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어바웃 타임

오해는 숙명이다.

by 이작가

어김없이 날아오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 쪼~옴.” 엄마도 이제는 지칠 법도 한데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골고루 푹푹 먹어라.’ ‘차 조심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늦게 다니지 마라.’ 하다 못해 ‘화장실에 너무 오래 앉아있지 마라.’


울엄마는 예쁘다.

얼굴도 마음도 참 예쁘다. 어린 눈으로 본 울엄마는 언제나 예뻤다. 친구들은 엄마가 예뻐서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아침 등짝 스매싱이 생각난다. ‘애들이 뭘 모르는군. 울엄마 잔소리 장난 아니거든.’ 속으로만 이죽거렸다.



“엄마, 쪼~옴.” 아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은 아침잠이 많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드라마도 영화도 책도 아니다. 바로 내 어린 시절의 아침과 오늘 아침이 겹쳐진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난다. ‘아, 스쿨버스 시간 늦겠다.’ 옛 추억은 잠시 뒤로 하고 밥을 차린다. “푹푹 골고루 먹어.” “오늘 체육 들었어? 체육복은?” “차 조심하고.” “수업 시간에 되도록 졸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아직 여자 친구는 없고?”......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늦었다고 급하게 나가버린다. ‘이 녀석은 다 자기 위해서 하는 말인데 다정하게 말한다고 게임 레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차갑기도 하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눈물 한 방울이 갈피를 못 잡고 얼굴에 번진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모른다.

엄마도 그랬겠구나. 짜증을 내며 문을 ‘쾅’하고 닫고 학교에 가버리고 난 후 엄마도 이렇게 혼자 앉아 아팠겠구나. 내가 한 가시 박힌 말이 엄마의 마음을 할퀴고 내가 한 못된 행동이 엄마 눈물이 되었겠구나.


자기가 얼마나 자주
타인을 오해하는가를 자각하고 있다면,
누구도 남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괴테-


오해(誤解) -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 못 앎.-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어야 할 어쩔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14살의 아이가 엄마의 깊은 마음을 바르게 해석하거나 그 뜻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14살의 나는 엄마의 말이 잔소리였지만 14살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그때 엄마의 말이 가슴에 맺혀 아프다. 그때는 왜 “알았어, 엄마.”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오해는 그렇게 내가 엄마가 되며 풀어지고 또 아이와 나의 오해가 남는다. 이 녀석과의 오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처럼 지금의 내가 그때의 엄마에게 갈 수 있다면 엄마와 나는 비슷한 나이겠지? 엄마랑 하루 종일 수다 떨고 싶다. 엄마가 좋아하는 설탕 두 스푼 넣은 커피와 내가 좋아하는 블랙커피를 앞에 놓고 문을 ‘쾅’하고 닫고 나간 딸 흉도 보고, 그런 속도 몰라주는 남편 흉도 보면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해했던 14살의 딸이 아닌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로 만나 엄마랑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오해는 시간이 흐르듯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서 물흐르듯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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