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 - 1

< 정의의 배심원 1 > 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인철

법원 마당에서 상태의 손을 잡은 만복이 눈물을 글썽였다.

“직장을 그만두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소신대로 행동한 것 같아. 아비로서 너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상태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연우야, 정말 고마워.”

그는 상태의 귀에 속삭였다.

“이제 옛날의 빚은 다 갚은 거야. 근데 중학교 때 누명을 쓰고도 왜 가만히 있었던 거야?”

“너는 잃을 것이 많았지만, 나는 잃을 게 없었잖아.”

연우는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맺혔다. 그 순간, 포장마차에서 지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우야, 명심보감에 나오는 구절이 있어. ‘상식만천하(相識滿天下) 지심능기인(知心能幾人)’의 뜻을 알아?”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그런 의미죠.”

“맞아. 그럼 지금까지 연우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초등학교 친구부터 수백 명 정도는….”

“그중에서 네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

“그, 그건….”

그때 연우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바로 상태, 너라고.’

연우는 그를 와락 껴안았다. 어리둥절한 상태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어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 상아와 사귀어도 될까?”

“물론이지, 너는 반장이잖아.”


도희가 커피숍에 들어섰다. 이때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화면에는 배심원석에서 똑바로 고개를 들고 있는 연우의 모습과 함께 자막이 나왔다.

‘최연우 씨. 정의의 배심원이 되다!’

“스타가 되어서 좋겠네.”

“….”

“도대체 왜 그랬어?”

“상태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야.”

“고작 그 일로 우리 오빠를 감옥에 보냈단 말이야!”

도희는 악을 썼다.

“그것이 고작이라고? 나 때문에 상태는 누구나 졸업하는 중학교를 중퇴했어. 내 잘못으로 친구의 인생을 망가뜨렸어. 그런데 상태가 무죄인 걸 알면서도 덮으라고? 나보고 또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라고?”

“그 죄책감의 대가로 아빠가 상태 식구를 평생 돌봐주기로 했다고!”

“내가 저지른 죄인데 왜 네 아버지가 보상해? 그건 나의 책임이야. 그리고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뭔데?”

“사라진 블랙박스를 백 회장님이 회수해서 없앴지?”

“아, 아니야.”

“가족이니까 너도 알고 있었을 거 아니야?”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진실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도 죄야. 그거 알아? 과거를 잊으려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을.”

순간, 냉기가 휘감았다.

“나는 연우 씨를 이해할 수 없어. 앞으로 우리 오빠와 아빠를 어떻게 볼 거야?”

“...”

‘뼛속까지 귀족인 도희와 나의 삶은 달라. 난 처가에 절하지 않을 거야.’

“이제 우리 사이는 돌이킬 수 없어. 나는 진실을 밝히는 변호인이 되기 위해 로스쿨에 갈 거야. 도희야, 꼭 행복해야 해.”

연우는 이별을 고하고 문으로 향했다. 그녀는 안타깝지만 이미 견원지간이 되었기에 붙잡을 수 없었다.

매스컴은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긴급 보도를 쏟아냈다.

“얼마 전 속초 신풍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의 진범이 도원그룹 후계자인 백도진 씨로 드러났습니다. 자식을 보호하려는 잘못된 부정(父情)으로 사건을 은폐한 백성국 회장은 증거 인멸로, 비서실장 이치수 씨는 살인 및 상해 교사로, 이를 실행한 흥신소장은 구속되었습니다.

또한 태양로펌의 윤철 대표와 오기탁, 조수찬 변호사는 증거 조작과 증인 및 배심원 매수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일부 직원들도 같은 혐의로 입건되었습니다. 태양로펌은 범죄 로펌으로 비난받으며 파산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고석낙 검사는 직무상 의무 위반과 품위 손상으로 정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국과수 분석실장과 경찰청의 거짓말 탐지 검사관은 증거 조작과 뇌물 수수죄로, 속초 경찰서의 구천달 경사는 위증죄로, 법원 형사과장 마동팔 씨는 업무 방해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재판장 심재평 판사는 불공정한 재판 진행으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권력형 종합 비리 세트로 얽혀서..."


옥탑방으로 올라가던 세호는 지상에게 불려 멈췄다.

“어이, 문 수석. 한참을 찾았잖아. 우리 좀 걸어보자.”

지상이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 말대로 서초동 바닥 소문은 빛보다 빠르잖아. 그래서 네 소식을 듣고 있었어. 너, 인마. 연수원 수료한 뒤 여러 로펌에서 쫓겨나 방에만 있었다며? 그런 네가 뜬금없이 날 돕겠다고 찾아왔잖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CCTV 삭제와 폐차 등의 일들이 의심스러워서 따라붙었더니 기탁이를 만나더라.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태양에서 얼마나 받기로 한 거냐?”

세호는 거칠게 나왔다.

“내가 푼돈이나 벌려고 그런 줄 알아?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히 털어놓지. 난 잘난 척하는 당신이 당황하는 꼴을 보고 싶었어.”

“그래, 그건 좋아. 하지만 우리 의뢰인은 재판 한 번에 운명이 바뀌잖아. 어쨌든 넌 수석이야. 굳이 너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 없어. 나도 그렇게 살다 보니 피곤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지상은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변호사 할 곳이 없으면 내 사무실로 와. 개인 변호사가 최고 로펌을 상대로 승소하니까 소송 의뢰가 줄을 서고 있어. 아, 전에 네가 나를 롤 모델로 삼고 싶다고 했잖아. 나는 과거의 일은 다 잊었어. 그리고 고마움은 바위에 새기고 서운함은 모래에 새기는 사람이지. 내 마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와.”

멀어지는 지상을 바라보며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강 검사님,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세호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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