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명 Nov 25. 2016

생애 첫 광고상 수상

숟가락만 얹고, 상 이상의 의미를 얻다

올해 초,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 걱정을 하며 지냈다. 프리로 밥벌이하던 것은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였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돈 버는 것이었다. 카드빚만 늘어갔다. 결국, 이 회사 저 회사 이력서도 좀 넣어보고 면접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막상 다시 회사 생활을 하려니 영 내키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을 어렵게 했다. 오라는 곳이 있어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빚지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내가, 대출받을 생각까지 했으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나마 익숙한 업무와 업계 분위기가 나을 듯해서 결국 PR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행히 그리 크진 않지만,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홍보대행사 한 곳과 이야기가 잘 되어갔다. 그러던 중, 예전 직장에서 많이 이끌어주신 분께서 본인이 있는 회사로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로서는 당연히 그편이 나았다. 그분하고 함께 있으면 업무 분야가 기존에 하던 것과 좀 달라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 대표님과 면접 시간을 갖고, 얼마 후 출근을 시작했다.     


회사는 대학로 뒤편 골목 끝에 있었다. 3층짜리 잘 지어진 건물이었다. 매일 4월 말의 햇빛이 골목에 가득 찼다. 주변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강아지 짖는 소리, 옆 건물 어린이집의 아이들 떠드는 소리뿐이었다. 사무실 사람들도 좋았다. 서로 크게 건드리는 것 없이 웃음도 종종 오갔다. 예전부터 막연히 ‘이런 회사가 좋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여름을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많은 일이 있었고, 일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힘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는 방식 자체에 대한 고민이랄까. 밥벌이에 종사한 지 7~8년째인데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더군다나 이 회사에 들어올 때 나름의 목표가 있었으니까.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돈 없을 때의 어려움을 잠깐이지만 느껴봤기에 그냥 그만둘 수도 없었다. 술 마시는 횟수가 늘었고, 해선 안 될 짓도 많이 했다. 그럴수록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더 빠졌다.     


그렇게 그저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올해 쳐내야 할 가장 바쁜 일이 지나갔고,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졌다. 그렇다고 고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돌아볼 시간이 많아지면서 일 자체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언제나 생각은 꼬리를 문다. 이 길이 내 길인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예 신입이라면 차라리 낫지, 그래도 PR 쪽 일 5년에 프리랜서 2년을 보내고 왔는데 여기서 내가 하는 짓이 너무 멍청해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녔으니까. 바로 엊그제까지도 그랬고.     


오늘 오후, 한참 졸린 시간에 대표님이 전 직원을 불러 모았다. 잊고 있었는데, 우리 회사에서 광고 공모제에 출품했던 작품들이 여러 부문에서 수상했다. 해당 업무에 참여했던 직원들 모두 상장을 받았다. 고등학교 개근상 이후 스스로 “앞으로 상 받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수함’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성인이 된 후 첫 상이다. 솔직히 숟가락만 얹었다. 상의 레벨과 내가 공들인 여부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느낌을 묘하게 만든다.     


지금 난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광고 쪽으로 보자면 경력 1-2년 차랑 큰 차이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깜냥도 안 되면서 대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괴감을 느끼는 동시에 방향에 대한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요즘이다. 그런데 이 상 하나가, 생각을 바꾼다. 정말 오랜만에 긴 글을 쓰게 만든다.     


일단은 닥치자. 닥치고 좀 더 걸어봐야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이쪽에 몸담고 싶어 했던 것은 크리에이티브디렉터를 목표로 했기 때문 아닌가. 좀 더 나이가 먹더라도 이 분야에서 자립 가능한 상태가 되고 싶었고, 좋은 기회를 얻었던 것인데, 고민이 성급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PR 쪽에서 가지고 있던 사고 체계와 지금 몸담고 있는 쪽의 사고 체계는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난 과거의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다. 그 한계에 부딪히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 걸어갈 수 있는 길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이 상은 내 상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 생애 첫 광고상. ‘우수함’과는 거리가 먼 나이기에 앞으로 또 상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운이 좋아서 또 상을 받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지금 이 상 덕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아치가 되지 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