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이해하다.
2019 2학기 조직개발 첫번째 과제
(최종수정일 19-09-17)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동서양에 따라 다르고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이 상이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을 이해하려는 새로운 시선은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이라는 동물을 이해하고 규정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들. 그 중에선 철학의 이름으로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오랜 시간 회자되는 것들이 있고, 진화론에 입각하여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진화심리학과 같은 과학적 접근도 있다. 진지함을 조금 벗어나자면 재미 삼아 하는 여러 성격유형 테스트, 그중에서도 그나마 비교적 과학적이라고 믿어지는 MBTI가 유행 중이다. 이는 너무 새롭고 재미있기에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그 시선을 덮어쓰고 사회를 바라보자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하고 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MBTI는 사람들이 가진 성격과 기질을 16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12분 내외로 작성된 검사지를 통해 나는 누구인지, 왜 그러한 특정 행동 성향을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결과로 나온 성격유형의 장단점, 연애관과 사회생활 방식, 어울리는 직업과 같이 상당히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 테스트는 널리 확산되며 유행하기 시작했고, 많은 신뢰를 얻었다. 급기야 사람들은 특정 상황 안에서 각각의 성격 유형들의 반응과 심리, 유형 간 서로 멀리해야 할 조합과 천생연분 궁합과 같은 밈(meme)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재미로 보는 것이라지만, ‘나는 분석형 중에서도 대담한 통솔자(ENTJ)고 너는 탐험가형 중에서도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ESTP)네!’라며 한정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기괴하다. 같은 ENTJ라고 해서 내가 스티브 잡스와 동일한 사람이라는 법은 없고,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ENTJ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스스로를 하나의 틀에 집어 넣고 이에 맞춰 자신을 이해하려는 것은, 변화와 성장을 저해한다. 마치 나름 제각각의 형태를 띄고 있었던 쿠키 반죽들이 하트, 별, 원 모양 따위의 틀에 찍혀서 납작 반듯해지는 것과 같다. 아무리 16개가 다 다른 예쁜 모양틀이더라도, 달랐고 다를 수 있었는데 모두 비슷해지려 애쓰는 것이다. 지구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유한 성격과 기질을 단순하게 몇 가지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모호하다. 우리는 직관을 우선적으로 믿고 행동하다가도 원리원칙과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반대의 상황도 물론 있을 수 있다).
나는‘사람 개개인을 각기 다른 하나의 우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을 믿는다. 우리에게는 서로 눈으로만 보아선, 또 어느 정도 같이 어울려서는 전부를 파악할 수 없는 각자만의 세상이 존재한다. 스스로도 광활한 본인을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니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보는 것은 더욱 어렵고, 불가능하다.
또 이미 커다란 우리라는 존재는 우주와 같이 멈출 수도 막을 수도 없게 팽창하여 넓어져간다. 16가지 중 하나의 유형으로 못 박아두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사람은 너무 쉽게 변한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너무 다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집단 그리고 집단과 집단간의 상호작용은 필연적이고, 끊임없는 외부의 영향은 언제나 크고 작은 변화를 낳는다. 이에 따라 취향도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도 변한다. 변화는 시시각각 찾아온다.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사람은 우주다’라는 답을 했다면, ‘사람을 어떻게 (잘) 봐야 할 것인가’에는 ‘우리 모두가 각각의 우주임을 받아들이자!’고 말하고 싶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얼기설기 그려진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모두는 다른 존재임을 앎으로써 그 복잡함은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기대를 덜어내는 것,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책망하지 않는 것이 수월해진다. 원치 않던 결과를 맞이했을 때 이를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질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사회은 나만의 세상이고, 이는 타인의 세상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사회과는 같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변할 것이면 어떻게 변할지를 생각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므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건강한 관점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바라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다.
과거의 나는 MBTI를 부정했다.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는 개념 자체를 싫어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을 거라 믿고 있었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쩌면 길고 긴 테스트 끝에 마주하게 된 결과가 썩 내 맘에 들지 않았기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는 글로써 규정될 수 없는 사람이야!'라는 반항심을 가슴 한 켠에 품고 MBTI 결과를 친구들과 공유했다.
당시엔 유튜브에 한창 MBTI 관련 컨텐츠가 많이 추천되곤 했다. 호기심에 클릭한 '_NT_유형의 특징'을 다룬 영상에서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ENTJ 유형이다.)
"이 시험 정말 맞는거에요? 이걸 어떻게 묻죠? 라며 따지러 오는 분들은 백이면 백 NT기질 분들이었어요."
어?
확 설득 당하는 말이었다. 내 성격유형이 본래 MBTI 같은 성격테스트를 믿지 못하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하고, 나는 정말 격하게 MBTI를 의심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꽤 오래 지속됐던 의심의 눈초리는 어느새 흥미와 재미를 찾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결국 저런 글을 써내고서는, 반년째 MBTI를 공부(..)하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모든 MBTI 컨텐츠를 보는데 이어 해외 크리에이터의 영상까지 찾고, 시도때도 없는 구글링 등, '공부'라는 단어가 딱 맞도록 성격테스트를 탐구하고 즐긴다.
MBTI의 매력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해할 근거가 생긴다는 점에 있다. 지인의 성격 유형을 듣고 그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한다. 나와는 다르게 너무 감성적이던 사람이나, 쉽게 서운함을 느끼던 사람들, 하물며 매일 약속시간에 늦던 친구들까지 MBTI는 근거를 들어 설명해준다. 그들을 그들로 만든 것은 우등기질과 열등기질이라고. 그 사람들은 잘못 되었거나,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또 성격 유형별 궁합을 보면, ENTJ의 경우에 최악의 궁합이나 만나지 말라는 유형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응?' 싶었지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그 인과관계를 바로 이해하더라. "너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랑 만나고 다니잖아. 나는 정말 잘 맞는 사람 아니고선 절대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는데, 너는 나 말고도 다른 무리들에 잘 녹아든다고 생각했었어." (이 친구는 날 MBTI무새로 만든 장본인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싫거나 어울리기 별로인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는 성격이었고, 사실 잘 맞춰줄 수 있었던 큰 이유는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0에 수렴했기 때문이겠다. 내 성격의 주요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매정하다시피 정이 없고 기대도 없다는 것. (처음 MBTI 결과를 접했을 때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이런 내용 때문이었을 것.. 받아들이기엔 너무 차갑잖아요)
어쨌거나, 이젠 MBTI 결과에 적당한 정도의 신뢰가 쌓이면서 내 모난 성격도 인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저 에세이에 쓴 것처럼 사람의 성격이 쉽게 바뀐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성격이 쉽게 바뀐다느니 바뀌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은 사실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지, 사실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믿고싶다.) 사람은 16가지 중 하나의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생각도 같다. 다만 지금은, '카테고리화'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음악 장르는 수도 없이 많고 또 새로이 생겨나지만, 클래식, 락, 재즈와 같은 장르 그리고 그 장르의 대표적 특징 정도는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성격 장르 중 ENTJ에 속하고, 그렇다고 내가 세상의 모든 ENTJ와 싱크로율 100%의 성격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나도 미란다 편집장님은 무섭다고..)
ENTJ의 MBTI 적응기, 끝!
세상의 모든 엔티제와, 엔티제에게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짝) (짝)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