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by Dahl Lee달리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엔 가족인데 가족 같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삼촌이다.



삼촌은 내게 어린 시절부터 밥 속에 섞인 모래 알갱이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데 뭉쳐 있지만 뭔가 이질적인 질감. 삼촌은 아빠보다 한참 어렸다. 어릴 적 할머니가 아빠랑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마흔이 넘어 걔를 낳은 것은 비밀이다." 늦둥이를 낳은 것이 뭐 어떻다고 그런 소릴 하셨을까? 애들은 알아서는 안 되는 어른들끼리의 비밀이라도 된 냥 할머니랑 아빠는 내 눈치를 봤다.




알고 보니 삼촌은 할아버지의 사생아였다. 할아버지가 집을 떠나셔서 방황하던 시절, 어떤 과부의 문간방에서 머슴 노릇을 하던 시절에 그 과부와 만든. 친부모들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삼촌은 이복형, 그러니까 우리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아빠의 자식처럼 아빠와 살게 되었다. 삼촌은 내 삼촌이었지만, 오빠 같은 존재였다. 아둔하면서도 예민한 나는 일찍부터 그 복잡한 관계가 싫었다. 삼촌은 우리 집에서 미묘하게 겉돌았는데, 공감 능력이 좋은 나는 삼촌의 쓸쓸함을 상상하며 늘 슬펐다. 나는 삼촌이 우리 집에 같이 사는 것이 불편하고 싫었지만 또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삼촌에게 유달리 따뜻해 본 적은 없다. 삼촌을 동정하는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 같은 게 뭐라고 타인을 동정할까. 그래서 나는 늘 삼촌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불의의 사고로 척수마비가 되셔서 다니시던 교직을 그만두셨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삼촌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실업계를 갔다. 엄마가 삼촌을 인문계로 보내려고 삼촌과 엄청 싸웠지만 삼촌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삼촌에게 전해 들은 얘기론, 당시 아빠가 다치셔서 우리 집이 망했다고 생각한 삼촌은 얼른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삼촌은 그때부터 우리 집의 흥망성쇠와 자신을 함께 묶고 있었다. 이런 삼촌이 어떻게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삼촌에게는 새어머니가 되시는 우리 할머니가 삼촌 어렸을 때 얘기를 하며, 쟤는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건 귀신같이 알아서 여름 김치는 줄기 부분을 먹고, 겨울김치는 이파리 부분을 먹었다고 하신 적이 있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는 뭐 그런 걸 기억하나. 제 속으로 낳지 않은 자식이라고, 꼴에 맛있는 걸 탐했다고 면박을 주는 건가 하며 넘겨짚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그냥 이야기하셨을 수도 있는데, 나는 삼촌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존재할지도 모르는 차별을 감지하려고 늘 곤두서있었다. 천사표 엄마는 또 왜 하필 가끔 삼촌에게 청소기를 돌리라고 시킬까. 군식구라고 구박이라도 하는 건가. 나는 엄마가 삼촌에게 자잘한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혼자 몰래 울적해졌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꼭 착한 사람 같지만, 결론은 나는 삼촌의 존재가 여전히 불편하다는 것이다. 아휴, 불편하다, 불편해. 이제 삼촌이 낳은 아이들까지 주렁주렁, 내게는 사촌이 되는 그 아이들도 왠지 다른 사촌들에 비해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내가 아직도 삼촌을 백 퍼센트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자. 나는 참 냉정하고 싸가지 없는 인간이다. 가끔 나의 알량한 공감능력, 혹은 상상력을 핑계 대며 나 스스로를 착한 인간처럼 그리곤 하지만, 사실은 나는 어린 시절 양친을 잃고 형네 집에 의탁해 자란 기구한 운명의 삼촌을 아직도 불편해하는 싸가지없는 계집애일 뿐이다.



얼마 전에 들었는데, 삼촌이 아빠에게 돈을 빌려갔다고 한다. 내가 그동안 아빠에게 뜯어간 돈에 비하면, 자식같이 키운 삼촌이 뜯어간 몇백 정도면 약과인데. 그래도 심술쟁이인 나는 또 슬그머니 화가 나려다 말았다. 나도 참 답 없는 사람이다. 이봐, 삼촌은 가족이야. 제발 너나 잘하라고.

작가의 이전글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