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신념 후에 오는 것들?
A. 기념 또는 양념
이념에 둘러싸여 왼쪽 끝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원망의 대상이다. 이후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시골 고향마을 구례에서 둥글게 둥글게 굴린다. 나와 - 역시 그 시절 왼쪽에 서있던 - 엄마와 함께.
신념이 사랑과 비슷하다면? 신념 후에 오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기념과 양념. 기념한다는 것엔 과거를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 양념의 어원은 약념이라고 한다. 약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식재료를 손질하고 섞어 본이 되는 요리에 더하는 것.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박노해 시인이 1998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되면서 한 말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과거를 팔지도, 따르기만 하지도 않았다. 구례에서 - 어머니와 나의 이해가 곁들여진 - 양념처럼 살다가 갔다. 당연히, 나도 고향마을에서 둥글게 둥글게 구르고 계신 아버지 생각이 스친다. 그런데 이보다 강하게 뇌리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소설 속 아버지와 한 세대 차이가 나고 농사와 사회 구조에 대한 태도가 같은 A다. A는 청년 시절에 대기업 해외지사 생활을 10여 년 하다가 시골에 정착한 사람이다. 여기서 인연이 닿아 노처녀 공무원 B를 만났고 자녀 C를 얻었다.
소설 속 아버지와 A가 보낸 시대와 환경은 많이 달랐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A는 왕성한 사회 운동을 했고, B는 평범한 공무원 아내였다. A는 그곳에서 기념식에만 연연하여 뾰족뾰족 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