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루나 - 여전히 남아있는 불안한 약속들
최근 한 달 동안 암호화폐 세계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을 꼽자면 누구든 "루나 사태"를 언급할 것이다. 지난 12일 국내 대표 가상화폐인 루나의 가치는 하루 사이에 97% 이상 폭락하며 50조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 한 때 글로벌 가상화폐 시가총액 순위 10위권 코인이었던 루나의 몰락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루나는 달러와 같은 화폐와 똑같은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었기 때문이다. 단어 그대로 가장 안정적이어야 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한순간에 폭락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그 어느 코인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깨져서는 안 되는 약속이 깨지게 된 것이다.
깨져서는 안 되는 약속이 깨지기 시작할 때 모든 것은 빠르게 부서진다.
나는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주식을 구매한다는 건 그 회사가 앞으로도 좋은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하고, 회사나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구매한다는 건 돈을 빌려간 주체가 미래에 돈을 갚을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믿음"은 경우에 따라 "신용", "약속"등의 단어들과 동의어로 쓰이며 이 개념들은 현 금융시장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믿음과 신뢰가 얼마나 부실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이번 루나 사태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대학생 때 금융 수업에서 배웠던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세상에 절대적인 것들은 많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노벨상 학자들로 구성된 드림팀으로 이루어졌던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부도,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갈 것만 같았던 금본위제의 폐지,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튤립 버블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사고들을 생각해보면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시스템들도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경우가 많았다. 깨져서는 안 되는 약속이 깨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빠르게 부서진다.
암호화폐에 대한 낙관자로서 나는 암호화폐가 가진 장점들을 고려했을 때 이 기술이 미래의 삶에 접목되지 않는 경우의 수를 상상할 수가 없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없다..). 다만 이번 루나 사태를 기점으로 암호화폐 산업이 가진 여러 리스크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스테이블 코인의 안전성 여부 이외에도 이 산업에는 두 가지 커다란 위험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 리스크들이 터질 경우, 암호화폐 업계는 또다시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기에 투자자들은 신중하게 아래 리스크들을 고려하였으면 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가 달러 등의 실물자산들과 연동된 가상화폐 자산을 뜻한다. 크게는 두 가지 종류의 스테이블 코인이 있는데 하나는 담보자산을 기반으로 발행되어 소장된 자산과 가치 연동(pegging)을 유지하는 담보 기반 스테이블 코인과, 루나와 같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있다. 루나 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시장에서 가장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알고리즘 코인도 그 로직의 허점에 따라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자인 담보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도 안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담보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의 경우, 어디까지나 담보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고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과의 자유로운 교환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지 않거나, 사용자의 대량 교환 요청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담보자산이 즉각적으로 이행될 수 없다면 담보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도 위험할 수가 있다.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 스테이블 코인 모두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상품의 특성상 유입되는 화폐 등의 현물자산에 기생하여 그 가치가 생산되기에, 미국 달러 등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코인 생태계의 화폐공급량은 결국 미국 연방준비제도 (FED)와 같은 기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 몇 개월 동안 암호화폐 시장의 전반적인 가격 폭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거시적 경제변화가 손꼽히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들이 자체적인 구조적 결함들을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만약 제3의 단체에 대한 의존도를 끊을 수 없다면 제2의 루나 사태는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기축통화와의 연결고리가 스테이블 코인의 가장 큰 약점이자 리스크이다.
지금까지 많은 블록체인 프로토콜들의 가장 강력한 피치 포인트는 "탈중앙화"였다. 탈중앙화는 중간 매개체 없이 양자 간의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고, 조직의 권력 포인트를 분산시킴으로써 소수의 중앙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기에 블록체인 프로토콜들은 너도나도 탈중앙화를 장점으로 전통 산업에 대한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였다. 실제로 Uniswap, Aave 등 수많은 혁신적인 프로토콜들이 탄생하였고 이들은 대출 서비스 및 유동성 제공, 자산 간의 스왑 등 전통 금융업체들이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들을 훨씬 더 간편한 방법으로 사용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혁신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루나 사태에서 체감했듯이 진짜 문제들은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탈중앙화 프로토콜들이 지속적으로 챌린지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 해당 프로토콜은 정말 탈중앙화 되어있는지?
- 탈중앙화 됨으로써 얻게 되는 실질적인 이점은 무엇인지?
