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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의 점 Dec 11. 2023

삶이라는 노래에 어울리는 볼륨은?

[퇴고 프로젝트] 23년 11월 10일 블로그의 글


" 관조는 조용한 삶의 특별한 선물이다.

삶이 조용할 때, 내가 쓰는 글이 무엇인지, 책은 왜 읽으며, 삶은 어디로 나아가는지 물어볼 수 있다.

조용한 시간 속에서 삶은 비로소 하나의 정물화 - 하나의 성찰적 그림이 된다. "

- 문광훈, 『조용한 삶의 정물화』, 에피파니, 2018.


삶을 살아감에 있어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고자하는 태도. 이는 각자마다 그 적극성의 정도, 의미와 가치가 다르게 매겨질 테다. 어느 누군가는 한 번 세상에 태어난 이상 화려하고 북적북적한 하루들로 생애가 채워지길 바란다. 또 다른 이는 가능한 제일 작은 목소리로 세상과 대화하는 반면 자신 스스로와는 끊임없는 문답과 논의가 오가는 '성찰적' 삶을 꿈꾼다. 혹자는 두둥실 바람을 따라 떠다니는 깃털을 닮은 인생 속에서 우연의 미덕을 느끼고자 한다. 그는 삶의 방향성과 목적을 지정하거나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니, 조용한 시간을 확보할 이유도 크게 없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비겁하게도) 나는 회색 지대에 서있고자 한다. 혼을 쏙 빼놓도록 발광하고 쿵쿵대는 곳에서 박자를 열심히 타다가도 잠시 문열고 나와 얼마든지 기대 쉴 수 있는 나무로 향하는 삶이면 좋겠다. 조용해져야하는 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잠시 세상 속에서 모습을 감출 줄 아는, 적당히 적막한 인생이라면. 소리가 소음이 되는 기점을 아는 사람이라면.


12월 31일 자정 경 보신각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평일 오후 6시 20분경 강남역 출구를 지나보았는가? 관중 속에서 시야는 까만 머리들로 가득차고,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무섭도록 빠르게 흐르는 계곡물에 떠밀려 내려가는 느낌이다. 물살에 휩쓸리다보면 줄기가 등떠미는 힘에, 부딫혀 갈라지는 물살의 거친 소리와 쉴 새 없이 눈 앞으로 튀어오는 물방울에 쉬이 침착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잠시 떨어져 뭍으로 나올 수만 있다면, 따뜻한 햇살에 달궈진 바위 위에 가만히 누워있자면, 그제서야 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군, 어느 정도의 속력이었군, 어떤 식의 싸움이고 타협이었군, 하는 깨달음을 준다. 차츰 호흡이 가다듬어진다면 시간은 제 속도를 찾아가고, 가끔은 잠시 멈춘 듯한 기분 또한 든다. 작은 감각도 하나 하나 온전히 느껴지는 적막에 다다른다면 한 번 더 물살에 뛰어들어볼 용기를 머금기도, 아직 더 쉬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내게는 이런 수순의 삶이 옳다. 삶의 볼륨에 변화가 없다면 적당한 시끄러움도 적당한 조용함도 적당한 수련도 적당한 성찰도 파악할 수 없다.


콧속 깊숙한 곳이 시린 공기를 마시는 계절이다.

멈춰가기 좋은 때로군, 노란 잎과 파란 하늘을 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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