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배심원이 되다 (마지막화)

< 정의의 배심원 1 >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인철

두툼한 소송 가방을 든 석낙이 법원을 나왔다. 그는 징계를 받아 지방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그리고 승진에서 연거푸 누락이 되자, 법복을 벗었다.

이때, 지상이 뛰어가며 외쳤다.

“어이, 고 검사! 아니, 고 변. 같이 가자!”

석낙은 듣지 못한 척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양이 공중 분해되었으니 갈 곳이 없지? 소송 의뢰가 없어서 명함만 돌리고 다닌다며?”

“어떻게 알았어?”

“그걸 꼭 청진기로 대봐야 아냐? 막상 필드에 나와보니 수석도 통하지 않지? 요즘 9연패라던데? 1패만 추가하면 폐업한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래도 힘내. 내가 사무실 월세는 내줄게.”

지상은 법원 옥상과 땅바닥을 손짓하며 말했다.

“네가 저기서 여기로 떨어지는데, 이틀 걸렸네. 난 돗자리를 깔아도 될 것 같아.”

이틀은 국민참여재판 기간을 의미했다.


사무실 간판이 ‘상진 법무법인’으로 바뀌었다. 지상과 수진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여기에 세호와 상아도 합류하여 함께 일하게 되었다. 지상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세호가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정말 잘 숨겼어. 만약 발설했더라면 저 기쁜 표정을 볼 수 없었을 거야.”

그때 연우와 소희가 들어왔다. 소희는 지상에게 달려가 애교를 부렸다.

“연우 오빠, 로스쿨 준비 힘들지 않아요?”

“아니. 수석 입학이냐의 문제만 남았지.”

“역시 오빠는 허풍쟁이야. 그렇지요? 수진 언니.”

“그래도 강 선배보다는 겸손한 편이야.”

갑자기 소희가 소리쳤다.

“우리 아빠는 진짜 유명한 사람이에요!”

“뭐가?”

수진이 엉뚱하다는 듯 물었다.

“패소 변호사로요.”

“이제는 아니야. 패소 변호사에서 정의의 변호사로 완전히 변신했어. 근데 언제 다시 폐인으로 돌아갈지는 몰라.”

“하, 변! 아이 앞에서.”

지상의 고함에 수진은 혀를 날름거렸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그들을 차 안에서 윤철이 지켜보고 있었다. 성국이 그의 범행을 떠안아 집행유예로 나왔다.

“강지상 덕분에 백 회장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군. 원수처럼 여겼던 자식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아. 그나저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매스컴에 얼굴이 팔려 나다니지도 못하니 참 답답하네. 그렇다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인처럼 살 수도 없잖아.”

윤철은 덥수룩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다 코털을 확 뽑았다. 그 순간 연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참 이상하네. 저 친구가 9번 배심원인데… 지상의 사무실에 취직한 것 같군.”

이렇게 연우의 정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지상은 소희를 목마에 태우고 수진과 함께 놀이공원으로 힘차게 들어갔다. 그 뒤를 연우와 상아가 따랐다.

상아가 속삭였다.

“우리 사귈래요?”

“응?”

“오빠가 좋아졌거든요.”

“상아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

“잘 알아서 사귀는 게 아니라, 알고 싶어서 사귀자는 거예요.”

“사실 나… 얼마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어.”

“그랬군요.”

상아는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나서 밝게 말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거래요.”

연우는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너의 눈동자에서 헤엄치고 싶어서.”

“오빠도 작업 멘트를 날릴 줄 아세요?”

“이런, 아마추어라 들켜버렸네.”

그는 슬그머니 상아의 손을 잡았다.

한적한 벤치에서 연우가 지상에게 물었다.

“형, 삶의 가치란 뭘까요?”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갖는 게 아닐까? 너와 내가 이 재판에 뛰어든 것처럼.”

“사실 저는 상태에게 속죄하려는 마음이었어요.”

“그래도 누구나 너처럼은 아니지.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외면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너의 따뜻한 가슴이 네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거야. 법조인이 되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이 물음을 잊지 않았으면 해. 우리는 매일을 사는 것 같지만 하루씩 죽어간다는 것을.”

“늘 기억할게요.”

“난, 너를 믿어.”

그들은 놀이기구를 타며 신나게 비명을 질렀다. 어느덧 연우와 상아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지상과 수진의 사랑도 무르익었다.

급강하하는 롤러코스트에서 연우가 외쳤다.

“완벽한 작전으로 나는 정의의 배심원이 됐어. 그래서 평생의 죄책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P.S : 그동안 저의 소설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구독과 라이킷 해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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