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요리에 철학을 담다

by 이작가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음식을 잘할 줄 알았다. 젠장. 음식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영역이었다. 어디 음식뿐이겠는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장착되는 건 늘어지는 뱃살과 눈밑에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주름 그리고 깡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노력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자신과 잘 지내는 법까지 터득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잘한다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지만 또 못한다고 기죽을 만한 것도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음식에 관해서는 기가 죽는다.

엄마는 일찍 시집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하루 세끼를 차려내야 하는 삶을 살았다. “시집가면 평생 할 것 뭐하러 벌써부터 해. 앉아서 쉬어라. 엄마가 해줄 테니 너는 네 할 일을 열심히 해라.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어라. 피곤할 테니 들어가 누워라.” 언제나 당연하게 들었던 말이 얼마나 수고롭고 대단한 말이었는지 마흔이 되어서야 가슴을 친다. 엄마의 수고와 눈물을 먹고 자란 나는 밥을 할 줄도 모르고 라면도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애어른으로 가정을 꾸렸다. 그제야 엄마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저절로 밥이 되고 찌개가 끓고 반찬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시어머니도 엄마와 같은 철학으로 딸을 키우셨다.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사신 어머님은 결혼하시 전 내 두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큰 언덕이 되어 주시 못 해 미안하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 든든할 텐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런 어머님은 정말 딸을 대하듯 나를 키우셨다. 나이만 먹은 철부지 막내며느리는 크고 넓은 어머님 밑에서 깊은 사랑을 느끼며 풍요롭게 자라고 있다. 음식을 못 하는 나를 꾸중 하시지 않고 일주일치 반찬을 해주시고 국을 끓여 봉지 봉지 담아 먹기 좋게 해 주신다. 어느 날은 냉장고에 두고 녹여 먹으라며 어머니표 햇반까지 만들어 주신다. 결혼하고 15년이 흐른 지금도 어머님이 끓여주신 술국을 먹으며 해장을 하고 매주 만들어주시는 반찬을 넙쭉 넙쭉 받아먹는다.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딸아이가 두 엄마들처럼 나를 챙긴다. 음식 못하는 엄마 대신 뚝딱뚝딱 요리를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보고 따라한 음식은 미슐랭 가이드에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다 내가 이런 아이를 낳았단 말인가? 마법사처럼 요리를 해내는 13살 꼬맹이 숙녀는 엄마를 위해 요리를 한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으로 맛을 감상하는 것은 차려 놓은 음식을 먹는 사람의 당연한 도리라 할 수 있다. 내 리액션은 점점 늘고 딸아이의 음식 솜씨도 자꾸자꾸 늘어간다.

< 딸이 요리로 엄마에게 말을 걸다> 매거진 참조하세요.

마흔, 이쯤 되면 눈 감고도 뚝딱 반찬 하나쯤은 만들어 내도 될 텐데 여전히 칼 잡는 손은 서툴고 힘이 들어간다. 도대체 뭘 넣은 것이냐며 웃어넘기는 남편의 태도에 더 이상 화는 나지 않지만 여전히 자존심이 상하는 나이, 마흔. 정말 나는 요리에 진심인 편이다. 맛이 진심이 아니라 그렇지. 그래서 결심했다. 요리는 나의 길이 아니다. 맛을 그려낼 줄 아는 아이가 있는데 꼭 나까지 요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 진실의 미간을 있는 대로 구기고 목소리는 3옥타브 정도 높여서 음식에 대한 진정성 있는 맛을 표현하는 것이다. “으음, 어~머~~ 니~~. 우왕, 앵두야~~~(앵두는 우리 딸아이의 태명이다.)” “도대체 이런 음식을 어떻게 할 수 있죠?” “앵두야, 장금이가 살아온 줄 알았어. 혹시 이 음식에서 홍시맛이 나지 않아?” 이렇게 나는 요리를 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터특했다.

하지 못 하는 일을 생각하며 우울해하고 힘 뺄 필요 없다. 잘하는 것을 찾아 하면 된다. 요즘은 밀키트가 엄마 손맛을 능가하는 것 같다. 맛있는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노란 불빛 아래 온 가족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학원을 운영하는 나는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집에 도착했고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다 아이들과 함께 잠이 들곤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내가 퇴근할 때까지 깨어 있지만 함께 적녁 식사를 하기엔 여전히 늦은 시간이다. 그래서 주말 딸과 함께 하는 요리에 최선을 다 한다. 필요한 재료를 씻으라면 씻고 다듬으라면 다듬는다. 그러면 앵두는 맛을 그려낸다. 이 얼마나 행복한 조합이란 말인가.

마흔, 이렇듯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길 위로 나를 데려다 놓는 일이다. 부족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나의 길을 갈 때, 자신의 부족함마저 자신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부족한 모습과는 다른 대단히 자신감 있고 능력 있는 모습이라도 놀라지 마라.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인 자신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니 말이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두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라, 어제보다 더 강하고 더 빛나는 내가 거기 당당하게 서 있을 것이다. 마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장착했다.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긴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이젠 의미 없다. 요리를 통해 삶을 배운다. 마흔, 참 배울 게 많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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