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저
안락사, 존엄사, 조력 자살, 그리고 조력 존엄사
이 첫 장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MAID 평가, 즉 안락사 의사로 환자를 판정하는 일을 하며 얻은 경험은 나에게 강렬했다. 환자와의 짧은 만남, 거의 일회성 상담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각인된 장면들을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내가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요즘 세상은 '잘'에 집중하는 시대다. (지금 글이 나오는 시점...2024 년도의 12 월, 바뀌었을 수 있다.)
웰빙은 잘 사는 것, YOLO (You only live once) 는 현재를 즐기는 것, FOMO (Fear of missing out) 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SNS와 팬데믹을 거치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더 깊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치료와 상담이 점차 일상적인 주제가 되었다. 나 역시 팬데믹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잘 죽는 방법'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
안락사나 존엄사 같은 주제는 삶이 여유롭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더 주목받는다. 생존 자체가 급박한 상황에서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의료 기술의 발전과 평균 수명의 연장, 반려동물 안락사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들에서도 제도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제도적 허점과 윤리적 논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 혹은 어이없는 실수들이 우려를 낳는다. 실제로 안락사 관련 사건들은 종종 뉴스에 오르내린다.
안락사는 과연 '잘 죽는 것'일까?
종교적 논쟁을 떠나서도 이는 간단히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삶과 죽음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떤 이에게 안락사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전 동의와 충분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잘 죽는 것' 아닐까?
2023 08 - Jumping Pound Tr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