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happy so what
젊을 때의 고생은 정말 구매 가치가 있을까? 구매한다면 그 고생의 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나는 도시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수학 선생님이 계시는 학원에 다녔다. 그곳을 아는 사람들의 평은 딱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나는 그렇게 우악스럽고 폭력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맞지 않아. 옳지 않은 방식이야.'였고, 다른 하나는 '빌어서라도 다녀야만 하는 학원이다.'였다. 정말 극단적이지만, 그랬다. 학교 시험에서 3개를 틀리면 허벅지를 15대 때리는 곳이었다. 앉아있는 학생의 허벅지를 효자손 또는 죽도로 찰지게도 때리셨다. 학생들은 버텼고, 허벅지에 피멍이 들어 반바지를 입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생으로 남고자 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본인들 자녀를 그 학원에 넣고 싶어서 날 따로 부를 정도였으니, 작은 촌 도시의 일타강사쯤 되는 대단한 선생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사실 맞고 끝나면 다행인 곳이다. 그 학원은 '한 번씩은 쫓겨나는 학원'으로 유명했다. 그게 그 선생님의 교습법이었던 건지, 화를 부르는 학생들은 가르치고 싶지 않으셨던 건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어쨌든 원생들은 본인들도 언젠간 쫓겨날 거란 생각에 불안해했다. 참 긴장감 넘치는 학원이었다. 특히 나는 몇 번이나 쫓겨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나를 많이도 혼내셨다. 난 어디서든 예쁨 받는 유형의 학생은 아니긴 했지만. 집에 가라는 말은, 더 이상 학원을 나오지 말라는 말이었고 나는 자주 집으로 보내졌다. 선생님이 던지듯 쥐어주는 내 가방을 안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터덜터덜 학원 문 밖을 나서곤 했다.
여느 날처럼 쫓겨나는 날이었다. 곧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혼나고 있는데, 선생님이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너는 고생을 해봐야 돼. 넌 너무 편하게 컸어."
들을 당시에는, 별거 아닌 말이, 문장이,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날 때까지 불쑥불쑥 나타나 날 헤집어놓을 줄은 몰랐다. 혼나면 그만인 것이 아니었다. 저 말이, 활자가 뇌에 그대로 그을려져, 실패를 해도, 성공을 해도 자욱 그대로 욱신거린다.
난 너무 편하게 컸다. 내가 겪은 성취의 순간이 온전히 내가 얻어낸 것일까. 운 좋게 좋은 부모 만나 덥석 물은 행운 아닐까.
내가 실패에 깊게 좌절할 자격이 있는가. 난 나쁜 거 하나도 모르고 컸으니 더 고생해보고 더 아파야 맞는 것일까.
성인이 된 이후, 나는 힘들고 지쳐야만 올바르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비교적 편하게 살아온 삶, 그 업보에 죗값이라도 치르듯, 고생을 갈구했다.
20살 때였다. 친구 집을 가기 위해 버스에 탔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햇빛을 받으며 밖을 구경하는데 그 순간이 가슴 벅차도록 행복했다. 볕이 좋은 봄날 평일 낮, 떡볶이 먹으러 아늑한 친구 자취방 가는 길. 나른하고도 보송보송한 그 순간에 나는 진정으로 행복해서 웃었다. 친구들 여럿에게 그 신기한 기분에 대한 카톡도 보냈다. "나 지금 진짜 행복한 것 같아". 성인이 되어서 처음 느껴본, 순수한 기쁨과 짜릿한 환희였다.
일상에서 문득문득 밀려오곤 하는 행복이 그 당시에는 꽤나 잦게 나를 찾아왔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스스로가 멋졌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날은 화창하면 화창 한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은 날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무해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했다. 세상은 친절했다. 나는 항상 주는 것 없이 많이 받았다. 나는 바빴고, 날 불러내는 사람들도 가야 할 곳도 많았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매일을 말도 안 되게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마냥 누려도 모자랄 행복을 걱정과 자책으로 되려 깎아먹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내가 정말 고생해본 적이 있을까. 최선을 다 해본 적은 있을까.'
'내 인생 이렇게 잘 풀리다가 확 망해버리면 어쩌지.'
난 위태로운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동경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참 바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제일 바쁘게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긴장해야 했다. 성공이 보장된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다. 힘들고 지친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이 정도로 지쳤을 리 없다고 생각했고, 난 역시 약하고 안일하구나, 생각했다. 내 시간들을 보상해주는 것은 주변의 인정이었다. 고생 자체가 내게 행복을 주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고생 뒤에 행복이 있을 거라 믿으며 버텼다.
걱정처럼 인생이 확 망해버리진 않았지만, 행복의 시대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는 단언하지 못할 정도의 인생이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날 온전히 사랑하지 않아서 그에 대한 나의 사랑도 사라져 갔다고 말하고 싶다. 무해한 사람들은 결국 무례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지나친 관심을 주다가도 지나치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날이 흐리면 숨이 턱턱 막혀서 이불속에 파묻혀 어둠 속에 하루를 흘려보냈다. 나는 분명 이전과 변함없이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놈의 기분이 땅바닥에 느적하게 붙어서는 걸음을 방해했다.
나는 20살 버스에서 느낀 행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행복을 찾으면 찾을수록, 행복이란 단어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장면의 픽셀은 쪼개지고 쪼개져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해졌다. 나는 행복이 그리웠다. 다시 그 기쁨에 웃음 짓는 소녀가 되고 싶었다. 매일을 힘주어 살면서도, 전처럼 행복해지려면 무얼 해야 할까 고뇌했다.
내 우울은 깊었다. 한동안 그 늪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오기 위해 단순하고 당연한 노력을 했다. 밝은 집에서 건강한 끼니를 챙기며 우울을 잊었다. 늪에서의 과거를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고 나니, 과거의 장면이 낯설고 모순적이게 느껴졌다. 분명 사는 중 가장 어두운 1년을 보냈는데, 그 1년은 인생에서 제일 성실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나는 스스로를 챙길 겨를 없이, 하늘 한 두 번 올려다볼 여유 없이, 사서라도 한다는 그 '고생'에 취해 휘청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힘들다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됐었다. 행복을 애타게 찾지 않았어야 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듯 모르겠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