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시즌 1 - 각성(Awakening)

by 이용주

6화: 작전 준비


금요일 아침.

지오는 평소처럼 출근했지만, 내면은 전혀 평소와 달랐다.

내일 밤. 작전 당일. 프로젝트 제로의 모든 증거를 확보하고 세상에 폭로하는 날.

8년 만에 지오는‘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려움과 긴장감. 그리고 기대감이 뒤섞였다.

이 모든 것이 구매한 감정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것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은별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태블릿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지오와 눈이 마주치자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순조롭다.

그 신호였다.


점심시간. 옥상.

인적이 드문 옥상. 지오와 은별이 만났다.

“장비는 다 확보했어요.”

은별이 작은 가방을 보여줬다.

보안 우회 장치. 전자 잠금 해제기. 긴급연락용 이어 피스.

그녀가 두 개의 작은 캡슐을 꺼냈다.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죠?”

“무감각 감정이에요. 보안팀이 쓰는 것과 같은...”

“왜 이게 필요한 거죠?”

“내일 밤 작전 중에 두려움이나 긴장감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면 안 되니까요.”

은별이 캡슐을 지오에게 건넸다.

“필요할 때 주입하세요. 30분 간 모든 감정이 차단돼요.”

지오는 캡슐을 받아 들며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8년 동안 감정 없이 살았던 자신이, 이제 막 감정을 되찾았는데,

다시 감정을 차단해야 한다니.

“괜찮아요. 일시적인 거니까.”

은별이 지오의 표정을 읽었다.

“작전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요. 진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아요.”

“당신은 부모님을... 잃었다고 했죠?”

지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별이 잠시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이에요. 제가 22살 때.”

“어떻게...”


서은별의 과거

“감정 중독이요. 아버지가 먼저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평온함’을 사셨죠.”

은별의 목소리에 담담함이 스며있었다.

하지만 그 담담함 뒤에는 깊은 슬픔이 있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엔 3일에 한 번.

나중엔 매일. 점점 더 강한 감정이 필요해졌어요.”

“어머니도...”

“네. 아버지를 말리려다가 같이 빠져들었어요.

‘사랑’을 샀거든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은별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러니하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샀는데, 그 때문에...”

“돈이”

“집도 팔고, 차도 팔고, 빚도 내고...

마지막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지오는 그녀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부모님이 유서를 남기셨어요.‘은별아, 미안하다. 우리는 너무 약했다. 하지만 너는 강하게 살아라.’ 그리고...”

은별의 목소리가 떨렸다.

“함께 강에 뛰어드셨어요.”


지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결심했어요. 이 시스템이 얼마나 사람들을 파괴하는지 세상에 알리겠다고.”

“그리서 해킹을...”

“처음엔 혼자였어요.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작은 감정은행 시스템을 해킹하고, 증거를 모으고...”

“레오는 언제 만났나요?”

“2년 전이에요. 제가 블랙 필에 침투했을 때, 레오가 저를 발견했죠.”

은별이 미소 지었다.

“처음엔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레오는 저를 죽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같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레오도 같은 목적?”

“비슷해요. 레오의 딸도... 감정 중독으로 죽었거든요.”

지오는 놀랐다. 레오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모두 같은 이유로 싸우고 있어요.”

은별이 지오를 바라봤다.

“당신 여동생, 제 부모님, 레오의 딸...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밤, 반드시 성공시켜요.”


그날 저녁. 레오의 은신처.

강남역 지하 깊숙한 곳. 폐쇄된 지하철 터널 안에 레오의 비밀 아지트가 있었다. 지오, 은별, 레오, 그리고 노인 김중석이 모였다.

“모두 모였군.”

레오가 홀로그램 지도를 펼쳤다.

Emotion Bank Tower의 3D 구조도가 떠올랐다.


작전명: 진실의 해방(Operation Truth Liberation)

“작전을 최종 점검하자. 내일 밤 11시.

건물 경비가 교대하는 시간을 노린다.”

레오가 설명을 시작했다.

1단계: 지오가 직원용 출입구로 들어간다.

중개인(broker) 신분증이 있으니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야간에는 추가 인증이 필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이게 필요해.”

레오가 작은 칩을 건넸다.

“보안 인증 우회 칩이야. 신분증 뒷면에 부착하면 야간 출입 권한이 생긴다.”

2단계: 지하 20층으로 이동. 엘리베이터는 CCTV가 있으니 비상계단을 이용한다.

은별이 덧붙였다.

