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과 아미를 이해하다.
싫은 것은 이해할 수 없게 되죠.
좋아하는 것만 이해하며 살아도 괜찮겠지만, 마케터인데 '이해할 수 없는' 것/사람들이 많으면 좀 아쉽지 않나요?
이해하지 않으려는 행동이 곧 생각을 제한하고 있는 일임을 알지 못했다. 호불호가 확실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개성을 찾고 싶어서, 취향이 아닌 것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위해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나,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인했다. 와 닿지 않거나 설득되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알지 않아도 되는 세상사일 뿐이었다. 잔인하게 차단했고 단 한 번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는 관심 있는 것들에게 내 두뇌 속 볕 잘 들고 넓은 자리를 내어주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작게 뭉쳐 조그만 창고에 한 번에 처박아두었다. 눈길을 주지 않았으니 그에 대해 아는 것 또한 당연히 없었다.
'소비자의 마음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일이 직업인 마케터에게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나쁜 표현입니다.'
왜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주관 뚜렷하고 개성 넘치는 거 다 좋은데, 싫은 것을 꼭 좋아할 필요는 없으니 이해까지는 해봐야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엔 다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나만 잘나서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스스로 마케터가 되고 싶다 외치고 다니면서도, 소비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다. 비주류, 유명하지 않는 것을 즐기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비주류가 되었던 주류가 되었던 멋진 것은 주관적이다. 그러니 비주류를 좋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류의 문화를 유치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고 차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좋은 취향'은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옳은 취향'은 없으니까.
어쨌거나 이제까지의 내 마음가짐은 마케터로서 최악이었다. 결국 마케팅은 주류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일 텐데, 그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마케터는 빈번하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내 나쁜 태도를 드디어 객관적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최근 며칠간은, 의식적인 노력을 해보았다.
취향을 이해해보기!
이해한 취향, 방탄소년단
앞서서 '잔인하게 차단했다'는 취향의 한 예시가 방탄소년단이어서 좀 무섭고 조심스럽지만, 내겐 가장 강렬했던 경험이라 용감하게 써본다.
조심스러워야 함을 아는 이유는, 방탄소년단은 현재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위인들이며, 쉽게 싫어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들인 것도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BTS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도 못했다. 언제나 스스로를 젊은 꼰대 혹은 애늙은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 콘셉트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아이돌 음악과 팬 문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내 삶의 역사에 동방신기와 카시오페아라는 큰 서사가 있었기에, 나름 '할거 다 해봤고 알만큼 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요즘 말마따나, '나 때는 말이야~' 혹은 '내가 다 겪어봤는데~'와 같은 극혐.. 마인드로 아이돌과 그들의 팬들을 바라봤던 것 같다.) 더 이상 관심을 가지면 안 될 것만 같기도 했고. '외국에서도 유명하대! 대단하다~!' '몇 년 전에 되고파~ 너의 오빠~ 부르던 사람들 아닌가?'와 같은 말밖에 할 수 없던 무지한 나였다.
그런 내가 'BTS는 모르면 안 되겠구나'라고 느끼게 된 것은, 미국 여행을 갔을 때였다.
23년 동안, 마주한 시간을 세면 24시간이 채 안 될 사촌동생. 가족이란 끈으로 얇게 이어져 서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지 않다면 생판 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와 두 달간을 함께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었다. 아무리 낯을 가리지 않는 나일지라도, 살아온 환경도, 쓰는 언어도 다른 아이와의 시간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언니 된 사람으로서, 말이 끊기지 않을 만한 좋은 이야기 주제를 시시때때로 찾아야만 했다.
"Do you know BTS?" 경악스럽지만, 공항에서 고모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결국 이 문장을 꺼내고야 말았다.