Q1. 프로토콜의 탈중앙화 여부
앞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부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탈중앙화를 갖춘 시스템은 상당히 드물다. 스테이블 코인이 FED의 금리 결정 안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처럼 많은 프로토콜들이 직/간접적으로 중앙화 된 프로세스 및 집단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로 많은 블록체인 프로토콜들은 소수의 집단에 의해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개발자의 시스템 코드 수정 권한이나, 집단이 속한 국가의 암호화폐 규제나, 블록체인 자체의 거버넌스 구조등 만약 소수의 내부 집단 내지는 외부 집단이 프로토콜의 탈중앙화를 위협할 수 있다면 이는 프로토콜의 탈중앙화 여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손상시킬 수 있다. 즉, 자신들이 탈중앙화 된 프로토콜들이라고 자랑하는 프로젝트들이 실제로는 별로 탈중앙화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Q2. 탈중앙화의 실질적 이점은? 중앙화 시스템과의 올바른 정반합의 필요성
사실 무조건 100% 탈중앙화하는게 답이 아닐 수도 있다. 블록체인은 여전히 새로운 기술이며 사람들은 아직 무엇이 가장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해 실험 중이다. 위에 Q1에서 언급한 탈중앙화 여부가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럴 경우 프로토콜들은 어떤 형태의 조직이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탈중앙화 된 집단과 중앙화 된 집단의 장점들을 잘 고려하여 적절한 믹스가 더 나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할 텐데, 아쉽게도 아직은 어떤 형태의 조직이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한 질문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블록체인 산업 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회사들은 중앙화 된 조직이다. 바이낸스와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보면 이들은 중앙화 된 조직이기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 있고, 해킹 등 여러 가지 리스크가 있겠지만 중앙화 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조직이 상부의 의사결정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유형의 회사들은 탈중앙화 된 조직들과 업무를 협업하거나, 조직의 일부분은 탈중앙화 된 구조로 가져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앙화 된 조직의 메커니즘을 답습하고 있다.
의외로 설루션은 간단할 수 있다. 흑묘백묘론 (黑猫白猫)처럼 탈중앙화가 되었던 되지 않았던, 사용자에게 가장 큰 편의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살아남을 것이다. 단순히 탈중앙화, Web3, 메타버스 등의 buzzwords를 피치 포인트로 내세우고 정작 사용자에 대한 유틸리티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프로토콜들은, 지금까지는 암호화폐 업계의 Hype에 힘입어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고 막대한 금액의 투자액을 받아냈지만 이제는 내실이 부족한 프로토콜들은 거품이 꺼질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내가 우려하는 리스크는 내재가치가 없는 NFT 프로젝트들이다. 사실 NFT에 대한 나의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고 궁극적으로 이 기술은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하게 함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마켓에서 유행하고 있는 NFT 프로젝트들을 보면 이들 중에서 살아남을 프로젝트들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너무나 많은 NFT프로젝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실제 내재가치가 있는 NFT프로젝트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다.
지금까지의 NFT시장을 바라보면 대부분은 투기적인 목적으로 NFT를 구매하고 있다. 이 경우 트레이딩을 통한 단기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가치의 내재가치가 약하기 때문에 결국 시장가치는 내재가치를 쫓아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루션은 어떻게 보면 두 번째 리스크와 비슷한데, 결국 NFT보유자들에게 그에 합당하는 유틸리티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들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NFT는 "무형자산을 자산화" 할 수 있는 탁월한 기술이다. 브랜드의 가치, 지적재산권,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 등 엄청난 내재가치를 갖고 있으나 이를 자산화 할 수 없었던 아티스트 및 단체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티스트라면 NFT발행을 통해 나의 열혈 팬 커뮤니티를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으며, 내 NFT를 구매한 팬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그들과의 유대감을 더욱더 돈독하게 쌓고, 팬들 또한 나의 커뮤니티를 키워가고 홍보하면서 상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 속에서 NFT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팬들과 아티스트 둘 다 금전적으로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NFT프로젝트들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이런 강력한 무형자산을 구축한 NFT프로젝트들은 극소수이다. 실제로 최근 몇 개월 동안의 NFT프로젝트 수익률을 보면 상위 5위 내지는 10위의 프로젝트들은 지속해서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NFT에 대한 믿음이 깨질수록 내재가치가 약한 NFT프로젝트들은 가치가 제로에 수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NFT는 물론 암호화폐에도 많은 자산을 투자하고 있기에 앞서 공유한 리스크들이 터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구조적으로는 세 가지 리스크 모두 다 전체 산업의 상당 부분을 wipe out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닷컴 버블 때와 아주 비슷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수많은 프로젝트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는 정말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가올 크립토 윈터를 살아남을 프로젝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장 뛰어난 회사들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다. 구글과 세일즈포스는 닷컴 버블 직전에 태어났고, 에어비앤비와 우버는 금융위기 속에서 태어났으며, 아마존과 페이스북 같은 수많은 대기업들이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면서 성공했다. 깨져서는 안 되는 약속들이 깨질 때 시장은 잔인하게 무너지겠지만 투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업계가 그렇듯, 업계가 무너지면 대부분의 회사들이 같이 무너지겠지만 그중에서도 제대로 된 가치를 갖고 있는 프로토콜들은 반등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의 숙제는 내실이 강한 프로토콜들은 찾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