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D

2. 경험 소화의 중요성

by 아보카도나무
경험의 소화

나는 지금 내 경험을 글로 옮기며, 내가 지나온 길을 스스로 소화하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겪었던 사건들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잊혀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금 붙잡고 싶다. 사람은 기억을 통해 성장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기억이 단순히 남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어떻게 내 삶에 다시 흘러 들어와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그리고 내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일 것이다.

2023년 8월 2일 기준, 나는 총 32건의 MAID(조력 죽음) 평가를 진행했고, 한 번의 시술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중 일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들이 선택한 길을 따랐고, 또 누군가는 자연의 섭리를 따라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분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의료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의대라는 반전

나는 의대를 졸업했다. 처음 의대에 들어간 것은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큰 반전이었다. 당시의 나는 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민 1.5세대로, 나와 내 가족이 겪었던 어려움은 흔히들 말하는 '이민자의 숙명'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영업을 하셨고, 네트워크는 제한적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의대라는 길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되었고, 나는 의대생이 되었다. 그것도 내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지역에서.

하지만 내 안의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종종 이렇게 스스로 물었다.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될까?" 의대에서 만난 동기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의 부족함을 실감했고, 언젠가는 내가 그들 앞에서 탄로 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나중에 이 감정을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이 감정은 의대 시절뿐 아니라 이후에도 여러 번 나를 찾아왔다. 특히나 훌륭한 선배 의사들을 볼 때면 그러했다. 나는 그들이 가진 능력, 지혜, 그리고 가정을 이루며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에 그저 경외감을 느꼈다.



가정의, 그리고 MAID

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의대 입학 당시의 나는 가정의를 목표로 했었다. 사실 그때는 가정의 외에는 다른 의사를 만난 적도 없었다.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전문의는 내게 먼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의대에서 배운 것은 가정의가 얼마나 넓고 깊은 분야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가정의로 일하면서 나는 의료의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싶었다. 가정의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그 폭넓은 가능성이었다. 응급실, 요양원, 산부인과, 정신과, 스포츠 의료, 중독 치료 등 내가 원한다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여러 길들 중 하나가 MAID였다.

MAID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분야였다. 인간의 존엄과 삶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의료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또 삶을 완성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넓고 얕지만 깊은 경험들

나는 가정의가 된 이후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내 전문의 자격증이 가진 한계를 알고 싶었고,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캐나다에서는 가정의가 공식적으로 전문의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다른 전문의들에 비해 사회적 존중(respect)이나 보상(compensation) 면에서 낮게 평가되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 대신 가정의는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의료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돕는 행위다. MAID 역시 그 연장선에서 내가 배워야 할 하나의 과정이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개인적인 이유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정리하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이 질문들은 단순히 나를 반성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알려준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나는 내 선택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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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8 - Rae Glac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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