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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Nov 15. 2024

콩깍지 강할매요

딸처럼 마음을 나눈 인연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어르신과의 인연은 마치 정원의 분홍색 꽃 한 송이 같았습니다. 매일 저를 기다리며 건네주신 따뜻한 미소와 손짓은 꽃잎처럼 어르신의 사랑과 애정을 전해주었죠. 어르신이 좋아하시던 분홍 꽃무늬 이불을 드렸을 때, 소녀처럼 기뻐하던 모습은 제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너무 좋다”는 말씀은 여전히 그 꽃이 피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활짝 핀 분홍빛 꽃다발을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이 특별한 인연을 위해.



4.


한 어르신과의 특별한 인연이 생겼습니다. 삼시 세끼 식사 후면 반드시 마당 정원에 나가 걷기 운동하시다가 이쯤이라 하는 시간이면 내가 있는 층을 향해 바라보고 계신 어르신 한 분. 같은 층에서 근무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다른 층으로 이동해 근무한 이후 생긴 일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세 번은 내 모습을 봐야만 안심이 된다는 말씀에 매번 그 시간 베란다 밖으로 소리쳐 불러 드리고, 얼굴을 마주 봐 드리면 너무 행복해하시며 손을 하염없이 흔들어 주실 때마다 매번 애틋함이 묻어났습니다. 직접 찾아뵐 때도 있지만, 바쁘면 지나치는 순간이 더 많아 죄송하기도 했고, 꼭 보게 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저에게 콩깍지가 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부러움과 질투의 볼멘소리도 듣지만, 무한한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딸도 아닌 남인 저에게 마음을 다 내려놓으시기까지 얼마나 저를 지켜보며 많이 생각해 주셨을지… 믿어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이 컸습니다. 사무실에 가셔서 저를 당신 층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부탁하셨다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지요.


처음 입소하시던 날, 제가 근무 중 마중할 수 있었고, 가족과 여러 상의 이후 들어오셨겠지만, 하루아침에 당신 쓰시던 집안 살림들을 다 내려놓기가 쉬웠을까요? 그늘진 얼굴 모습에 다 묻어난 어두운 표정이 무척이나 우울해 보이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드문드문 소리 없이 우시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으니, 요양원에 오시는 분들은 처음에는 다 똑같이 부딪치는 상황이겠지요. 


조용히, 조심스럽게 다가가 수시로 말벗이 되어드리며 공감하며 여러 날을 지내다 보면 조금씩 좋아지시는 모습에서 잘 적응하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이제는 어르신의 습성, 좋아하는 것, 드시는 음식 등을 잘 파악하여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옛날 어르신들답게 참으로 검소하게 사셨음을 느낄 수 있었고, 자상한 배려와 이해가 묻어나는 어르신…


아들만 둘이라며 매주 번갈아 면회 와주시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매일 한집에서 아들 가족과 함께하는 품에 비할 수 있을까요? 그리움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식 앞에서는 괜찮은 척, 좋다 하시다가도 이후 저에게는 그리움의 눈물을 보이시며 푸념을 놓습니다. 위로의 농담으로 어르신께 "저를 딸이라 생각하시면서 즐겁게 저희와 지내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아부 아닌 말로 달래봅니다.


천륜을 어찌 잊으라 하겠습니까?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을… 뭐든 아끼려 하고 절약이 배어 있어 어려운 아들 집 사정 헤아려 드시고 싶은 게 있어도 없다는 거짓말로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 하실 때, 자식 돈 아껴주려는 부모 마음… 거절부터 하시는 어르신을 보며 그 속에서 제 어머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다른 분들의 나눔을 보시고, 따로 먹을 것이 필요함을 느끼셨는지 자녀들이 사 오신 것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다시 여러 사람에게 나눔을 하시던 변화된 모습.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따로 좀 더 챙겨 드리고, 오래되고 작아서 입을 옷이 없는데도 자식에게 말하지 못하시던 어르신께 제가 시장 가서 두세 벌 사다가 "제가 입으려고 샀다가 작아서 못 입어서 놔둔 옷이니 어르신 입어보세요" 하고 드리면 너무 좋아하시던 그 모습. 


예쁜 분홍색과 꽃들을 무척 좋아하던 분. 매해 같은 꽃이라도 활짝 핀 꽃 사진을 찍어 달라, 보고 또 보며 좋아하신 어르신. 마침, 시집올 때 친정어머님이 사주신 이불 중에 꽃으로 수놓은 분홍색 공단 누비 얇은 여름 이불이 있어 간직만 해오다 어르신께 선물로 드렸더니 끌어안고 소녀처럼 좋아하며 아끼려고 할 때 부지런히 아끼지 마시고 덮고 잘 주무시라 약속받던 그날 이후 잘 사용하시는 것이 생각납니다. 


어르신께서는 당신이 나에게 줄 것이 없다며 매일 수시로 새벽기도까지 해주신다고 하셨을 때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기억하려 하시나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당신 드실 것도 별로 없는데 맛있는 간식이 생기면 남겨두고 제 손에 살포시 올려놓고 들어가시는 일도 다반사. 받아놓았다가 다시 잠드신 밤에 어르신 냉장고에 넣어놓고 마음만 받겠다 하면서 "똑같은 게 우리 집에 너무 많이 있어요"라고 말로 안심시켜 드린 후 드시도록 했습니다.


퇴사해야 했던 날, 진심 어린 말을 못 하고 "어르신, 저 다리 아파 수술하고 올 테니 갑자기 안 보인다. 놀라지 말고 건강 유지 잘하시면서 기다려 주세요"라고 당부했던 말에 펑펑 우셨습니다.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상심 어린 말씀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언제 올 것 같냐?"면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우리 어르신께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고 있답니다. 여전히 내 기도도 꼭 빼놓지 않고 해주신다며, 전화기 너머 "이만 끊을게요" 하는 순간 들려오는 말씀에 "아이고, 오늘은 우리 선생님 목소리라도 듣고 나니 너무 좋아요"라는 음성에 순간 목이 메었습니다. 


"치료 잘 받고. 죽기 전에는 만나야지?" 하시며 만남을 기다리는 어르신... 저는 내 어머니보다 어머님 같은 사랑을 넘치게 받는 행복한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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