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knownothing Oct 03. 2023

여행 일기

Tuscany

10일 간 여행을 다녀왔다.

금세 많은 것을 잊고마는 탓에 글로 이야기를 기록해본다. 이렇게나마 적지 않는다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글의 소중함을 잃게될 것 같기도 했다.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때 누구나 불안함도 함께 느끼는걸까? 두 손에 꼭 잡히는 말캉한 물방울을 손에 쥐고 있는 느낌. 조금만 세게 누르거나 느슨하게 잡으면 금세 도망가버릴 것만 같은... 이번 여행을 떠올리면 이런 기분을 느낀다. 그만큼 아름다웠단 뜻일 것이다.


눈을 감고 이번 여행을 떠올리면... 흰 빛에 가깝게 챙한 햇살, 현준의 따듯한 웃음, 자기들끼리 소근소근 댈 것 같이 생긴 작은 나무들,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던 울퉁불퉁한 토스카나의 산길,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체온이 떠오른다. 요일을 잊은 시간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20대때 나는 거의 혼자서만 여행했었다. 속 안에서 왜그렇게도 말을 거는게 많았던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시끄러워서 더 더 혼자 있고 싶었다. 그 때의 여행도 숨을 쉬고 싶어 떠났고, 다른 방식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었지만 고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의 겨울을 한 달 간 혼자 떠나며 병이 생길 것 같은 경험을 하고 나서야 이제 혼자는 너무 길게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까지도 가끔씩 함께하는 것이 두렵다. 너무 소중해서 사라질 것만 같다. 평생 함께를 약속한 결혼과 한결같은 현준의 성향은 이런 생각을 문득 잊게 만들고, 그럴 때마다 종종 또 다른 나는 너무 편안해하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말하곤 한다. 이런 편안함과 사랑은 나의 개인적인 소망보다도 늙어서까지 함께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만을 꿈꾸게 만든다. 그 무렵에는 불안함보다는 편안함이 더 익숙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시간의 형태는 일직선이 아닌 처음과 끝이 이어진 형태의 구와 비슷하다는 어느 과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모두 이미 정해져있다고도 말한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내 구 안에 새로운 색이 생겨나고 있다.이번 여행은 그것을 문득 발견하게 된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Fau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