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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ung KIM Nov 27. 2020

테오와 고흐처럼

 서울에 올라온 뒤 내내 월세생활자로 살았다. 이대 근처 하숙집 두 곳, 홍대 원룸, 영등포구청역 고시원, 일산 대화동과 호수공원 오피스텔. 참 많이도 옮겨 다녔다. 일산에서 부모님과 산 몇 년을 제외하고는, 매달 적지 않은 월세가 통장에서 나갔다. 다행히 회사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마련했고, 꼬박꼬박 갚은 덕에 전주에 부모님의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번역가로 살며 오피스텔 월세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마침 후배의 친구가 외국에 나가면서, 연희동 집을 1년간 관리해줄 사람을 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5년 8월 말의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8월 중순에는 연희동에서 서점 매니저로 일하는 이야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연희동에 가본 적조차 없었기에, 이를 신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였다.(단, 애초에 연희동 집을 관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건 후배였고, 매니저 제안을 받은 것도 다른 선배였다. 둘 다 그 제안 앞에 시큰둥했을 때, 그걸 들은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겠다고, 서점 매니저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나는 폭풍점장과 함께 연희동에 밤의서점을 열었다.
 
 지금도 나는 월세생활자로 살고 있다. 몇 주 전,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야겠다고 했을 때 꽤 동요했다. 이사 갈 집들을 알아보았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주저앉혔다. 모든 것이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글쓰기 수업을 늘리면 된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 이런 생각을 하며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난 주, 남동생에게 카톡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전주 내려가는 거 연기하려고.”
“응. 근데 누나 재정적으로는 괜찮아?”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동생이 불쑥 물었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코로나 때문에 글쓰기 수업도 좀 힘들고, 온라인으로 하는 방법을 연구중이야.”
 
 두 살 아래인 동생은 세 아이의 아빠로, 나와는 정반대되는 성격의 소유자다.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제 것으로 만드는 아이였다. 장난감을 사 내라고, 이미 있는 것은 필요 없다고 바닥에 누워 데굴데굴 구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반면 나는 치킨을 먹을 때도 동생에게 “이 다리 먹어도 돼?” 하고 물었다고 한다. 아아^^;)
 그런 동생이 크게 변화된 계기는 내가 다니던 개척교회에 나가면서부터였다. 조용히 믿던 나와 달리, 동생은 하나님을 만나고 180도 바뀌었다. 당시 많이 아프시던 어머니를 보면서 의사가 되겠다고 하더니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무섭게 공부했다. 의료선교사라는 꿈을 품은 동생은 휴가 때마다 캄보디아나 말레이시아 등으로 의료선교를 나갔다.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한 빈민촌 아이들을 지원해주기 위해, 손수 아이들 영어소개서 파일을 작성해서 주변에 후원자들을 찾아주기도 했다.
 내가 인도어파라면 동생은 아웃도어파. 사람이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나와 달리, 그 애는 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는 타입이다.
 
“누나가 힘들 때 언제든 도와줄 수 있어.”
 내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고심하며 동생이 말했다.
“고마워. 서점이 대박 나서 나도 그 말 하고 싶다. 네가 힘들 때, 언제든 돈 보내줄 수 있다고.”
 테오는 언제나 고흐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나는 고흐가 아니지만, 누나 주제에 동생 도움받는 게 뭐 자랑할 일이라고 이렇게 적고 있나 싶지만. 아무튼 든든한 동생이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예전에 요가 클래스 명상 중에 이런 장면을 봤다. 나는 돌을 맞은 아기였는데 상에 놓인 다양한 물건들, 돈과 연필, 실과 붓, 음식 앞에서 아무것도 집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마음껏 욕망하길 바란다. 네 앞에 있는 기회들을 네 걸로 만들면서.”
 그 목소리를 나는 자주 잊어버리고 늘 근심하므로, 테오 같은 동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테오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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