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잔뜩 움츠러든 골린이의 어깨는 선배님들의 촥촥 감기는 샷 소리에 방향을 잃고 만다. 점점 블랙홀에 빠져드는 정신을 잡는 것도 힘이 빠지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있는 것도 힘이 든다. 힘을 빼야 한다고 하더니 이렇게 힘이 하나도 없는데 유일한 무기 7번 아이언을 잡은 손엔 왜 또 힘이 들어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고 하다간 다리가 찢어진다는 현명한 선조들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선배님들의 멋진 포즈나 끝을 모르고 뻗어나가는 공을 보고 있자면 주눅이 든다. 함께 수업을 듣는 초급반 레슨 시간엔 다 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래서 퍽 소리가 나도 공이 제멋대로 날아가도 때론 공을 맞추지도 못하고 헛스윙을 하는 민망한 상황을 연출해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가 한 번 헛스윙을 하면 다른 분, 또 다른 분 한 번씩은 번갈아 가며 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렇게 서로의 공치는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고 또 위로를 해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광고의 문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우리에게는 분명 있다. 그리고는 되니도 않는 도토리 키재기라도 하며 칭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실력이 많이 느신 것 같아요." "힘이 빠진 것 같은데요?" "폼이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새벽반 수업의 가장 좋은 점은 아침부터 긍정의 말로 긍정 샤워를 시켜주셔서 하루를 초초초 긍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지금 잘하고 있고, 매일 발전하는 사람이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누군가의 칭찬과 자신을 대견해하는 마음이 더해지면 에네르기파라도 쏠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얼굴색이 바뀌고 하루의 농도가 달라진다. 왠지 삶이 살만한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나를 위해 나무들이 예쁜 옷을 갈아입은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위해 바람이 불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나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새벽 레슨이 없는 날이면 연습장에 가서 혼자 연습을 하곤 한다. 이제 시작했고 잘 못 하는 사람이니 연습이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매일 출석 도장을 찍는다. 문제는 연습장엔 새벽반 동기들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장비를 풀 장착한 선배님들이 길이도 다양한 채로 돌아가며 연습할 때, 7번 아이언 하나 달랑 들고 가서 앞도 뒤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공만 쳐다보는 극소심 트리플 A형인 나는 에어팟을 낀다. 그리고는 초보가 아닌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애를 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니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티가 나는 게 초보 시절인 것을 알면서도 어설프고 어색한 연기로 더욱 시선을 모은다.
어제 배웠던 내용을 상기하며 골프채를 잡고 어드레스 자세를 취한다. 팔에서 힘을 빼고 끝까지 공을 바라보며 힘찬 스윙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퍽 소리와 함께 앞에 떨어진 공, 어색한 공 그리고 나의 몫인 부끄러움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 한 몸 그리고 그 걸 지켜보는 나. '그냥 갈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환경에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다. '정신 차려. 네가 언제부터 골프를 했다고 비교를 해. 비교할 상대가 되어야 비교도 하는 거지. 그리고 즐겁자고 하는 일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도 너에게 신경을 안 써. 너, 관종이야? 그냥 연습이나 똑바로 해. 정신 차려.' 잠깐 쉬며 생각해 본다. 긍정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이렇게 쭈굴 하게 대처할 내가 아니다.
골린이들이여, 주눅 들 것 없다. 세상에 처음이 없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모두에게는 처음이 있다. 그 처음의 어색함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다음이 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아주 즐겁고 신나는 마음으로 매일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나아가고 있는 근면 성실한 예비 프로 골퍼다. 프로 골퍼가 아니면 어떠한가 하는 동안 즐겁고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더 즐겁고 신나는 골프를 위해 연습하며 노력해야 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어떤 일이 안 그렇겠는가? 처음 시작했으니 못 하는 게 당연하고 실수하는 게 당연하다. 더 많이 연습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못 해서 부끄럽다고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수는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발전 또한 없을 것이다.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실수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 주눅 들 것 없다. 끝까지 하는 성실함과 주눅 들지 않는 깡 그리고 7번 아이언이 있다면 이미 골프를 즐기는 자. 세상에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오늘도 내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