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쥐 팥쥐'
전래 동화라고는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보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아동용'으로 축소 개작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콩쥐가 얼마나 독한 아이인지는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어찌되었건 간에 특별히 이 이야기의 원전(?)을 다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이야기 속의 콩쥐를 착한 아이, 계모와 팥쥐를 나쁜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동화책 속의 삽화도 기억한다. 하얗고 착한 얼굴의 콩쥐, 뭔가 심술궂은 듯한 외모의 팥쥐와 계모.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이 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도 등장한다. (집안에서 이런 난리가 났는데도 아무것도 모르던 콩쥐의 부친은 논외로 하자.) 바로 동물들이다. 잔칫집에 가지 못해 울고 있는 콩쥐가 너무 불쌍해서 '양서류'임에도 불구하고 깨진 항아리 속에서 물이 새는 것을 막고 있던 두꺼비. 그 물 속은 얼마나 춥고 어두웠을까. 심지어 그 물을 그 집에서 다 퍼쓰기 전까지는 나가지도 못한다. 곡식 낱알을 보면 우르르 달려와서 맛있게 먹는 것이 당연한 참새는 먹지는 않고 낱알의 껍질만 깐다. 눈앞에 먹을 것을 두고 못먹는 고통은 누구나 잘 안다. 그게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하는 자는 자린고비밖에 못봤다. 소의 입술을 본 적 있는가. 소의 다른 부분과 달리 참으로 부드럽고 연하다. 그 입술로 자갈을 물어가며 밭을 맨다. 콩쥐는 슬픈 표정과 눈물로 이 동물들을 이용했다. 그 동물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간 것이 없다. 콩쥐는 그들의 고생 덕분에 원님의 부인이 되었다.
아마 이 동물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내가 호구라니..."
남좋은 일만 하면서 신나하면 우리는 호구가 되었다고 한다. 생성형 AI를 쓴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런 일이다.
"에이~ 그게 뭐 남만 좋은 일인가? 나도 보고서도 쓰고, 사주도 보고, 필요한 일 다 했는데?"
애시당초 생성형 AI는 '학습'을 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 인터넷 상에 있는 모든 문서를 학습할 뿐만 아니라 내가 쓰면서 질문하는 내용들이 모두 '학습'의 원천이 된다. 그러니 우리가 쓰면 쓸수록 AI의 '발전 동력'은 점점 커지게 된다. 그게 뭐가 나쁘냐며, 나도 더 좋은 AI를 쓸 수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AI는 공공기관이 만든 우리 모두의 공공재가 아니다. 민원24나 국세청 홈택스같은 웹사이트도 아니다. AI의 대부분은 '사기업'에서 만든 '상품'이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우리 나라 기업의 경우에는 간혹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그 회사에 다닌다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하고 심지어 TV뉴스의 주식 현황 같은 곳에서 주식의 가격을 알려주기도 하니 '사기업'이라는 생각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하지만 외국 기업의 경우에는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가끔 떠올린다. 구글이 대표적이다. 구글로 검색하고, Gmail을 공짜로 쓰고, 유튜브를 보면서(유료로 광고없이 보는 사람도 있지만) 특별하게 그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
AI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을 이용하면서 내가 입력하는 정보가 그들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사용한다. 내가 묻는 말에 낮이나 밤이나 귀찮아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모른다는 소리 한 번 없이 대답해주는 착한 얼굴의 AI. 그 착한 얼굴로 내가 묻는 질문을 정보 삼아 자기의 몸집을 불려나가고 더 빠른, 더 정교한 AI로 거듭난다. 유행처럼 지나가는 AI이용 패턴도 있었다. 일본만화 풍으로 사진을 바꿔주던 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 이미지를 수집했을 것이고, '사주보기'가 유행했을 때에는 사람들의 삶이나 지향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 때의 즐거움이었지만, AI에게는 두고두고 써먹을 정보가 되었다.
정보만 주고 마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누구나 '속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즉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정보'를 유통할 때에는 그것이 객관적일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운영진이 있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지향점이 있다면 그것이 이 정보의 유통과정에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내가 보기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가다가다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뉴스의 한꼭지를 장식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그러니 사기업에서 만든 AI를 사용해서 얻은 정보는 그들의 생각에 따라 정교하게 '설계된' 것일 수 있고, 내가 그 정보를 믿으면 그들이 꿈꾸던 세상이 좀더 빨리 열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뭐 그런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얘기를 하냐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말도 안되는 소문을 철썩같이 믿는 사람을 목격한 적 있을 것 아닌가.
즉, 우리가 AI를 이용하면 할수록 AI 운용 기업에 도움이 된다. 만약 유료버전을 쓰고 있다면 '돈까지 같이' 주면서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호구'가 된다.
요즘 대학에서는 교육에 AI를 활용하느라 난리가 났다. 교육부의 지침이라고 한다. 수업에서 어떻게 AI를 활용할 지 모델을 만드느라 바쁘다. 그것도 '기존에 나와있는 AI를 이용해서'라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하는지가 정보가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입력한 질문의 수준으로 우리나라 인재의 수준이 평가되고, 나라의 미래가 예측될 수도 있다. 이제 그 모든 정보는 AI 운용 기업의 것이 된다. 다들 알겠지만 그 기업은 우리나라 기업이 아니다. 그 기업이 속한 '다른 나라 정부'와 친밀하게 관계가 된다면 더욱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정교하게 설계된 정보를 믿고 가랑비에 옷젖듯 특정한 나라에 우호적인 정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지배당할 수 있다.
이런 일을 '나라'에서 '하라'고 '지침'을 내리다니. 진정한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교육은 어떤 분야에 AI의 적용이 가능할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AI를 개발하는 것이 아닐까.
산업스파이를 잡았다는 뉴스에 분노하고, 통신사가 해킹을 당했을 때 유심을 교체하기 위해 한없이 줄을 선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허울 좋은 말에 'AI'라는 화제의 단어에 우리는 방어벽을 스스로 허문다.
내가 호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