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을 이해하다.
예민보다는 예리하고 싶었다. 둘이 뭐 그리 다르다고 그러느냐 묻는다면, 계피와 시나몬, 아메리카노와 롱 블랙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조금 조약 하다 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에겐 아주 미묘하고도 중요한 차이이다. (A:예민하네) 입술이 삐죽 나오다가도 (a: 예리하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누군가는 나의 날카로운 감각, 예리한 눈썰미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티미하고 timid 한, 예민충 면모는 들키고 싶지 않다.
아 내가 쫌 예리하긴 한데 ~ 예민충은 아님! 아무튼 아니라고.
내 예민의 역사는 깊다. 보통 예민해서 좋을 때보단 고통스러울 때가 더 많다. 내가 나를 모르던 어린 날들엔, 그 아픔이 더욱 심했다.
어릴 적 주말마다 찾던 할인마트는 언제나 내게 15분 동안의 천국, 그리고 나머지 시간의 사막을 경험시켰다. 나와 키가 엇비슷한 쇼핑카트를 끌고 마트 안으로 들어서면, 압도되는 다채로운 색감과 강한 조명, 온갖 소음에 흥미를 느낀다. 놀이터와 보물창고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공간 같다. 하지만 이런 것 저런 것의 존재를 파악하고 나면, 마트라는 공간은 내게 백해무익한 곳이 된다. 유독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탁한 공기, 지겹도록 나오는 마트 홍보 멜로디, 툭툭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도무지 제어가 안 되는 카트 바퀴와 무거운 손잡이, 저 멀리 지나간 얼굴은 알지만 인사하기는 죽어도 싫은 사람, 그 외 다수. 어쩌면 마트의 모든 것. 몇십 분이 흐르면 식은땀이 나도록 배가 아파왔다. 복통은 언제나 마트 문을 나서면 깨끗하게 나았다.
감각이 민감해서 예민한 나는, 일부러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기도 한다.
전시회에 일단 입장하면 제시된 모든 것들을 다 흡수하고 느껴야만 한다. 시각적인 것부터, 관내 위잉 위잉 백색소음, 작품을 비추는 조명의 조도나, 퀴퀴하면서도 기분 좋은 냄새. 작품 하나를 보더라도 가까이서 뜯어보고, 멀리서 전체를 본다. 작품 설명을 읽고, 작품명과 작품을 대조하며 숨겨진 의미를 찾느라 머리가 바쁘다. 팸플릿도 읽고, 벽에 써진 글도 읽는다. 앞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한다. 작품을 내가 너무 오래 보고 있나? 조금 물러서 있어야 할까? 이 작품을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나. 조금 더 볼까. 지나치면 후회하지는 않을까. 생각으로 꽉 찬 머리를 두 시간 동안 달고 다니면, 온몸의 진이 다 빠져버린다. 피곤함이 밀려온다.
앞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인정하기 싫은 예민함으로 인해 난 항상 피곤했고, 지쳤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로 기분이 상하고, 스스로 속 썩고, 밤새우던 날들의 반복이었다. 예민함을 받아들인지는 오래되었다. 다만 이런 내 성격을 사랑해주고 싶었다. 인정을 넘어 애정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책 [예민함이라는 무기]는 내 손에 들려졌다.
책에서는 예민해서 불행한 사람, 예민해도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을 대조시키며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을 소개한다. 예민함과 외향성을 동시에 지닌 나는 책 속의 자가진단법을 통해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다음은 자가진단의 일부 항목이다.
때로 나는 슬슬 기운이 목까지 차오르면 익숙한 것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해내고 나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임할 수 있었는지 뒤늦게 놀라곤 한다.
나는 일종의 이중생활을 영위한다. 겉으로는 시원시원한 타입인데, 속으로는 소심한 나를 경험한다
예민하면서 외향적인 사람을 책에서 묘사하는 바는 이렇다.
당신은 예민한 동시에 센세이션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중략) 예민한 사람 중에는 '과잉 부담'과 '과소 부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갈등하는 사람이 많다. 무리해서라도 잘하고자 하는 면과 그냥 다 놓고 싶은 면이 교차할 수 있다. 예민한 것과 모험을 좋아하는 것이 공존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예민한 동시에 센세이션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자신에게 두 가지 면이 있음을 지각하고 존중하며 그것을 기꺼이 펼쳐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예민함을 겪을 때면 숨이 가빠지거나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각되는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면서 떨쳐내지 못한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거슬리는 감각을 제외하고 느껴지는 감각은 무엇인지, 지각하지 못하고 있는 감각은 혹시 있는지 따져보며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이외에도, 거슬리는 요소를 지각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법이 있는데,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긍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책을 읽은 이후에 실생활에서 활용해보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알게 된 사실 중,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명상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의 경우, 명상으로 완전한 고요함과 침착함을 경험한 이후에는 일상생활에서 밀려오는 소음과 감각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진 채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꾸준한 명상에 실패한 요인이 이것이었을까. 오히려 가만히 호흡하는 것보다, 가벼운 체조나 요가를 통한 동적인 명상이 더 도움이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느라 스스로를 알지 못하게 된 사람들. 예민한 사람은 스스로를 지각함으로써 갈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건강한 이기주의자가 되어보자. 나 그리고 나의 필요에 집중해보자. 이타주의에서 벗어나자.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스스로의 예민함을 인정할 수 없었던 가슴 한 켠의 응어리가 사르르 고운 가루가 되어 풀어진다.
진득하니 엉겨 붙어 둥둥 떠다니거나 침전해있던 감정은 책의 구절들로 인해 살살 저어져 녹아들고,
비로소 나는 자연스레 흐를 수 있다.
미운 부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태도를 달리하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나는 완전무결한 인간이 된다.
나는 예민하고, 그런 날 잘 알아. 난 예민한 게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