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편지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지금 초가을의 울창한 나뭇잎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초록색과 노란색이 자꾸만 일렁이는 게 귀해서, 자꾸 시선이 빼앗깁니다. 바다 물결을 닮은 나무의 움직임을 넋을 놓고 바라봅니다. 편지를 써야 하는데요.
이걸 읽는 당신은 아마도 이런 저를 이해하는 사람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시시한 글자들을 읽는 데 귀한 시간을 들일 리 없으니까요. 당신에 대한 상상은 구체적으로 하면 할수록 부끄러워집니다. 그런데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부끄럽기는, 자랑을 해도 모자라다.” 하고 말해줄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 이 책이 ‘서간집’이라는 게 참 다행입니다. 살면서 편지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거든요. 마음으로 수없이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주고받을 이유는 딱히 없는 사이, 던지듯 건네고서 다음 만남이 겸연쩍어질까 봐 망설였던 마음, '너무 자주 쓰면 부담이 되려나’하는 걱정, 그 외의 수많은 핑계들이 펜을 내려놓게 했지만요. 지금 돌아보면 그것 또한 다행입니다. 편지를 쓰면서도 ‘지금 내가 실수를 하고 있나?’ 싶은 순간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미 문장은 점으로 끝났고, 글씨는 하필 펜으로 적어버렸고, 수정 테이프를 사용하는 건 멋없는 일이니까. 마음껏 실수를 저지른 뒤 후다닥 종이를 반으로 접어 편지 봉투에 넣고, (대개는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티커로) 봉인해버린 뒤, 큰 선물 뒤에 숨겨 놓거나 던지듯 건네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이제껏 건넨 편지는 50%의 ‘하고 싶은 말’과 50%의 ‘민망함’이고, 주워담지 못할 문장, 이미 손을 떠나버린 글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편지로 한 실수들은 대부분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께 쓴 편지로 생애 처음 큰 상을 받았고, 친구와의 우정이 잠시 찢어졌을 때 한 장의 편지는 좋은 반창고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쓴 편지를 읽고 울었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글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요. 닿지 않을 편지를 쓰면서는 안개처럼 흐릿한 마음 속에서도 진심과 속내, 진의와 진정을 더듬을 수나마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한 발짝 정도는 앞으로 내딛었습니다. 반드시 정답으로 향하진 않을지라도요. 어느 날은 뜬금없이 배우 박정민 씨에게 보내지 않을 편지를 썼는데요. 그 때 제가 책을 쓰고 싶어한다는걸, 아니 너무나 오랫동안 책을 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도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역시나 즐거운 우연!
그러니까 편지란 제게 실수보다도, 우연히 건져올린 보물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이 편지가 어디로 넘실 넘실 실려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앞서 상상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다만 그 과정과 끝이 즐겁다면 좋겠어요. 당신도 제가 그러길 바랄 것 같고요. 그리고 이왕이면 당신도 자주, 많은 실수… 아니, 편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소리로, 말풍선 안에, 사진 한 장에 다 담지 못했던 말을 장황하게 세세하게 건네어 주세요. 보내는 만큼 받고도 싶은 것이 편지니까요.
상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