑낑대며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의 경이로움, 아이가 좋으면서도 아이로 인해 생활이 제한되고 있는 두 마음이 교차해 하염없이 공원을 걷던 밤, 아이가 처음 컵으로 물을 먹을 때 ‘이런 도구적 인간이라니!’ 하고 감탄하던 마음,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웹툰 <봄이와>가 3권까지 이어지며, 그의 기록은 조금씩 변했다. 실제로 1, 2, 3권은 각자 다른 색을 활용하고 있는데, 각각의 의미가 있다. 1권은 아이를 낳고 힘겹지만 생명의 경이를 느끼던 시기를 상징하는 핑크, 2권은 아이 돌이 지나며 육아 우울증이 찾아온 시기를 상징하는 블루, 3권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우울의 답을 찾아가던 시기를 상징하는 퍼플이다. 색의 변화처럼, 그의 문제의식도 ‘어린이집을 언제 보낼까’, ‘훈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둘째를 낳을까 말까’ 등에서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 상황의 실존적 고민과 취업, 창업 등으로 확장되었다. 그 사이, 캘리그래피용 붓펜으로 그리던 웹툰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태블릿으로 그리게 됐고, 대전 웹툰 캠퍼스에 개인 작업실도 생겼다.

20211111_a9e18cb5dd9d3ab420946fa19ebbbf52.jpg 웹툰 <봄이와> 1, 2, 3권 (사진 이상호)


"전업맘이나 워킹맘이나 힘겨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리고 싶었어요."


Q: 양성평등문화상 신진 여성문화인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포기하지 않고 버틴 나에게 잘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는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실 임신한 상태로 직장에 출퇴근하며 출판사를 창업해 책을 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1, 2권 인쇄한 책을 먼저 받아서 급하게 보내야 하는데, 택배가 옆 동으로 간 적이 있었어요. 비는 오고 저는 만삭이라 배가 불러있고 봄이를 하원 시켜 데려왔는데 남편은 야근이라고 하고… 결국 그 몸을 이끌고 우산 쓰고 봄이를 데리고 책 두 박스를 카트에 담아 간신히 돌아오는데….


‘괜히 출판사는 창업해서 이 고생을 하나’ 싶고… 근데 어떡해요, 창업지원금 이미 받았는데… 책 안 내면 다 토해내야 하고, 애 나오기 전에 책은 나와야 하고… (웃음) 그렇게 포기하고 싶은 날이 있다가도, 힘들 때 도와주는 ‘비상금’ 같은 존재들이 나타나곤 했어요. 그럴 때 누군가 나를 응원해주고 있나 보다 하고 다시 힘을 내곤 했죠.”

20211111_dab10c50dc668cd8560df444ff3a4227.jpg 2021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소만 (사진 여성신문)

그러나 그는 아이를 키우며 웹툰을 그리고 1인 출판사를 창업한 자신의 경험이, 모두가 ‘슈퍼맘’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힐까 염려했다. 육아도 잘하는 와중에 자아실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이중부담을 얹기보다는, ‘전업맘’이나 ‘워킹맘’이나 힘겨울 수밖에 없는 모순의 굴레를 바라보고 싶었다고. 그의 웹툰 속에는 아이 돌봄에 충실하면서도 생계부양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아지는 ‘전업맘’,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시간 부족 속에 허덕이는 ‘워킹맘’의 현실 모두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남편이 악역을 맡아, 독자들에게 비난의 댓글을 받기도 했다.


Q: 가사분담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남편이 ‘공공의 적’처럼 그려지기도 하는데요. 남편의 반대나 심적 부담은 없으셨어요?


“심적 부담이 컸죠. 남편에게 여러 번 물어보기도 했어요. ‘여보, 나 이 얘기해도 돼? 괜찮아?’ 제가 하도 여러 번 물어보니까 어느 날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내 이야기에 대해 뭔가 말하기 시작하면 의식하게 될 것 아니냐고.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그리라고.


