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미학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by 이미숙

눈 내리는 길을 걸어가며 조심스레 발을 디뎌본다.

한 걸음, 한 걸음....


가족과 함께 떠난 겨울 여행,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며 한파 주의보가 내려졌고,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다. 나의 마음도 덩달아 비워지며 깨끗해지는 듯했다. 눈앞에 펼쳐진 명산은 어느새 아름다운 설산으로 변했고, 우리는 그 장엄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손놀림이 분주했다.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 속으로 스며들며,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과 발을 맞추어 걸으며 기억 속 추억을 꺼내 보았다. 걷다 보니 파도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고, 거센 바람이 파도를 몰아오고 있었다.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지며 주변이 한적해졌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하얀 눈길 위에 점선을 그리듯 남긴 발자국들, 그리고 파도 소리에 이끌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새 거친 바다 앞에 도착했다.


뒤로는 웅장한 설산, 앞으로는 출렁이는 바다.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따뜻한 햇살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주었다. 거친 바람에 파도는 요동쳤고, 쉴 새 없이 손뼉 치듯 부서졌다. 나는 함박눈이 내려앉는 파도 앞에서 묵은 시름을 날리고, 새해의 복을 빌며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답답했던 마음이 파도 소리에 씻겨 내려가듯 평온해졌다.


거센 바람이 몸을 휘감아 한 걸음 더 다가서지 못하게 했다. 차가운 공기가 엄습하는 순간, 물 위 햇살 아래 윤슬이 찬란하게 빛났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그 광경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수 놓인 듯했다. 손바닥으로 햇살을 가리며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묵언수행을 하듯 그 자리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오던 길을 다시 되짚어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그새 하늘은 선홍빛 석양으로 물들고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도 파도가 밀려와 흔적을 지웠다 남기기를 반복하며 영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주었다. 가슴 한편에 남은 잔상들이 겨울 바다와 함께 평온한 여운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만에 가족과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남겼다. 각박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겨울 바다 방파제 끝 등대 앞에서 가족 기념사진을 남겼다. 물결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함박눈과 함께, 우리 가족은 함박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나뭇가지마다 화사한 눈꽃이 내려앉은 겨울 왕국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흐름 속에 겸허해졌다. 작은 먼지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눴다. 돌아가는 길, 남겨진 발자국을 뒤돌아보니 어느새 함박눈이 우리의 흔적을 덮고 있었다. 마치 인생도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금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멀어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내 삶도 그리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등대는 묵묵히 빛을 밝히며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다시금 새로운 여행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등대처럼 흔들리지 않는 빛이 되어, 소중한 가족을 위한 삶의 이정표가 되어야겠다고. 남은 인생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야겠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었노라." —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