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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Feb 06. 2016

하노이 #4. 환각을 위하여

낯선 것과 뒤엉키다

바나나 3개 5천 원


하노이에서 며칠을 보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거리는 정신없다. 이 혼잡함 속에 그들만의 질서가 있겠지만, 이방인인 내가 쉽게 섞일 수 없다. 거리를 걷다 보면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갔다가 멍한 정신으로 바나나 3개를 한국 돈 5천 원 정도 주고 샀다. 멍청하게. 


hanoi, vietnam. 2015


냄새


오늘 밤 다낭으로 갈 예정이다. ‘바나나 3개 5천원’ 해프닝 때문에 거리 곳곳의 여행사 사무실에서 파는 티켓은 믿을 수 없었다. 또 멍청하게 바가지 쓰기 싫었다. 직접 차표를 사러 기차역까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걷는 길에 거리의 냄새가 계속 반복된다. 오토바이 수리점의 구리스와 휘발유 냄새, 거리 쌀국수집의 육수 끓이는 냄새, 향신료 냄새, 무언가를 굽는 냄새, 매연 냄새 같은 것들이 불규칙적으로 마구 섞여 콧속으로 들어온다. 더위, 도로의 혼잡함과 더불어 환각제처럼 작용한다. 


환각


기차역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기차표를 사려고 보니 영어 표기가 하나도 없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시 또 어지럽다.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써야 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대기실에서 쉬어야지. 기운이 조금 나면 차표를 끊은 후 다시 저 혼돈 속으로 들어갈 테다. 낯선 것, 혼란스러운 것들과 뒤엉키게 될 때 느껴지는 정체모를 환각을 위하여.


hanoi, vietna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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