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 - 4

< 정의의 배심원 1 > 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인철


지상은 문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럴 줄 알았어. 술에 취해 허세를 부린 사람을 믿은 내가 바보지.”

이때 요원 1이 법정에 들어왔다. 기탁은 그를 보더니 몸을 바싹 웅크리고 살금살금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지상이 소리쳤다.

“재판장님! 오기탁 변호사가 달아나고 있습니다. 배심원 선정을 조작한 주범입니다!”

“어, 그래요? 경위, 저 사람을 잡으세요.”

경위들이 발버둥 치는 기탁을 제자리에 앉혔다.

“재판장님, 마지막으로 증인 신청을 하겠습니다.”

“변호인은 법정을 콘서트장으로 착각하신 건가요? 자꾸 게스트가 등장하네요. 증인은 나와주세요.”

탈진한 심 판사가 농담을 던졌다.

어젯밤, 술에 취한 요원 1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 변호사님, 사실 배심원 선정에 작업이 있었어요. 내일 재판에서 폭로할 예정입니다. 딸꾹.”

“근데 그 이유는 뭔가요?”

“오늘 동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어요. 그리고 어차피 백수가 된 마당에 복수라도 하려고요.”

“어려운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에게 불리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을게요. 또 당신을 내부고발자로 만들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런데 요원 1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포기할 참이었다. 지상은 마지막 활시위를 당겼다.

“증인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태양로펌의 직원이었습니다.”

“증언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배심원 선정에 태양이 개입한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배심원 후보자들을 조사하여 그 정보를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상부는 누구이며, 뒷조사란 어떤 것이죠?”

“오기탁 변호사이고 후보자들의 생활환경에 대한 것입니다.”

“근데 여기서 의문이 드네요. 배심원 선정은 변호인과 검사가 하는데, 왜 태양에서 후보자 신상 파악을 했나요? 혹시 그 정보를 검찰에 제공하려는 건가요?”

“맞습니다.”

“여러분, 변호인은 유리한 배심원을 선정하기 위해 검사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는 국민참여재판 절차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검사가 후보자의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면, 공정한 선정이 이루어질까요?”

사람들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증인께서는 태양이 후보자의 정보를 왜 검찰에 넘겼다고 생각하십니까?”

“검찰 측에 유리한 배심원을 선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재판장님, 증인은 명확한 증거 없이 본 검사와 검찰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즉시 증언을 중단시켜 주십시오.”

이제 석낙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똥 끄기에 급급했다.

“변호인 심문이 끝난 후에 검사가 발언하세요."

“검사는 형사 사건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원고로서 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검사가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면, 과연 누구를 보호하려는 것일까요?”

지상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바로 도원그룹의 후계자인 백도진입니다. 그리고 이 백도진을 변호하는 측이 태양입니다. 이제 퍼즐이 맞춰지셨나요? 이로써 검찰과 도원그룹, 태양로펌 간의 연결고리가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변호인은 고석낙 검사를 업무방해와 검찰청법 위반으로 고발하며 대검에 감찰을 요청하겠습니다.”

“재판장님, 변호인은 증인과 공모하여 삼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검사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국가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삼류 소설인지 무협지인지는 재판이 끝난 후 두 분이 논의하세요.”

심 판사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석낙은 더 이상 반론이나 반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움츠러들었다. 모든 군사를 잃고 전의를 상실한 패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면 검찰 측에 적합한 후보자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죠.”

“이런 후보자가 왜 검찰에게 유리한가요?”

“재판이 백도진에게 불리해지면 이들의 약점을 이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제야 모든 것이 뚜렷해졌습니다. 즉, 이러한 후보자 중에서 배심원을 선정하고 그들의 처지를 이용해 매수한 것이죠. 그렇다면 이 작업의 지시, 설계, 실행은 누가 했을까요? 증인에게 직접적으로 질문합니다. 누굽니까?”

“지시는 도원그룹이, 설계는 태양로펌이, 실행은 TF팀입니다.”

“TF팀은 뭔가요?”

“배심원에 대한 뒷조사와 매수를 수행하기 위해 태양에서 조직한 비밀 팀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연합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피고인에게 누명을 씌워 유죄로 몰아가려는 것입니다.”

법정은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증인은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영화 ‘인천상륙작전’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니고 ‘백 공자 구하기’ 작전이 실패해서 속이 후련합니다.”

“네? 백 공자 구하기는 또 뭔가요?”

“TF팀의 작전명입니다.”

“혹시 백 공자는 백도진을 의미하나요?”

“맞습니다.”

“용기를 내어 내부고발을 해주신 증인께 감사드립니다.”

지상은 주먹을 쥐며 중얼거렸다.

“나는 승부라고 여기면 절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 그게 승부사로서 내 본성이야.”

“이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마칩니다. 땅·땅·땅.”

심 판사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법복을 툴툴 털었다.

치열했던 법정 공방은 이렇게 끝이 났다.


지상은 기탁과 수찬에게 다가갔다.

“두 분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겼네요. 오 변 동공은 한쪽으로 쏠렸고, 조 변 눈은 퀭하네요. 두 분 곧 사팔뜨기가 되겠는데, 선글라스라도 선물해 드릴까요?”

“야! 이 와중에 염장질이냐?”

“내가 원래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 때리는 게 특기잖아.”

“이 새끼가?”

“기탁아, 다 자기가 저지른 대로 죗값을 치르는 거야. 그러니 인과응보를 겸허히 받아들여라. 그래야 아직 정의가 살아 있고 세상은 그나마 공평하지 않겠냐? 옛정을 생각해서 영치금은 더불로 넣어주마.”

지상은 손을 흔들며 유유히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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