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의 배심원 1 > 에서 이어집니다
TF팀 사무실에 비상등이 켜졌다. 기탁이 긴장한 표정으로 요원들에게 말했다.
“재판이 내일까지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배심원 맞춤형 매수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1번 김성원은 중소기업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가장입니다.”
기탁은 요원 1을 노려보았다. 그는 구 경사를 포섭하는 데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해서였다.
“당신은 이 작전에서 제외됩니다.”
“팀장님, 그러면 보너스와 3배의 연봉은….”
“임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
“그래도 최선을 다했는데….”
“당신, 정말 머저리요? 이 순간부터 당신은 해고야!”
“팀장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내가 그걸 책임져야 해? 오늘 퇴직금이 정산될 테니 당장 나가!”
그는 요원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쫓겨났다. 그러나 기탁은 이 일이 자신에게 족쇄가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요원 2는 이 사람에게 도원그룹 계열사인 편의점을 제안하세요. 2번 박형일은…. 3번 성민인지는…. 4번 홍판기는 동생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복수심으로 유죄 평결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매수 대상에서 제외해도 됩니다. 5번 차현오는…. 6번 김해자는…. 7번 지규한은…. 8번 송인순은…. 9번 최연우는 제가 맡겠습니다. 10번 이진숙은…. 실패하는 요원은 인사 고과와 연봉 재계약 시 불이익을 받을 것입니다. 자,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작전을 시작하세요!”
요원들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이때 기탁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백 회장님의 따님이라고요? 저를 만나고 싶다고요?”
그는 전화기에 대고 굽실거렸다.
포장마차에서 지상은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이제 배심원 매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텐데…. 이 재판은 틀렸어.”
그때 수진이 들어오며 쏘아붙였다.
“혼자서 웬 청승이야! 내일이 재판인데 뭐 하는 짓이야!”
그녀는 술잔을 낚아챘다.
“우리는 여기까지야. 포기하자.”
“비겁한 놈. 한때는 정의의 검사였다가, 돈을 쫓더니 꼴 좋다! 그래도 널 선배로 여겼던 내가 수치스럽다. 이 개 같은 새끼야!”
"그래, 나 멍멍이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도 내가 나쁜 놈인 거 안다."
“검사로서 도망치고, 여기서도 도망치고, 평생 도망치며 살아라. 이 살인자야!”
그녀는 토이넷의 소송 실상을 알고 있었으므로 지상의 급소를 찔렀다. 이어 폭언을 퍼붓고 차갑게 나갔다. 수진은 그의 검사 사직을 오로지 돈에 대한 탐욕으로만 알았다. 당시에 지상이 자신이 처한 곤궁을 말하지 않아서였다.
“살인자라고?”
토이넷의 재판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도원 엔터테인먼트와 토이넷의 소송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민사 2012가단1258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은 피고 도원 엔터테인먼트의 승소입니다.’
“토이넷의 대표가 자살했듯이, 어쩌면 상태도…. 그러면 나는 또 살인자가 되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거야.”
지상은 마시던 술잔을 쏟았다. 이를 악물고 넥타이를 다시 매었다.
“포기하는 순간 핑곗거리를 찾게 되고, 도전하는 순간 방법을 찾게 되지.”
지상의 어깨 위로 보름달이 맑은 달빛을 비추었다.
도희가 커피숍에 들어섰다. 기탁은 그녀가 앉을 의자를 빼며 입속말을 했다.
‘조만간 도원 법무팀장으로 가면 내게 영원한 갑이잖아. 최대한 공손히 대해야 해.’
“9번 배심원이 도희 씨의 애인이라고요!”
그는 까무러칠 뻔했다.
“연우 씨는 제게 맡기세요. 우리는 곧 결혼할 거예요.”
“저녁에 최연우 씨를 만나려고 했는데… 그럼 도희 씨만 믿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기탁은 그녀와 헤어지면서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9번에게 잘 보여야겠군. 곧 백 회장 부마가 될 사람이잖아.”
도희는 연우를 찾아갔다.
“이런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오늘 법정에 왜 왔어?”
“그게… 영채 언니를 만나고 법정 구경도 할 겸.”
“혹시 증인으로 나온 사람? 아는 사이야?”
“응.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랬구나.”
“자기, 배심원으로 선정되었나 봐?”
“힘들게 됐어. 내일까지 재판을 한다고 하네. 덕분에 일당도 두둑이 챙기고. 알바비 받으면 한 턱 쏠게.”
“내가 보기에는 피고인이 진범인 것 같은데, 연우 씨는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CCTV 검증 얘기는 왜 꺼낸 거야?”
그녀는 연우의 속내를 슬쩍 떠보았다.
“우연히 생각이 났어. 근데 블랙박스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이 사건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야. 모두가 피고인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느낌이 들어. 내 판단으로는 백도진 씨가 운전한 것 같아.”
“아니래도! 모든 정황으로 봤을 때 상태가 범인이라고!”
도희는 즉각 반응했다.
“상태라니? 네가 피고인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 아는 사람이야?”
“아, 아니. 법정에서 언뜻 들은 것 같아서.”
“그래? 그건 배심원들만 아는 내용인데…”
그는 찜찜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도희야, 나는 배심원으로서 진실을 꼭 밝혀낼 거야.”
“그럴 필요 없어!”
“왜 이렇게 흥분해?”
순식간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연우는 그녀를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중학교 시절의 사건이었다.
“내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방법뿐이야.”
잠시 도희는 시름에 잠겼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사실은… 백도진이 우리 오빠야.”
“뭐라고? 그럼, 네 아버지가 도원그룹 임원이 아니라 백성국 회장님이라는 거야!”
그는 퍼즐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에 상아와 도희가 길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단지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둘러댔던 것이 떠올랐다. 비로소 연우는 도희가 상태의 가족사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도희는 자존심이 강한 그에게 아버지의 실체를 비밀로 해왔다. 그리고 연우가 도원에 입사하면 고백하려고 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오빠에게 유리하게 해줄 수 없을까?”
“무슨 의미야?”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이 내리면 도원 입사는 내가 책임질게. 또 요직에 초고속 승진도 보장할게. 어차피 우리는 결혼할 거잖아.”
연우는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그토록 원하던 도원 입사가 보장된다. 게다가 재벌 사위가 될 수 있어.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하지만 내 관여로 도진이 진범으로 밝혀지면 우리는 원수가 될 거야. 그러면 내 장밋빛 미래를 포기해야 할지도 몰라.’
그는 현기증이 났다. 마음은 흔들리다 못해 지진이 일었다. 그 순간, 상아의 애처로운 울먹임이 그의 귀에 파동쳤다.
“지금 제 곁에서 오빠를 도와줄 사람은 연우 오빠밖에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도희의 바람을 따른다면 나는 평생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마침내 연우는 진실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다.
‘아차! 근데 상태와 같은 반의 옆자리 친구라는 사실까지 말했으니… 만약 거절하면 오빠를 구하려는 도희가 태양에 알릴 것이고, 그러면 검찰이 기피 신청을 할 거야. 그럼 나는 배심원에서 제외되겠지?’
그는 고민하는 척하며 말했다.
“그래. 네 뜻대로 할게.”
“정말 고마워. 이제부터 나만 믿어.”
그녀는 기뻐하며 기탁에게 성공 소식을 전했다.
연우는 저녁에 태양이 자신을 찾아와 매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순간 대화를 녹음하여 지상에게 전달하고, 재판에서 터트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도희의 방문으로 물거품이 되어 허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