“비상계단 CCTV는 제가 해킹으로 루프 재생시킬게요.

30분 창이 생겨요.”

3단계: 지하 20층 서버실 진입. 여기가 가장 위험하다.

레오가 서버실 구조를 확대했다.

“생체 인증 + 비밀번호 + 망막 스캔 3중 보안이야.”

“어떻게 통과하죠?”

“내가 전 직원의 생체 데이터를 해킹했어요.”

은별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장갑을 끼세요. 고위 관리자의 지문이 복제되어 있어요.

망막 스캔은 제가 시스템을 속일게요.?”

“비밀번호는?”

“그건 내가 안다.”

노인 김중석이 입을 열었다.

노인이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마스터 비밀번호: 20450523(내가 첫사랑을 고백한 날짜야.)

지오는 종이를 받아 외웠다.

4단계: 서버실 안에서 모든 데이터를 다운로드한다.

은별이 USB를 건넸다.

“이걸 서버에 꽂으면,

자동으로 프로젝트 제로 관련 모든 파일을 복사해요. 약 15분 소용.”

“15분 동안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거네요.”

“맞아요. 그래서 이게 필요해요.”

은별이 작은 장치를 보여줬다.

“보안 시스템 교란기예요. 5분마다 거짓 경보를 울려서 보안팀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요.”

5단계: 데이터 확보 후 탈출. 같은 경로로 나온다.

6단계: 증거를 전 세계 언론에 동시 송출. 레오가 준비한 네트워크를 통해 삭제 불가능하게 배포한다.

레오가 홀로그램을 껐다.


“질문 있나?”

“만약... 작전 중에 들키면 어떻게 하죠?”

레오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망쳐라. 무조건 도망쳐서 살아남아라.”

“하지만 죽으면 끝이야.”

은별이 지오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서로 지켜요. 같이 들어가서 같이 나와요.”

지오는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결의가 담겨 있었다.

“알겠어요.”

노인이 일어섰다.

“자네들... 고맙네. 나 같은 늙은이의 부탁을 들어줘서.”

“아니에요. 이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지오가 말했다.

“제 여동생, 은별의 부모님, 레오의 딸...

그리고 이 썩은 시스템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에요.”

“그래도... 위험한 일에 젊은이들을 끌어들여서 미안하네.”

“할아버지.”

은별이 노인을 바라봤다.

“우리가 선택한 거예요. 복수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요.”

레오가 술잔을 들었다.

“내일을 위해 건배하자. 프로젝트 제로의 종말을 위해.”

네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토요일. 작전 당일.

지오는 그날 하루를 평범하게 보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아침에 조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책을 읽고.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는 긴장감이 계속 커져갔다.


최종준비

오후 8시. 지오는 어두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은별이 준 장비들을 챙겼다.

보안 우회 칩, 전자 잠금 해제기, 이어 피스, USB,

그리고... 무감각 캡슐.

지오는 한참 캡슐을 지켜보았다. 정말 주입해야 할까?

오후 10시 지오는 집을 나섰다.

밤거리는 여전히 붐볐다. 사람들은 손목의 감정 주입기를 확인하며

오늘 저녁을 어떤 감정으로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8년 만에 되찾은 감정을 다시 차단한다는 게...

하지만 레오의 말이...

저들은 모를 거야. 오늘 밤.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을...

“감정이 판단을 흐리게 하면 안 돼. 임무를 완수해야 해.”

오후 10시 30분. 지오는 Emotion Bank Tower 근처 골목에 도착했다.

지오는 캡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필요하면 쓰기로.

이어 피스에서 은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오, 들려요?”

“네. 들려요.”

“좋아요. 저는 지금 500미터 떨어진 카페에서 해킹준비 중이에요.”

“레오는 탈출 차량 대기 중이고요.”

“노인 할아버지는요?”

“안전한 곳에 계세요. 우리가 성공하면 연락드리기로 했어요.”

지오는 심호흡을 했다.

“10시 50분에 경비 교대가 시작돼요. 그때 들어가세요.”

시계를 봤다. 10시 47분. 3분 후.

지오는 건물을 바라봤다.

150층 높이의 거대한 타워.

감정 거래의 중심. 프로젝트 제로의‘본거지’.


지유야, 지켜봐 줘.

오빠가 네 뜻을 이어받을게.

10시 50분.

“지금이에요!”

은별의 신호와 함께 지오는 움직였다.

직원용 후문으로 다가갔다. 신분증을 스캔했다.

문이 열렸다.

지오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작전이 시작되었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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