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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초콜릿과 아비투스 (2-5)

2-5. 작은 분자를 찾아가는 취향의 진화

by 르쇼콜라 아비투스

2부 - 초콜릿과 아비투스

2-5. 작은 분자를 찾아가는 취향의 진화


취향이란 작은 차이를 구별해 내는 힘이다. 초콜릿은 이 취향 훈련에 최적의 매개체다.

산미가 두드러지는 프루티(Fruity) 초콜릿

고소한 견과류 뉘앙스를 가진 너티(Nutty) 초콜릿

긴 여운의 쓴맛이 남는 로스티(Roasty) 초콜릿

이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고 ‘나는 이 맛을 더 선호한다’라고 인식하는 순간, 소비자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취향을 가진 주체로 성장한다. 더 나아가 취향은 경험을 축적하고 언어로 해석하는 반복 속에서만 깊어진다. 작은 분자를 포착할수록 나의 내면은 세밀해지고, 그 세밀함이 나만의 아비투스로 자리 잡는다.

취향은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 내는 데서 자라난다. 카카오의 원산지, 발효 방식, 로스팅 시간의 차이는 초콜릿 한 조각 속에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런 차이를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사회 전반에 일정 수준의 문화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차이 감수성’이 아직 충분히 길러지지 않았다. 초콜릿을 향한 취향의 진화는 그만큼 더디다.


초콜릿 속에서 감지되는 ‘작은 분자’의 세계

초콜릿을 맛본다는 것은 단순히 단맛과 쓴맛을 아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의 미각과 후각은 분자의 크기와 성질 차이를 감지하며, 그 차이를 언어화하는 훈련을 통해 취향은 진화한다.

우리가 아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초콜릿’은 1879년 로돌프 린트가 콘칭 공정을 개발한 이후 가능해졌다. 콘칭은 입자 크기를 20㎛(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줄여 혀가 입자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 부드러운 상태를 만들어낸 기술이다. 이로써 초콜릿은 단순한 달콤한 과자가 아니라, 고체와 액체를 넘나들며 분자적 미묘함을 경험하는 매개체로 거듭났다.



이 작은 분자들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바로 취향의 훈련이다.


물 분자의 미세한 존재감은 초콜릿의 텍스처와 밀도에 영향을 준다. 초콜릿에 약간의 유화제를 넣는 이유는, 설탕에 존재하는 미량의 수분 결합을 제어하여 초콜릿 리쿼의 점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수분이 적을수록 단단한 경도의 초콜릿이 만들어진다.


향 분자는 입 안보다 코에서 더 강하게 인식되며, ‘프루티’와 ‘너티’ 같은 세밀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꽃과 유사한 향은 주로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고급 플레이버 빈에서 발견되는 항목이다. 상대적으로 플레이버 빈은 에스터류의 함량이 높기 때문에 은은하고 우아한 꽃 향기와 흡사하여 좋은 기분을 선사하므로 고급 카카오 빈으로 분류된다. 꽃 향기는 동물적 본능보다는 우아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문화적 욕구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은 커피나 와인에서도 고급품을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단백질과 지방구의 구조적 차이는 ‘입안에서의 녹는 순간’을 바꾸며, 이것이 곧 브랜드나 생산지의 차별화 포인트가 된다.


즉, 취향의 성장은 곧 미세한 분자적 차이를 감지하고 언어화하는 능력의 성장이다. 이는 단순히 ‘좋다/나쁘다’를 넘어, 감각과 지식을 동시에 훈련시키는 과정이며, 결국 개인의 아비투스와 직결된다.

다시 말하면 테이스팅이란, 단순히 단맛과 쓴맛을 구별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분자 단위에서 고유함과 우아함을 찾아내려는 시도이자 노력이며, 그 과정 속에서 취향은 섬세하게 진화하고 아비투스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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