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예술가의 생존기
첫 아이를 낳은 뒤 3년 후 둘째, 그리고 2년 후 막내를 낳았다.
아이들은 정말 예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지만,
육아는 절대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프리랜서 작가의 삶은 회사처럼 정해진 복직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약 8년간 세 번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반복하며 이전의 삶과는 자연스레 멀어져 갔다.
다행히도 아주 간간히 작업 의뢰나 관련된 일들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예전처럼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루틴은 나의 삶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프리랜서로 산다는 건 결국 스스로 시간을 알뜰히 관리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핑계가 백 가지나 되었고 그 핑계를 무기 삼아 미루고 미루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막내를 출산하고 나니,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찾아왔다.
육아만으로는 내 삶에 필요한 동기부여가 충분치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전시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접할 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에너지가 피어오르곤 했다.
‘나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니 그 에너지는 써보지도 못하고 늘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에잇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냥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마자 집에서 창고방으로 쓰던 공간을 대충 정리해 놓고, “넌 작업실이다!” 하고 선언해 버렸다.
때마침 작은 작업 의뢰도 들어왔다.
그로부터 한 달간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아이 젖을 먹이고,
그림을 그리다가 부엌 청소를 하고,
그림을 그리다가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을 이어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도저히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
집중은커녕, 일과 일상이 전혀 분리되지 않으니 일의 효율도 떨어졌다.
게다가, 엄마가 창고방에 자꾸 들락날락하는 것이 궁금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 작업실을 침범하기 시작하면서는
원래도 창고 용도로 쓰던 방이었던지라 너저분했던 공간이 애들까지 뒤엉켜 결국 다시 창고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남편이 지인을 통해 저렴한 임대 공간을 알게 되었다며 함께 부동산 얘기를 꺼냈다.
힙지로(힙한 을지로라는 뜻)처럼 힙한 곳이라는 말에 속아서 보게 된 부동산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 힙지로 같은 소리 하네 ‘
그곳은 볼트와 너트, 기계장비들로 가득한 대단지 산업단지였다.
내 스타일과는 완전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여기가 과연 내 작업실이 될 수 있을까? 강한 의심을 갖고 내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라? 여기 그냥 미대 건물이잖아?‘ 대학시절 내가 쓰던 작업실과 굉장히 비슷한 분위기였다.
분명 낯선 공간인데 묘하게 익숙한 공기가 불쑥..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