평소 나는 싸이, 김연아, 박지성이 연**중계, *션티비 인터뷰의 단골 주제가 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n번째 시청자였다. 나는 그때 비로소 인터뷰어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고, 머릿속에선 나름의 합리화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이 엘렌쇼에 나오고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저스틴 비버 엠마왓슨의 사랑을 받는다는데, 정말 그런가? 언론플레이 아니고 정말? 캘리포니아 시골마을의 고등학생이 BTS를 알고 있을지, 정말 궁금한데?
사촌동생은 '이런 질문을 받다니 뻔하기 그지없어'라는 표정을 잠깐 짓기는 했지만, 이후로 놀라운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애들은 정말 많이 좋아해! 어떤 아이들은,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해. 진짜야. BTS가 좋아서 그런 거야. 나도 BTS 노래 좋아해. 사실 요즘 나오는 노래들은 취향이 아니긴 한데 (...) DNA가 너무 좋아."
그 말을 듣고 "나도 BTS 좋아해!"라고 말해주기에 나는 아직도 마음이 닫혀있었고, 사실 아는 것이 없어서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도 없었다. 나는 대신 내 '뭘 좀 아는 심오하고 감도 있는' 취향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는데, 동생은 칼리드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기겁을 했으며, 유명 인디밴드 ****의 노래를 틀어주었을 땐 같이 있던 기간을 통틀어 가장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BTS는 내게 '어우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을 벌이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거기서 더 이상의 발전은 1년 동안 없었다.
아이돌 문화는 내게 마음의 짐이었다. 한국 대중문화의 아주 큰 축이라고 할 수 있으니,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빠싹 하게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을 주었는데, 워낙 취향도 아니고 이해할 내용도 방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계속 회피해왔다. 그래서 '이해가 안됐던 것들을 이해해보자'라고 마음먹은 이후 가장 먼저 생각났다. 큰 산을 넘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론이 'BTS를 좋아하게 되었다'가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니, 많이 적지는 않겠다.
신곡 뮤직비디오, 공연 영상부터 시작해서, 인기곡 뮤직비디오, 멤버별 브이로그, 현장 스케치 등등 유튜브에 있는 영상들을 하루 종일 보고 나니, 단박에 아미를, 아미가 되는 과정과 이유를 이해했다. BTS는 노력으로 빛나는 사람들이었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었다. '나는 아이돌 싫어해.'라는 말로 쉽게 판단 지어질 수 없는 그룹이었다. 이후로 사람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핸드폰이 뜨거워지도록 BTS의 멋을 전하고 다녔다. 아직 팬이라고까진 말할 수 없지만, 응원하는 국민 중 한 사람, 히트곡쯤은 노래방에서 쉽게 부를 수 있는 신세대 아주머니 정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좋아한다.
과거의 우매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할매 할배들한테 말해주고 싶다. 일단 한 번 보십쇼. 보고 나서 싫단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만 해보려고 했던 것을 어느새 좋아하고, 진심어른 응원까지 하게 된 나를 보며 결국 다짐하게 된 것은,
"이유 없이 싫을 수는 있는데, 싫다고 말하기 전에 일단 알아보려고나 해보자. 그 후에도 싫으면 격하게 싫어하던지."
이 말은 여러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겠다. 축구가 싫다고 하기 전에, 축구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아는데? 혹은,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그 이유는 정확히 뭔데? 방탈출이 마냥 하기 싫은 이유는? 모두가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이상하게 비주류가 끌리고 B급의 것들에 애정이 가는 나는, 그래도 마케터가 되고 싶은 나라면, 꼭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잘 점검해보아야 한다.
어쩌면 정말 주관이 뚜렷하고 명백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의 경험과 탐색을 거친 사람들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고작 편협한 생각을 가진 고집스러운 인간뿐인 것이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새로운 것들 혹은 이제까지 무시했던 노이해 분야들을 깨부수어볼 예정이다.
일단 써놓아야 행동을 하니, 이 글은 [노이해 리스트업]으로 마무리짓겠다.
클럽 밤샘
푸드트럭
자기 계발서
목욕탕
PC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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