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는 해변에서 죽을거야

I would die in ecstasy

by 상구



나는 노라 존스의 음악을 좋아한다.



재즈를 즐겨듣는다고 말하고 다닐 적이 있었다. 그러다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멈추게 되었다. '나 재즈 좋아해'라는 말 뒤에 '즐겨듣는 재즈 음악이나 아티스트가 있니?'라는 물음이 따라붙었을 때, '노라 존스, 쳇 베이커!' 라는 대답을 꺼내기가 싫어졌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하면 좋아하는거지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 좋아하면 다 잘 알아야돼?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의 소리도 저렇다. '모르는게 왜 부끄러워? 모르면 모르는거지. 음악은 그냥 즐기면 되잖아?' 저런 [정답]같은 말은 나도 충분히 스스로에게 건내어왔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나 그리고 재즈의 역사를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막상 파자니 조금 귀찮은 나, 이 둘의 눈치 싸움이니까.




만일 당신이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재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루이 암스트롱



그렇지만 재즈는 소울이고, 재즈는 자유다. 시대의 애환이 담겨있는 만큼 역사 또한 깊지만, 재즈는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재즈를 가장 잘 이해하는 법은, 재즈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재즈는 다른 장르들과는 다르게, 나의 귀찮음에서 비롯된 무지를 용서해줄것만 같다. 그저 리듬과 스윙을 잘 즐겨주기만 하면 되는. 더 이상 깊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은. 알면 더 많이 보인다-와 같은 말 없이 두 팔 벌려 날 반겨줄.


그래서 난 재즈를 순수하게 좋아해보기로 했다. 재즈가 허락한대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내 자유의 시간을 재즈에게 내어주기로.






바다는 내게 무장해제의 장소이다. 삶의 무기들을 모래사장 위에 다 던져두고, 훌훌 털어 가벼워진 몸을 얹어두는 곳. 주저앉아서, 누워서,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유 이상의 것을 찾아 헤메다 돌아서는 곳. 그래서 마음이 헛헛할 때 습관처럼 바다를 찾는다.



언젠가 사랑하는 친구와 새벽기차를 타고 일출을 구경하러 정동진으로 향했었다. 이제는 없는 정동진행 무궁화호. 낭만을 위해 고생 쯤 기꺼이 하는 사람들의 기차였다. 어둑어둑한 청량리역사에서 우르르 탑승 플랫폼으로 걸어가는 일이 왠지 모를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탑승 전까지 '기차에서라도 눈 붙이고 있자'고 이야기했지만, 금새 까먹고는 노래를 듣고 대화를 나누며 밤을 꼬박 샜다.


몽롱한 정신과 새벽 바다바람에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담는 바다는 꽤 낭만적이었다. 5시간의 긴 여정이 바로 잊혀질만한, 그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떠오른 해가 높게 더 높게 올라가는 동안에도 정동진에 머물렀다. 흐르는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초여름이었다. 해와 나의 각이 90도에 가까워질 시점부터는 햇빛이 꽤나 강렬했다. 우리는 아랑곳 않고 모래사장에 나란히 누워서, 서로의 재생목록을 나눠 들었다. 내 차례엔 당연하단 듯이 노라 존스의 음악이 섞여 나왔다.


'재즈를 좋아하는 나'에게 Don't Know Why는 매일을 빠짐없이 듣는 노래였으니까.



I will die next to sea -




미래에 대한 계획이라고는 저녁에 먹을 주종 생각 뿐이었던 나는, 그 때 죽는 순간을 위한 계획을 떠올렸다.


나는 꼭 해변 모래사장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죽을거야.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상의 자유였다.



그 이후, 어느 여름날에 나는 바다에 둘러싸인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적응이 될 만도 하면 어색한 외국인들의 땅에서, 나는 유독 에어팟을 자주 꽂고 다녔다. 여행에 가서는 현지에 어울리는 노래를 하나 정해서 계속 들어야, 여행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가 보일때마다 노라존스의 노래를 틀었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편안하게 눈감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나는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자유를 찾았고, 비로소 자유를 내 품안에 가득 넣게될 그 순간을 상상했다. 자유에 대한 상상은 날 살짝씩 가볍게, 그리고 환하게 만들었다.


친구 덕분에, 나는 Don't Know Why를 재생하는 순간 샌프란시스코의 덥지만 상쾌한 공기를 느낀다. 모래사장의 까슬함과 살포시 뺨과 팔에 내려앉는 바람, 끝내 얻을 자유를 상상하는 나를 회상한다.






재즈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지만, 기억하던, 그래서 날 움직이던 그 가삿말은 바뀌었다. 사실 원래부터 틀린 가사였다. 난 완전히 잘 못 들은 내용대로 내 미래를 그려나갔던 것이다. 원 가사는,


I would die in ecstasy.

노라존스는 바다에서 죽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않았다. 'ecstasy'라는 마약을 한 것처럼, 황홀경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노래했다.



글쎄, 완전히 다르게 이해했다고 보지 않으려고 한다. 바다는 내게 황홀경의 장소니까. 자유가 끝없이 확장되는 공간이니까. 그러니 오해의 시간에 큰 실망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동안의 나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럽고 또 지치던간에, 결국 나의 마지막은 어떻게든 아름다울 거라고 믿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여전하다.


샌프란시스코 시립 재즈홀에서 만난 글귀. "나는 죽으면 재즈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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