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jung KIM Nov 02. 2022

무조림과 가을의 마음

책에 관한 기분들

 오이샌드위치와 채소절임. 올 여름은 이 두 가지에 꽂혀 지냈다. 오이샌드위치는 이렇게 만든다. 호밀식빵 한 쪽에 땅콩스프레드를 바르고, 다른 한 쪽엔 씨겨자를 바른다. 오이와 햄, 토마토를 얇게 잘라 빵 위에 얹고 식빵 두 쪽을 합체하면 끝. 빵을 굽지 않아 불을 쓸 일도 없다. 채소절임은 더 쉽다. 파프리카와 표고버섯을 잘라 팬에 구운 뒤 살짝 식혀, 쯔유와 레몬즙을 탄 물에 퐁당 빠트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반나절 후 꺼내 먹는다.


 습도가 어마어마한 여름이었다. 아침 8시 반에 산책을 나섰다가 땀에 흠뻑 젖어 카페로 피신한 후로, 친구와 걷던 아침 산보도 끊어졌다. 눅눅한 몸에 눅눅한 정신이 깃든다고, 고양이 보니도 비몽사몽 눈을 뜨지 못했다.


 오이샌드위치와 채소절임은 그런 나날에 작은 마디가 되어주었다. 접시를 들고 좌식 식탁으로 와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소파에 몸을 기댄다.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채소절임을 씹는다. 눅눅한 하루가 아주 조금 청량해진다.


 그저 습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의 특성상 나는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기준에서 빗겨나 있었다. 나에게 서점은 최애 아이돌이었고, 서점을 종종 ‘무직 정우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정우성만큼 멋진데 내가 부양하는 게 뭐 어때서?) 그런데 서점 7년차인 지금, 홀로 고고한 정우성이 조금씩 버거워졌다. “결혼은? 아이는? 집은?” 어디를 가든 이런 질문들로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참 늦된 나는 할 말이 없어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 어디 나가서 돈을 좀 벌어오지?’ 하는 눈으로 정우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정우성 님, 미안합니다...)


 오래도록 사랑했던 마음을 잃으면 사실 당사자가 가장 괴롭다. 누군가는 “점장님은 생각보다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도 몰라요”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사십대가 나이듦을 절감하는 시기라 그래요” 하며 다독여주었다.

 나는 정우성에 대한 ‘마음이 다했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오이샌드위치와 채소절임을 씹으며, 여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여름의 계곡에 두 발을 담근 두 사람이 맨발로 산을 내려왔을 때

(...)

혹은 여름날의 그 어느 때,

마음이 끝났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과 함께 끝났을 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

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_황인찬, <건축> 중(시집 <희지의 세계> 수록)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 구석구석에 쌓인 무기력이 각질처럼 떨어져나갔던 걸까. 알싸한 가을 공기가 몸에 퍼지면서 나는 조금씩 되살아나는 중이다.


 지인 앞에서 울음을 터트린 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 오래도록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결핍을 입 밖으로 꺼냈고,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충만한 순간이 간절히 필요했던 거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존경한다고 생각했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미정 씨가 작업하는 책들은 한철 유행하고 지나가는 것들이잖아. 그런 걸 번역하는 게 재미있어? 진짜 책은 작가의 정신이 깃든 문학이잖아.” 그 말을 듣고 상처받은 것은 내내 그런 시선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평소 잠잠하던 마음에 오기가 일었다. 그것이 작은 불씨가 되었다. 자칭 독서가라는 이들의 허세가 징그럽게 싫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다시 일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지난 주 희곡 모임은 꽤나 즐거웠다. 대사를 주고받으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에 끝났다면, 다시 다른 사람과 가을의 마음을 시작해야지.’

 극중 외계인으로 설정된 신지의 상태가 나 같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시골마을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인간이 지닌 개념을 배운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에게서 개념을 빼앗는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진짜 감정과 결을 몰랐던 신지는 나루미와 지내며 점차 인간에 가까워진다. 처음 배우는 신지에 비하면, 나는 한번 습득했던 감정과 결을 되찾는 것이니 보다 쉽지 않을까.


히로키- 응, 기억을 잃은 건 아니야.

나루미- 신지 경우는, 모르겠다고 하는 게 엄청 많았어요, 다쳐도 아프다는 걸 몰랐고, 밥을 먹어도 맛을 표현할 줄 몰랐고, 그림을 보면 뭐가 그려져 있는지는 아는데 아름답다거나 그런 느낌을 말할 줄을 몰랐어요.

_마에카와 도모히로, 희곡 <산책하는 침략자> 중

 

그런 목소리였구나. 나를 만지는 그 손가락도, 울다 지친 얼굴도, 신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발견이었다. 몸이 묵직했다. 신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느끼게 되었다. 아픔이 아픔으로 느껴졌다. 이제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모든 감각기관이 정보 이상의 무언가를 발신하고 있었다. 축축한 한숨, 체온, 맥박.

나루미가 거기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__마에카와 도모히로, 소설 <산책하는 침략자>중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걸 느끼고, 아름다움과 분노와 사랑의 욕구를 느끼는 것이 마음을 회복하는 첫 단계임을 이제 안다. 엉겁결에 터트린 울음, 잔잔한 마음에 인 오기, 낭독 중에 떠올린 '가을의 마음'...


 그러니까, 오이샌드위치와 채소절임으로 버티던 여름이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이자카야 창가 좌석에서 일본식 무조림을 먹기에 좋은 계절이 왔으니까. 무조림을 젓가락으로 잘라 입에 넣고 눈을 감고 음미하는 저녁. 옆에는 따끈한 정종이 놓여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마음 맞는 사람과 붙어 앉아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겠지. 이 나이에도 젓가락질이 서툰 나는 젓가락 쥐는 법을 다시 배울지도 모른다. 간이 딱 맞게 밴 무조림만 있다면 나는 다시, 가을의 마음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는 초겨울 것이어서 물이 올라 통통했다. 예닐곱 번쯤 거품을 낸 후 냄비 바닥에서 떠올라와 끓는 은행잎 모양의 무 중에 괜찮은 것을 젓가락으로 골라냈다. 소금종지에 한 조각을 올려놓고 한 김 날려 보내고 맛을 보았다.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겸손한 풍미가 입 안에서 다시 한 번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성숙한 땅속뿌리의 냄새가 났다. 그것은 의외로 단맛이 났다. _오카모토 카노코, <식마> 중(소설집 <초밥> 수록)


(밤의점장)
















작가의 이전글 테오와 고흐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