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물먹은 스펀지처럼 몸이 무겁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구도 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다거나 하진 않다. 나는 왜 힘든어도 입맛이 좋을까? 덜 힘들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더 힘들 게 남아 있다는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안될 것 같다. 몸이 힘들어도 할 것은 해야하는 성격이라 운동도 갔다 오고 밥도 야무지게 먹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도대체 사람들은 밑도 끝도 없이 짜중 나고 화가날 때 어떻게 할까? 혼자서 화내고 짜증내다가 그런 자신을 보고 어쩌지 못 하는 스스로를 보며 자존감까지 탈탈 털릴 때 어떻게 그 감정을 극복할까?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보면 책 속에 빠져 잠시 나의 감정을 잊게 된다. 운이 좋은 날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해주는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운이 좋은 날이 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땐 형광펜을 꺼내 쭈욱 밑줄을 긋고 날짜를 쓰고 그날의 감정을 적어 놓느다. 그리고 다시는 그 페이지를 넘겨 보지 않는다. 닭살이 돋고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화가나고 짜증이 났던 일도 아무 일이 아니게 된다. 그걸 알지만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같은 상황이 와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있을 내 모습이 훤히 보이니 문제다.
음악을 듣는다.
소리를 크게 하고 플레이 리스트에서 맘에 드는 아티스트를 찾아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되도록 가사를 아는 노래면 더 좋다. 눈을 감도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며 따라부른다. 발라드여도 트로트여도 댄스곡이어도 상관 없다. 소리내 부를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 두세곡을 부르고 나면 속이 좀 뚫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평소에 단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왜 화가나고 짜증이 날 때는 단 것이 땡기는지.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는 순간부터 어느정도 기분은 풀렸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아이스크림은 입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도파민이 솟아난다. 한 입 베어 물면 아삭하고 달달하고 차가운 느낌이 좋다. 머리 끝이 삐죽 서는 것처럼 차가운데 또 세상 없이 달달하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앞에서 먹을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밑에서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뚝뚝 떨아지기 시작하면 화도 짜증도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
"아이스크림을 사수 하라."
거꾸로 들어보기도 하고 흘러내리는 쪽을 먼저 먹어보기도 하지만 한 번 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은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중력의 힘에 굴복 당하고 만다. '젠장."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내 마음도 그렇게 녹아내리면 좋겠단 달콤한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현신은, "젠장."
무한 긍정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형광펜으로 밑줄 까지 그어가며 읽은 책을 덮자마자. 득음이라도 할 것처럼 두눈 질끈 감고 따라부르던 노래가 끝나자 마자. 녹아내리는 것을 어떻게든 늦춰보려 안간힘을 쓰며 베어물던 아이스크림을 먹자마자. 레드썬!! 다시 원상 복구 되는 감정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럼에도 감히 생각해본다. 책이 음악이 아이스크림이 뾰족하고 단단했던 생각과 마음을 조금은 부드럽고 말랑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전의 나와 그 후의 나는 분명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지금을 또 하루를 살아내는 나자신 칭찬해!!
다람쥐가 도토리 쌓듯 여름이 가기 전 아이스크림 든든히 먹어 충전해 놓을까도 생각 해봤는데, 그만 두기로 했다. 아이스크림의 진정한 계절은 겨울이니까. 일단 오늘 눈 앞에 놓인 아이스크림부터 해결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