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떻게든 계속 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이연

만약 이 책의 제목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입니다’였다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에 통달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정직하고 때론 따분하다. 경비의 일이 전문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작품과 한 발짝 떨어져서 작품에 대한 ‘앎’보다는 바위 같은 ‘시간’으로 공간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는 것이다. 주목받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해진 까닭이다.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이 책의 저자는 사랑하는 형을 잃고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스물다섯,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치열하게 살아갈 동력도 마음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우연히 가족들과 방문했던 메트(메트로폴리탄의 줄임말)에서의 첫 기억을 떠올린다.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건 그럭저럭 해낼 만한 것이다.


내가 만약 덜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동안 틈틈이 내 생각들을 흐릿하게나마 적어두었을 테고, 영감을 주는 주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과감히 도전해 글을 써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빅 리그였기에 내 생각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고 야망은 이상하리만치 줄어들었다.
- 4장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95p


형의 죽음이 아니었어도 ‘나’는 언젠가 ‘대단한’ 일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고 만족할 만한 봉급을 받고 적당히 남들을 따라 하면 그럭저럭 하루가 흘러가는 안정적인 삶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기란 쉽지 않다. 만약 이 직업을 그만두게 된다면 수많은 ‘왜’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보통은 ‘왜’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내가 상상했던 삶이 아니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모두가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라고 딱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곡물 수확.jpg 곡물 수확,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붙인다.
-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179p


나 역시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났을 때 돈이 적어도 좋으니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고 독립적으로 내 일만 할 수 있는 일을 바랐다.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일이 필요했다. 일에 대한 보람 따위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버티는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 걸 내가 원하지도 않았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 그저 나는 지친 상태였고 그 응석을 받아줄 일자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돈은 벌어야 했으니까 일을 했고 그런 일을 하고서야 ‘인정’과 ‘보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191p


나에게는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는 문장이 매우 슬펐다. 안타까움과는 거리가 먼 슬픔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기쁨과 가까운 슬픔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를 과거에만 머물게 했던 겨울이 지나고 비로소 봄이 온 것이다. 평생 외롭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 이제 다시 타인의 삶과 부대끼며 살아갈 마음이 생긴 것이다.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이 책은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메트에서의 일은 육체적으로 힘든 면도 있었지만 저자에겐 멋진 작품들과 오랜 시간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오랜 시간 메트에서 근무하며 생겼던 에피소드와 관련된 작품들을 책의 각 장마다 소개하는데 그가 소개하는 몇몇 작품들은 텍스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자가 이 책에 굉장한 애정을 가지고 공들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부록에서는 본문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작품의 취득 번호를 달아 놨는데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덕분에 작품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여름의 베퇴유.jpg 여름의 베퇴유, 클로드 모네


<여름의 베퇴유>라는 제목의 풍경화가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바짝 다가선 나는 내 눈이 이 허구의 세계를 실감 나게 받아들인다는 걸 확인한다. 마을과 강 그리고 강에 떠 있는 마을의 물그림자가 보인다. 다만 모네의 세계에는 흔히 아는 햇빛 대신 색채만이 존재한다. 이 작은 우주의 훌륭한 조물주답게 모네는 햇빛을 나타내는 색깔들을 펼쳐두었다. 펼치고, 흩뿌리고, 엄청나게 숙달된 실력으로 끝없이 반짝이는 모습을 캔버스에 고정해두었다.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그림은 점차 풍성해질 뿐 결코 끝나지 않았다.
- 5장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117p


모네의 <여름의 베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 찬란한 풍광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클릭 몇 번으로 명화를 쉽게 눈에 담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작품을 실물로 볼 때 느껴지는 아우라는 확실히 다르다. 지금도 아름다운 이 그림이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저 우리에겐 ‘천재’로만 알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일화도 흥미롭다. 지금은 물론 당대에도 최고의 예술가였던 그도 끊임없이 불평하고 또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일궈낸 모든 작품들이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 80대에 접어들어서 사소한 실수로 성 베드로 성당의 완공이 늦어지게 된 일로 “수치심과 슬픔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라고 자책했다는 일화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근현대 미술 전시관에 전시된 페트웨이의 퀼트 작품은 작품에 삶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녀는 소작농이었고 작품을 만드는 일보다 생업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퀼트는 노예해방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전통이었고 추위를 막기 위해서 낡은 옷과 직물들로 퀼트 이불을 만들어야만 했다. 퀼트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지붕과 벽돌공 패턴, 세로줄 퀼트.jpg 지붕과 벽돌공 패턴, 세로줄 퀼트, 루시 T 페트웨이


나는 그 퀼트 작품이 봄바람에 펄럭거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려고 애쓴다. 다양한 톤의 하얀색, 하늘색, 청록색으로 만들어진 퀼트다. 흰색에도 여러 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몰랐지만 그녀는 햇빛에 바래고 입어서 해진 낡은 옷가지에서 구해낸 천 조각들로 그런 효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미술 재료상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얻은 색깔들이었다.
- 12장 무지개 모양을 여러 번 그리면서 297p


삶과 예술이 어우러져 나부끼는 퀼트를 상상하면 아름다우면서도 숙연해진다. 햇빛이 산란하는 색채를 캐치한 모네의 풍경화와 햇빛에 바래 낡아버린 색채를 품은 퀼트 조각이 대비된다.


이 책은 몹시 솜씨 좋게 기워낸 퀼트 같다. 다만 작가에게 이 시간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 웅크렸던 몸 위로 퀼트 이불이 덮인다. 삶은 어떻게든 계속 된다는 점에서 억울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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