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호(The Great Lakes)에 담긴 기억
미국 동부, 내가 살던 도시는 바다가 없는 호수의 도시였다. 가끔 바다가 그리울 때면, 커다란 호수가 있는 공원을 찾아 마음을 달래곤 했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드넓은 호수들은 마치 바다처럼 시야를 가득 채웠다. 호수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고향을 떠올리기도 했다. 호수 위에는 수많은 보트가 떠 있고, 가족 단위로, 친구들과, 또는 비즈니스 관계로 모여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저 멀리 수평선 끝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아롱거렸다. 마치 바다에 나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가슴이 확 트이는 듯했다. 한없이 넓고 푸른 물결 위로 갈매기 떼가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모습에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연이 주는 평온함 속에서 내 마음도 어느새 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녔다.
이렇게 아름답고 광활한 호수가 존재할 수 있다니, 경이롭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보았던 작은 호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선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얀 모래가 깔린 호숫가를 걸으며 부드러운 촉감을 느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삼겹살을 굽는다. 한국인의 맛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맛있는 냄새가 퍼지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고소한 냄새 속에서 온갖 시름이 사라지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려 눕는다. 풀벌레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간질인다.
이곳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문화 도시. 거리마다 ‘Lake’라는 명칭이 들어간 도로들이 많다. 공원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고기 파티하고, 공을 차며, 배드민턴과 비치볼 게임을 즐긴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서나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힐링.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때로는 이렇게 마음의 양식을 채우며 행복을 찾는다. 비릿한 바다 향은 없지만, 높고 푸른 하늘과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감미롭다. 저 멀리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호수를 감싼다. 잔잔한 물결 위로 스며드는 해무가 고요한 평온함을 선사한다. 음악이 흐르고, 어스름한 불빛 아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칵테일 한 잔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만끽한다.
사는 게 별거던가. 서로 눈을 맞추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한 잔의 술을 나누며 금세 친해진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의 공간. 이 호수가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오늘도 호수의 경치 속에서 충분한 힐링을 만끽했다. 마치 맑은 숲속에 사는 백설 공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