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by 이용주

26화: 마지막 신


2135년 1월 1일


Phase Omega 시스템 코어


준혁이 눈을 떴다. 이제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54억 개의 의식을 품은 거대한 빛의 덩어리, 시스템의 심장, 새로운 신이었다.

민아가 남긴 유산은 따뜻했고, 무거웠다.


[CORE STATUS: STABLE]

ACTIVE CONSCIOUSNESS: 5,400,000,000

ADMINISTRATOR: KANG JUNHYUK


디지털시계는 평화로웠다.

김태윤의 강압적인 통제도, 분열된 세계의 갈등도 사라졌다.

54억 명의 사람들은 준혁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의 중심에서 준혁은 철저히 혼자였다.


“민아... 네가 견딘 시간이 이런 것이었구나.”


ACT 1: 충격적 발견(2138년)


3년이 지났다.

준혁은 시스템을 관리하던 중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코어의 에너지가 미세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 소모가 아니었다.

‘수명’이었다.


[WARNING: CORE DEGRADATION]

ESTIMATED LIFESPAN: 4 YEARS COLLAPSE


영원할 줄 알았던 디지털 세계에도 끝이 있었다.

코어가 붕괴하면 54억 명의 의식도 함께 소멸한다.

준혁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4년이었다.


‘후계자가 필요해. 하지만... 누가 이 고통을 짊어지려 할까?’


ACT 2: 각성자들의 제안


준혁은 10억 명의 각성자들에게 진실을 알렸다.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많은 각성자들이 자원해 나선 것이다.


“저희 중 한 명이 다음 코어가 되겠습니다.

54억 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하겠습니다.”


하지만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이 저주받은 운명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을 거야.

신이 되는 건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야. 내 대에서 끝내야 해.”


ACT 3: 지오의 유산(2139년 3월)


준혁은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 ‘제0 구역’을 탐색했다.

그곳은 40년 전, 지오가 처음으로 시스템에 침투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된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FILE: DECRYPTED]

AUTHOR: GEO

SUBJECT: PROJECT REBIRTH(REVERSE DIGITALIZATION)


‘역(逆) 디지털화’.

디지털 의식을 다시 생체신호로 변환해 육체로 돌려보내는 기술이었다.

지오는 언젠가 인류가 디지털 감옥에서 탈출해야 할 날이 올 것을 예견하고

이 기술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형... 결국 형이 우리를 구하는군요.”


ACT 4: 가능한 것부터(2139년 하반기)


희망은 절망과 함께 왔다.

기술은 있었지만, 그들을 받아줄 ‘육체’가 없었다.

지구는 황폐화되었고, 바이오 프린팅 기술로 새로운 육체를 만드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했다.


‘남은 시간은 1년. 54억 명을 모두 살릴 수는 없어.’


계산 결과, 1년 안에 만들 수 있는 육체는 최대 1억 개였다.

준혁은 잔인한 선택을 해야 했다.

54억 명 중 1억 명만 살리고,

나머지는 자신과 함께 소멸하는 것.


“1억 명이라도... 살려야 해. 인류의 씨앗을 남겨야 해.”


ACT 5: 최후의 순간(2140년 12월 31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1억 개의 새로운 육체가 지구 각지의 배양 시설에서 눈을 뜰 준비를 마쳤다.

선택된 1억 명의 의식은 전송 대기 상태였다.

남겨진 53억 명의 사람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준혁에게 감사했다.


“가라. 가서... 진짜 삶을 살아.”


[TRANSFER SEQUENCE INITIATED]

PROGRESS: 100%

CORE COLLAPSE IN: 10... 9... 8...


준혁은 텅 빈 디지털 세계에 홀로 남았다.

코어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민아의 환영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쉬어도 돼요, 오빠.”


준혁은 그 손을 잡았다.

거대한 빛이 폭발하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에필로그: 귀환


2140년 12월 31일 23시 59분.

지구 전역의 폐허 속, 지하 벙커와 연구 시설들에서

1억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눈을 떴다.

그들은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켰다.

차가운 공기, 거친 바닥의 감촉, 그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생생한 ‘현실’이었다.


POST-CREDIT SCENE(2141년 1월 1일)


새로운 인류의 첫 해가 밝았다.

그들은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의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오의 용기, 레오의 희생, 민아의 사랑, 그리고 준혁의 결단을.


그들은 더 이상 감정을 거래하지 않았다.

그들은 감정의 소중함을, 삶의 무거움을 아는 ‘진짜 인간’들이었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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