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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ung KIM Nov 02. 2022

에고 버리기 연습


 내 책상 앞 벽에는 종이들이 부산스럽게 붙어 있다. 일정이 적힌 캘린더(다이어리 속지를 뜯어낸 것), 밤의서점에서 출간 예정인 <클리마> 편집계획표, 트위터에서 본 100일 프로젝트(2022년 9월 23일부터 시작) 등등 내 머릿속을 반영이나 하듯 의무와 욕망이 혼재되어 있다. 일정표 맨 위에는 ‘에고 버리기 연습’이라고 적혀 있다. 매달 캘린더를 교체할 때마다 이 문구는 바뀌는데 이 구절은 꽤 오래 살아남았다.


 내가 책을 읽으며 찾아 헤맨 것은 어쩌면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교에서 말하는 온갖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책 속에서 다양한 재미나 교양을 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책을 통해 배우고 싶었다, 에고에 사로잡히지 않고, 생각에 가둬지지 않고,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려고 무리하게 애쓰지 않는 삶을. 그런 게 존재한다면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다.


 지난 주 서점에 방문한 회사 동기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고등학교 시절 일화가 우연히 떠올랐다. 고3이던 나는 반에서 1등을 하고도 전교 등수가 8, 9등이면(전체 8반까지 있다고 할 때) 담임 선생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괴로워하던 학생이었다.(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데 실제로 그랬다.-_-) 회사에 들어가서도 이런 성향은 그리 바뀌지 않았으니 참으로 사는 일이 퍽퍽할 수밖에. 스스로에게 정한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 없었다. 이런 나를 많이 변화시킨 것은 두 번째로 들어간 회사였다. 나는 부모님이나 친구들로부터도 들어보지 못했던 칭찬을 그 시기에 가장 많이 들었고, 일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괜찮다고 인정하게 되었다.(하지만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도 ‘일부분’, ‘인정’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라.)


 지금 노화의 다양한 징후를 느끼면서도 사십대가 되어 좋은 점이라고 하면, ‘뭔가를 기대만큼 잘하지 못하는 나’를 점점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십대의 나는 자잘한 실패 앞에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자학을 일삼았으나, 사십대의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다한 거라고 생각하고(혹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줄 안다. 다른 사람은 원래부터 이런 식으로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나로 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 글만 해도, 어젯밤까지 어떤 책을 다뤄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일단 자고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밤사이 활동하던 무의식이 뭔가를 내놓긴 하더라.


 <초인적 힘의 비밀>을 쓴 앨리슨 벡델은 나와 조금 다른 유형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자기계발에 문제가 좀 있어. 인간으로서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거든. 어쩌다 사용설명서를 못 받은 것처럼.” _<초인적 힘의 비밀> 중


 이 책은 여자에게 한계를 지우던 시대 속에서 불안과 우울, 세상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원했던 벡델의 운동 탐구기이자 회고록이다. 운동에 전념함으로써 세상을 초월하고 싶었던 그녀의 모험이 한 축으로 기술되고, 놀라우리만큼 풍부한 예술문화 및 정치적 조류가 다른 한 축에 펼쳐진다. 에고 버리기라는 주제에 몰두해 있던 나는 손님에게 이 책을 선물받고 영감을 얻었다.

 그래픽노블의 특성상 앨리슨 벡델의 인생의 장면들이 개성적인 그림체로 펼쳐지는 가운데 저자의 고민이 기술된다. 공을 차고 근육과 맷집을 키우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오늘날, 나는 이 책 속에서 내면의 공허함(혹은 부풀어버린 에고의 장난)에 맞서 싸우는 동지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를 광란의 심폐운동으로 몰아가는 공허함의 정체는 뭘까? (...) _본문 15쪽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거야.

머릿속을 벗어나 자아를 초월하는 탐색에 함께해,

내가 남과 별개라는 착각을 버리고,

온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나와 상관없다는 착각도 버리고. _본문 27쪽

집에서는 아이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부담 없이... 오래된 테니스공을 가지고 무아지경에 빠져 혼자 노는 것을 정말 좋아했어. 얼마나 높이 던지고 받을 수 있을까.

발을 움직이지 않고 몇 번이나 공을 잡을 수 있을까?

특별한 묘기를 부리려고 할수록 공을 잡기가 더 어려웠어.

이윽고 털이 보송보송한 이 공을 다루는 비법을 알아냈지.

바로, 애쓰지 않는 거야.

공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테니스공과 하나가 되는 이 경험을 통해서 작고 미약한 나 자신을 확장하는 방법이 신체적인 힘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어. _본문 40-41쪽


 앨리슨 벡델에게는 신체 단련이 하나의 통로였지만, 나는 이처럼 에고에 갇히지 않고 자신을 확장하기 위해 부단히 탐구하는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매혹된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혹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이런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주변의 흐름에 쉬이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감각으로 깨달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그런가 하면 철학자 피에르 자위는 ‘드러내지 않기’라는 소박한 저항의 개념을 내놓는다. 자신의 브랜드를 어필해야 하는 집요한 자기증명의 시대에, 그는 ‘사라짐의 기술(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이 하나의 소박한 저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과 눈에 보이는 모습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잠시나마 그렇게 하지 않는 데서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관점의 문제일 것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의 욕구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한,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끊임없이 예측하면서 사는 한, 세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반면 더 이상 자기도 없고 타자도 없는 순간, 그때부터 시야가 넓어지고 수많은 소실선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듯이 세상은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감미롭도록 다양하게, 아득하게 나타난다.

이게 무슨 일일까? 있는 듯 없는 듯 남들 눈에 띄지 않는 투명한 입장이 당신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전능함에 대한 환상,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환상, 만인과 각자를 책임진다는 환상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_피에르 자위, <드러내지 않기> 중 


 타인의 기대를 채우려고 끊임없이 예측하는 삶은 늘 긴장되고 피로하다. 우리는 성취의 잣대로 평가되고, 내 앞의 상대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 혹은 경쟁상대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환상’을 내려놓게 되면 비로소 “내 앞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조용히 음미”하게 된다. ‘드러내지 않기’는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우리 사이의 시간을 유예시키는 비밀의 기술이다. 피에르 자위의 문장은 쉬이 읽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에고 버리기 연습 중인 나에게 하나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음미하며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자신을 고정시키는 편견이나 아집, 높은 기준으로부터 놓여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십대 분들에게는 귓속말로 들려주고 싶다. 조금씩 조금씩 편안해질 거라고. 그러니 우리를 옴짝달싹못하게 만드는 생각의 홍수 속에서 살짝 발을 빼는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깨어서 삶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 생각으로 뒤덮이지 않으려는 마음, 다른 이들도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 그 생각들이 진짜라는 허상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 _<초인적 힘의 비밀> 중

(밤의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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