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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꿈을 품고 날아오른 날개

by 이미숙

어릴 적 꿈을 묻는다면, 나는 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지금은 어디든 쉽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비행은 결혼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였다. 그때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는 기쁨을 느꼈고, 이후 몇 번의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꿈을 향한 도전은 2000년 2월, 미국 이민을 결정하면서부터였다.


13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곳. 여행이라면 설레고 즐거웠겠지만, 이번 비행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여정이었다. 꿈꾸던 세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잠시 행복감에 젖었다. 하지만 목적이 여행이 아닌 이민이었기에, 설렘보다는 긴장과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두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남편 없이 먼저 입성한 미국.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었고, 계획했던 모든 일이 하나씩 실행되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 여기가...미국." 공항에 내린 순간, 꿈을 이룬 기쁨도 잠시, 현실의 무게가 갑자기 밀려왔다. 머릿속이 까맣고 하얀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용기를 내어 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신이 나 있었지만, 나는 부모로서 지켜야 할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완전히 새로운 문화와 지혜를 배워야 하는 과정이었다. 다행히 지인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적응해 나갔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특히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컸다. 미국 생활을 선택할 때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부딪쳐 보니 듣고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감은 점점 위축되었고, 좀 더 철저히 준비하고 와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을 다독이며 몸으로 부딪쳐 하나씩 배워나가기로 했다.


짐이 도착하고 새집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민 2막의 시작이었다.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뛰어다녔고,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았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이방인을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처음에는 이방인이었고,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갔다.


이민 생활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한 길이었다. 앞을 보며 나아가야 했고, 지혜롭게 선택해야 했다. 꿈을 안고 떠난 비행기에서 가졌던 설렘은 현실과 부딪치며 점점 사라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작은 성공을 거두며 길이 열리기 시작했고, 희망이 보였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한 해가 흘렀다. 그렇게 부딪치고 깨지면서도, 인생이라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처음에는 흙길, 모래길, 자갈길, 바윗길을 걸어야 했지만, 이제는 단단한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또 다른 비행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행운과 꿈을 찾아 다시 한번 하늘을 날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디작은 세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만의 꿈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비행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꿈의 날개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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