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

by 이작가

아무리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해도 세상은 내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됐을 때의 기쁨을 맛보았고 그것이 아직 보지 못 한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 후 여행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다. 더 빨리 가다 보면 더 많은 것을 더 잘 볼 줄 알았다. 그래서 경주마처럼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힘차게 걷고 또 걸었다. 너무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지만 오히려 더 보이지 않았다. 마흔의 시간을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여행은 빠르고 느림의 속도가 아니라 마음 깊이 생각하는 진정성에 있었고 여행의 이유는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곳에 존재하는 데 있었다.


여행 가방을 싸는 순간부터 마음속에 헬륨 가스를 불어넣은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덜컹거리는 자동차에 올라타 내 뒤로 물러서며 길을 내어주는 배경은 숨겨진 나를 천천히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평화를 위해 꽁꽁 묶여 있던 자아가 삐죽삐죽 존재를 드러내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빠져나온다. 세상을 위한 나를 내려놓고 나를 위한 내가 되는 시간이다.


여행은 생각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즐겁고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행복한 시간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걷고 생각하고 느끼며 발견한 새로운 나를 데리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최고 맛집만 찾아다니며 먹었던 음식들에 지쳐갈 때쯤 집밥이 그리워진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잔소리로 듣는 아이들이 그리워지고 심지어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숨소리까지 그립다. 뭔가를 얻고 찾으려 떠나지만 언제나 그것을 집에 돌아와서 찾는다.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돌아올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어디라도 바뀔 수 있지만 다시 돌아올 곳,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곳, 내 책상과 의자가 있고, 내 냄새가 밴 책들이 정신없이 쌓여 있는 서재가 있는 곳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 준다. 여행이 즐거웠든 별로였든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 그곳에서 나는 지친 몸을 녹이고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꿈을 꾸고 세상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한다. 여행의 목적은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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