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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Feb 09. 2016

다낭 #1. 나는 없었다

마음의 강박감이 만들어내는 상실감

danang, vietnam. 2015


쓸데없는 오기


하노이에서 다낭까지 15시간 동안 야간 침대 기차를 타고 넘어왔다. 돈 아끼겠다고 다낭역에서 미케 해변 부근의 숙소까지 한 시간 넘게 걸었다. 먹은 것이라고는 이동 중인 기차에서의 아침 식사였던 쌀국수 사발면 하나밖에 없는데, 물도 없이 뙤약볕 아래 걷다 보니 죽을 지경이었다.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마실 물을 살 생각도 안 하고 해변으로 갔다. 바다를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또 걷다가 갑자기 체력이 확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가까운 그늘에 주저앉다시피 궁둥이를 붙였다.


잠시 휴식을 한 후 숙소를 찾아와 보니 주변은 공사판이고 물 하나 살 가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숙소 직원은 영어가 아예 통하지 않았다. 짐을 놓고 먹을거리와 물을 사러 동네를 배회했다. 다행스럽게 물은 금방 샀다.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한 통을 허겁지겁 다 비우고 다시 숙소로 와서 쉬었다.


my khe beach, danang, vietnam. 2015


강박감


‘세계 일주를 해볼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라, 베트남에서는 200달러만 쓰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돈으로 베트남을 돌아다니기는 무리이진 않을까’라고 내심 예상은 했다. 체력이 떨어지니, 이런 식으로 돈을 아끼며 스스로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더 많은 나라를 가보고 싶어서 돈을 아끼려던 것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도 상관없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굳이 목표 설정을 할 필요가 없다. 마음에 괜한 강박감이 있었나 보다.


체력을 회복한 후 저녁 식사를 위해 해변 호텔들이 즐비한 거리의 인도 요리 패밀리 레스토랑을 갔다. ‘트립어드바이저’ 평점 1위라는 것 하나만 봤다. 베트남에 와서 인도음식을 먹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냥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my khe beach, danang, vietnam. 2015


나는 없었다


메뉴판을 봤다. 습관적으로 가장 싼 걸 시키려고 했더니 직원이 그건 '스타터'라며 식사 메뉴를 주문해야 한다고 했다. 그중 또 가장 싼 것을 고르려 하니 직원이 다른 메뉴를 추천해줬다. 내가 고른 것은 75,000동, 직원이 추천한 것은 85,000동. 직원이 시키는 대로 했다. 커리를 시켰으니 난도 주문해야 하기에 25,000동짜리를 주문했다. 가장 싼 것이었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왔으니 맥주도 시켜볼까 하고 고르다가 또 제일 싼 것을 골랐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먹기 시작하는데 머릿속으로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총 128,000동. 느낌상 엄청나게 큰 단위다. 한국 돈으로 환산해봤다. 7천 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갑자기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돈 아끼자고 그 먼 거리를 뙤약볕 아래 걸어왔던 나 자신이. 그렇게 하면 마치 험난한 여정을 겪어낸 여행가의 모습 같은 것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될 줄 알았던 것일까. 너무 한심했다.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어둑해진 미케 해변을 따라 걸었다. 내가 여기에 무엇을 하고자 온 것인가. 스스로의 이유로 걷는 여행이지 고행이 아니다. 목적이나 목표 따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했었다. 아무것도 '없이 걷는 길'을 걷고자 했다. 오직 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없었다.


하노이발 다낭행 야간침대기차에서. hanoi-danang, vietna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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