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하는 시간들

by Dahl Lee달리

아직 1월이지만, 올해 이보다 더 좋아하는 작가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박혜윤. <도시인의 월든>과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 등을 쓴 여성 작가이다.


나의 근황을 정리하자면, 작년에는 추나학회 시험을 봤고, 올해는 초음파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중이다. 계획표에 따르면 매일 동영상 일정량을 보고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벌써 4일째 나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박혜윤씨의 책을 3권이나 한꺼번에 읽고 있기 때문이다.(매우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책들을 동시에 읽는 버릇이 있다)


박혜윤. 그녀는 자유롭고 성숙한 여자 사람이다. 글은 또 얼마나 맛있게 잘 쓰는지. 박혜윤씨가 생각보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놀랍기도 하고, 또 어이없지만 용기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도 책을 적게 팔 수 있구나. <도시인의 월든>이 몇쇄까지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초판본이다. 대중의 pick이란 작품의 완성도와 꼭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생각과 태도와 문장이 모두 멋졌지만, 책에 실린 가장 멋진 소제목을 하나 가져와 그녀를 오마주하기로 한다. 그녀가 "배움"에 대해 쓴 글을 바탕으로, 내 나름의 짧은 글을 써 봤다. (좀 더 길게 쓰고 싶지만, 초음파 공부 한개를 끝내고 나니 도서관이 문닫기 전까지 30분 남았다.)




<복종하는 시간들>


삶에서는 때때로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특히 쉽게 와닿지 않는 무언가를 배울때, 그 과정은 눈물나게 지리하다. 그런 배움은 언제나 나를 버리는 데에서 시작된다. 언젠가 나보다 모든 면에서 배움이 더뎌보였던 동생에게 충고랍시고, "뭘 빼울땐 '오체투지'하는 마음으로 배워"라고 시건방을 떤 적이 있다. 배움을 위해선 '복종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는 박혜윤의 표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머릿속으로는 끝없이 의구심이 들고 몸은 비명을 질러대겠지만, 일단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폭력적이게도, 답답하게도 느껴지는 가르침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다.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힘겨울 것이다. 그 과정을 통과하며 나의 일부는 서서히 부스러져 죽을 것이다. 그렇게 바뀌어 가는 것이 배움이다.


나도 여전히 여러가지를 배워 나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과정들. 그래도 그냥 한다. 냉정하고 차갑게, 본질에 집중하면서. 여기서 본질이란, 상황이나 기분이 어찌됬든, 나는 이걸 무조건 계속 할 것이라는 것이다.

외롭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차갑고도 묵직한 희열이 있다.

복종하는 시간들. 나는 그 시간들에 나를 강제로 잠기게 할 것이다. 내 안의 내가 마침내 죽을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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