저는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가사분담을 둘러싼 우리의 갈등이, 제 친구도 옆집 부부도 아주 비슷한 맥락으로 겪는 일이더라고요. 그렇다면 이것은 개인적 결함이나 성격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다 싶은 거예요. 이 문제를 남편 한 사람과 싸울 게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생각의 뿌리, 인식의 뿌리를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회학이나 페미니즘 공부를 하게 되었고, 작품으로 공론화할 수 있었던 거죠.”

20211111_60106888f8977b71e1f15db7bc9a88d1.png <봄이와> 80화 중에서 (이미지 작가 제공)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잖아요."


Q: 개인적 차원에서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사회적 차원에서는 육아를 둘러싼 사회적 현실에서 가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건… 나라는 사람의 경계가 넓어졌다고 할까요? 삶의 모든 시계를 다른 존재에게 맞춰보는 경험은 불가피하게 나라는 존재의 ‘경계 확장’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타인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힘이 좀 더 생긴다고 할까요.


<봄이와> 1권에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길에 있는 턱에 시멘트로 대충 발라놓은 경사로가 어찌나 고마운지 뼈져리게 느꼈어요. 그리고 유아차가 다니는 길이 휠체어가 다니는 길이란 걸 알게 됐죠. 그때서야 비로소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 거죠. 아이와 함께 ‘이동의 제한’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교통 약자들이 느꼈을 불편을 피부로 느끼진 못했을 거예요.


물론 육아가 아니더라도 삶의 경계를 타인을 향해 넓히며 살아가는 수많은 비혼자들도 많아요. 실제로 제 주변에도 정말 많구요. 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육아와 돌봄’이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현실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면… 주부의 일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살찌우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걸 너무 함부로 여기고 때론 멸시하는 것 같아요. 지난 6월에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가 GDP의 ¼, 연봉으로 따지면 1380만원 이라는 통계가 나왔어요. 월급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115만원인데, 사실은 그 이상이죠.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여실히 확인하고 있듯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아요. 그런데 여성들이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다보니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그 상황에서 가정의 권력 관계가 돈을 벌어오는 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존감을 잃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양육수당이나 아동수당이 더 현실화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돌보는 사람들이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돈,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을 사회가 지불해야 한다고 봐요.”


Q: 국가 세금으로 돈을 주자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캐나다의 경우는 아이 한명당 아동수당이 50만원 정도씩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식으로든,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 돌봄노동자를 멸시하는 분위기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돌봄’이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존중받고 대접받으며, 특정 성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는 일이 되었으면 하는 거에요. 우리 모두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왔고, 또 받아야 하잖아요. 아이였을 때 그랬고, 노인이 되어서도 그럴 것이고, 또 어느날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도 그렇고요. 그러니 돌봄을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우리의 관점을 전환하고, ‘돌봄사회’로 바꾸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간이 줄어야겠죠? 한국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로 악명 높잖아요. 여성도 남성도 자신의 일을 어느 정도 하면서 돌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노동시간이 줄어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20211111_d882050bb9eeba930974f596931be527.png <봄이와> 80화 중에서 (이미지 작가 제공)

소만의 웹툰에는 세 살 봄이의 유아어와, ‘재생산노동’, ‘생산노동’ 같은 개념적 언어, 스티로폼 상자에서 자전거를 상상하는 아이의 사랑스러움과, 아이로 인해 작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가족과 계곡에서 보낸 단란한 한 때와,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를 둘러싼 부부싸움이 모두 드러나있다. 이 모든 순간이 육아의 시간이며, 모순과 혼란을 외면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끌어안고 싶다는 말하려는 듯.


‘어제보다 더 웃긴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소만은, 특유의 유머러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겪는 기쁨과 고통, 혼란과 모순 사이로 ‘돌보는 이들이 멸시받지 않기를, 일하는 엄마들이 비난받지 않기를, 모든 생명들이 환대받기를’’(<봄이와> 80화) 바라는 소망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자: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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