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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 Jul 04. 2023

월세 100만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까닭

부동산 계약은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알아보는 게 최고.

[충격적인 강남 월세 90만원 방. 그리고 중개인.]


작년에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면서 회사 위치가 강서구에서 강남으로 바뀌었다. 급작스럽게 이직을 하게 되어 원래 살던 강서구 집에서 회사인 강남까지 출퇴근하려면 왕복 3시간이나 걸렸다. 그렇게 일주일을 출퇴근하고 야근까지 하니까 녹초가 되었다. '성장'하려고 스타트업에 왔는데 출퇴근 시간에 3시간이나 쏟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돈을 좀 쓰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직방을 둘러봤다.


역시 강남은 강남인가. 단기 월세로 알아보니 90만 원이 가장 저렴한 수준이었다. 사진 상으로 나름 괜찮아 보이는 단기 월세 방을 보기로 했다. 직방 어플에서 본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더니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딱 봐도 양아치 같은 사람이 껌을 쨕쨕 씹으면서 마중 나왔다. 그는 나를 담배 냄새에 쩌든 차에 태웠다. 보러 간 집은 강남역과 역삼역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 원룸 촌이었다. 차에 내리니 원룸 건물 1층 앞에 분리수거장이 보였고 거기에는 파리가 들끓었다. '안에만 깨끗하면 되지... 오래 살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2층 방에 들어갔다. 분명 2층인데 냄새는 반지하였고 화장실과 룸 컨디션 모두 최악이었다. 사진과도 상태가 많이 달랐다. 거의 둘러보지도 않고 호다닥 방을 나와서 그 양아치 같은 사람의 담배 냄새에 절어있는 차에 다시 탔다. "방 어때요?"라는 질문에 "음... 괜찮은데 생각 좀 해볼게요!"라고 말하고 강남역에서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다.


실제 봤던 방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이었다...


나를 맞이해 준 중개인과 나름 월세 90만원이나 하는 강남의 빌라... 내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  이번에 새로운 직종으로  이직하면서 연봉도 많이 줄었기 때문에 집값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비싸지만 혹시나해서 봤던 방이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고, 나를 대하는 양아치인지 중개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태도도 불쾌했다. 충격 그 자체였다.  


회사 대표에게 양해를 구해서 하루 반차를 내고 집을 보러 다녔다. 부동산 세 곳을 들려 집을 10군데 넘게 봤다. 낙성대, 서울대부터 신림 신대방, 구로디지털단지까지. 최악의 방을 봤던 터라 25년 넘은 집은 둘러보지도 않았다. 가격은 관리비까지 합하면 55만원~80만원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상하게 '내 집' 같이 편안함이 느껴지는 집이 없었다.  퇴근하고 집까지 오는 길이 불행할 것 같았다. 결국 부동산 세 곳에 똑같이 "방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생각해 보고 결정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지금 현재의 나에게 투자하는 가장 좋은 방법]


오후 3시쯤 회사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반차를 썼는데도 딱히 마음에 드는 집을 못 구해서 몸은 피곤하고 머리도 무거웠다. 낙성대나 신림, 신대방에서 룸 컨디션이 괜찮고 역까지도 그렇게 멀지 않은 집에 살려면 최소 70만원은 내야 했다. 그리고 이쪽 부근에 살아도 회사까지는 3,40분이 걸렸다.  급하게 구할 수 있는 괜찮은 집은 없는 건가...... 회사 일에 집중을 못하고 다시 네이버 부동산과 직방 앱을 켜서 매물을 찾아봤는데, 강남역 부근에 관리비 포함 월세 100만원인 집을 발견했다. 부동산에 바로 전화를 해서 허위매물이 아닌지를 체크했고, 방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대표에게 한번 더 양해를 구하며 또 방을 보고 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잘 골랐다. 회사까지 걸어서 5분, 오래됐으나 평수도 꽤 넓고 강남역 부근이지만 주변도 한적했다. 내 집 같았다. 딱 한 가지, 월세가 걸렸다. 월급이 줄어서 100만원을 월세로 내기에는 부족한 형편이었다.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와 각종 비용을 합치면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내가 월세 100만원? 사치 부리는 거 아닌가? 허영심에 가득한 거 아닌가?


하지만 최소 1년 동안 지낼 건데, 불만족스러운 집에 살기보단 출퇴근 시간 아껴서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게 나에게 투자하는 가장 좋아하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강남에 있는 월세 100만 원짜리 집을 계약하게 되었고, 1년 동안 잘 살았다. 그리고 이 집 덕분이었는지, 이전 회사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월세 100만원의 진정한 가치]


작년 6월에 구했던 강남 집 계약이 끝나서 올해 6월 20일에 새로운 집에 들어왔다. 이 집은 내가 그동안 강남 집에서 1년 동안 살면서 지켜봤던 집이었다. 전세든 월세든 금세 나가는 집이라 방이 뜨자마자 바로 전화해서 당일날 집을 보고 바로 계약해 버렸다.



이 집을 계약하기 위해서 희생한 것들이 많다. 이전 세입자가 방 빠지는 날과 내가 이사하는 날이 맞지 않았다. 내 이사일은 6월 10일이었고 새 집 입주일은 6월 20일이었다. 하지만 이 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6월 10일에 본가인 용인 집으로 가서, 10일 동안 용인에서 출퇴근하기로 결정했고, 이삿짐도 본가에 쌓아놔야 했다.  이걸 딱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결정했다. 과감하게 용단을 내렸으나 실제로 이사 두 번을 하고 용인 - 강남 출퇴근과 이삿짐이 쌓인 채로 생활을 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6월 20일 입주한 날,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 - 작년에 집 구하느라 경험했던 고생까지 모두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집이 주는 만족감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전체적으로 깨끗한 방과 화장실, 잘 드는 햇볕, 통창 유리와 17층에서 보이는 강남 한복판의 뷰. 퇴근을 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 100만원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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