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 - 2

< 정의의 배심원 1 >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인철

연우와 지상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한겨울을 재촉하는 듯, 길 위에 낙엽이 눈처럼 내리고 비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때, 아이의 손을 잡고 즐겁게 걷고 있는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님은 그 이후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네요. 형수님과 따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내는 여러 차례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암이 뇌로 전이되어 하늘나라로 떠났어. 지금 유치원에 다니는 딸은 연로하신 어머니가 돌보고 계셔. 나는 불효자고, 아이에게는 빵점짜리 아빠지.”

“그렇군요.”

연우는 그의 아픈 기억을 건드려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라는 무게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인 것 같아.”

“아직 저는 아버지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저희 아버지도 그런 분이셨던 것 같아요.”

“그걸 느꼈다면 연우는 철이 들었다는 거야."

"저는 아직 한참 부족해요. 근데 소송에서 이기면 뭐가 달라지나요?"

“명예가 지켜지지.”

“그렇다면 선배님께서 이 재판에 올인한 까닭이 그것 때문인가요? 아니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게 분해서 다시 비상하려는 건가요?”

“둘 다 아니야. 진실이 눈앞에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어.”

“변호인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가령, 여기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있다고 하자. 그가 경찰에 쫓기다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어. 의사는 그를 살려도 결국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 뻔해. 그럼, 의사는 그를 방치해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모든 사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우리는 그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지금 진정으로 후회하고 있는지 알 수 없잖아. 그리고 사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어. 악에서 선으로. 그래서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변호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의사가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무처럼.”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변호사는 모두가 등을 돌릴 때에도 기꺼이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봐 주는 존재가 아닐까요? 비록 패소하더라도, 그 재판을 통해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이뤘다면 변호사의 역할은 다한 거지.”

그때 지상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누구세요?”

“태양로펌 대표.”

“그분이 왜요?”

“백 회장님의 변호를 맡아달라는군.”

“설마, 맡으실 건가요? 아니겠죠?”

“아니, 한다고 했어. 방금 변호사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지?”

“납득이 가네요.”

“역시 우리는 단짝이자 완전체야!”


지상은 구치소로 면회를 갔다.

“강 변호사님께 죄송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아, 둘 다 해야겠네요.”

“그런데 저를 변호인으로 선임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변호사님이 이 사건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네?”

“제가 블랙박스를 보고 도진이를 자수시켰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거예요. 오로지 제 어리석음으로 지인들에게 피해를 주었으니, 모든 죄를 제 탓으로 돌리고 그분들을 위해 변론해 주세요.”

“그럼, 회장님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그래도….”

“정말 저를 변호해 주신다면…. 변호사님께 따님이 있다고 들었어요. 부모로서의 내리사랑이겠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어느새 지상은 그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가 나가자, 성국은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지.”


치수는 성국을 접견했다.

성국은 그의 모든 범행을 자신이 시켰다고 하며 죄를 뒤집어썼다. 그래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회장님,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해….”

“아니야. 전부 나를 위해 한 것이니 내가 책임져야 해. 아마 나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몰라.”

“어떻게 그런 말씀을…. 그동안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으므로 이를 고려해 주실 것입니다.”

“자식을 잘못 키운 아비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회장님, 흑, 흑...”

치수는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울지 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그리고 이 사과문을 발표해 주게나.”

도원그룹에서 기자 회견이 열렸다. 부회장이 사과문을 읽기 시작했다.

“도원그룹 대표 백성국입니다. 먼저 제 아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 억울하게 고통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건의 진실을 진작에 밝혀야 했는데, 이를 숨긴 저의 잘못에 대해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 과오를 깊이 반성하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동안 재벌들이 선고 전에 형량을 줄이기 위해 이와 같은 행동을 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이 불신을 해소하려고 이미 공증을 마쳤습니다….”

모든 언론은 이 회견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구치소에 수감 중인 도원그룹 백성국 회장은 약 25조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도원 장학재단에 기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제 도원 장학재단은 국내외에서 가장 큰 장학재단이 되어,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이 재단은 가족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명시했습니다….”

도진의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재판장은 주문과 같이 판결했다.

“피고인의 범행은 중범죄에 해당하지만, 부자(父子)가 동시에 수감 중이며 아버지의 눈물 어린 탄원을 받아들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합니다.”


도진은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성국을 만나러 갔다.

풍채 좋던 아버지는 어느새 수척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도진의 가슴은 아팠다.

“너보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게 더 편하구나. 이게 부모의 마음이란다.”

성국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아들을 위로했다.

“아버지, 제가 진심으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도진은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회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인과응보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