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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누 May 19. 2023

(스포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서평


2021년에 출판된 룰루밀러의 저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금까지 읽어본 책중에 가장 아름다운 결말을 가졌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필자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계속해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을 인용하여 말하자면 이제는 과거와의 "헤어질 결심"을 하게 만든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작하기에 앞서서 본 게시물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가능하면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읽는 것을 권장드린다. 하지만 완독 할 시간이 없다면 서평만이라도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만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자부한다!). 서평의 전개 방식은, 처음부터 줄거리를 읊기보다는 책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장면을 선택하여 이 장면들을 기준으로 책의 내용과 객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으며 글의 말미에는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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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장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아버지는 쌍안경 뒤에서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씩 웃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 본문 77페이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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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일곱 살의 룰루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아이에게는 충격적일 수도 있는 진실을 들려주었다. 광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존재했던 기간은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광활한 우주에서 한 사람의 존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사실은 룰루에게 꽤나 큰 충격이었다.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의 아버지는 오히려 별다른 고민 없이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았지만 룰루는 꽤 오랫동안 허무주의에 시달려왔다. 그녀가 우연히 빛을 발견한 건 그녀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어느 날 우연히 복도에서 어깨가 넓은 곱슬머리 남자가 그녀의 옆을 지나갔을 때였다.


그 남자와 함께했던 7년의 시간은 처음으로 룰루에게 안식처를 찾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어느 늦은 밤 그녀는 해변에서 수영하던 소녀와 눈이 마주치고, 애써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여자아이와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된다. 죄책감에 룰루는 이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솔직하게 고백했고 그녀의 남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하게 된다. 그 남자는 떠나갔을 때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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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는 질문이기에 굉장히 보편적이면서도 아무도 명쾌한 정답을 내놓을 수 없기에 참으로 답답한 질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거나, 집요하게 답을 찾기 위해 살아간다. 아버지처럼 더 이상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룰루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답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유년시절은 늘 우울함으로 가득했다.


그런 룰루가 이성에게 사랑에 빠졌을 때 룰루는 난생처음으로 인생에서 의미를 찾았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면 커다란 리스크가 있는데, 나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게해준 존재를 상실하면 경우 다시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상실한 룰루는 어떻게 다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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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사람


사실 이 책은 룰루 밀러 작가 본인보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에 대한 자서전에 더 가깝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조던이라는 인물의의 일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한 룰루는 남자친구가 떠나간 뒤 새로운 인물을 찾아 나섰다. 다만 이번에 그녀는 연애의 대상이 아닌, 자신이 숭배할 수 있는 일종의 롤 모델을 찾고 있었다. 과학 기자로 발돋움하고 있었던 20대의 룰루는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수십 년을 어류연구에 바친 학자에 대해 알게 된다. 그녀가 조던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이유는 조던과 샌프란시스코 지진에 관한 일화를 듣고 난 뒤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건물이 무너질 정도로 강력했던 샌프란시스코 지진은 조던이 평생 연구했던 어류들이 담긴 유리단지를 박살 내버렸다. 유리단지에 넣어둔 이름표들이 바닥에 섞여 아무렇게나 나뒹굴면서 조던이 평생 연구했던 물고기 수천 마리가 다지 미지의 존재들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조던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혼돈에 굴복하지 않고 허둥지둥 뭔가를 찾아 나섰다. 조던은 바늘을 구해와서 아직 여진의 위험이 남아있던 현장에서 물고기의 목살에 바늘과 실을 꿰어 넣어 이름표를 꿰매 붙였다. 완전히 난파된 잔해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한 과학자의 일화를 듣고 룰루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이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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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군가를 우상화하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어떤 특별한 능력을 동경해서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혼돈 속에서 살아가는 룰루에게 조던이라는 인물은 어떻게든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하는 인물로 비쳤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이 책으로 이어졌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미들네임 "스타"는 사실 조던이 스스로 정한 이름으로, 이는 어렸을 때 밤하늘의 모든 별들에 이름을 부여하려고 했던 그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밤하늘의 전체에 질서를 부여한 "스타" 조던은 다음으로 정복할 대상으로 어류를 선택했다. 그는 왜 이렇게 질서를 확립하는데 집착했던 것일까? 룰루는 조던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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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면: 어느 과학자의 오판과 오만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한 탐구는 점점 더 룰루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조던이라는 인물을 잘 이해하기 위해 그녀는 조던의 일생부터 분류학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조던이라는 인물의 잔혹한 뒷면을 알게 된다.


열광적인 우생학자.


우생학은 인류의 유전에서 좋은 유전과 나쁜 유전을 구분하여 좋은 유전을 강화시키고 나쁜 유전을 감퇴시키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조던은 지상의 생물들에는 일종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사다리의 맨 꼭대기는 인간이라는 고등 생물이,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열등한 생물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명 간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부적합한 유전자들이 어떻게 종의 퇴화를 이끄는지를 증명하여 최종적으로는 장애인, 정신병자, 그리고 특정 인종 등 "우월하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이들을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룰루는 우생학자들에 의해 강제로 불임화를 당한 애나라는 여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역겹게도 우생학자들은 강간을 당해 출산한 여성들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정신적으로 뒤처지는" 경우들을 발견했고 이에 따라 애나는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과 지능검사 점수가 낮다는 사실만으로 수용소에 끌려가 불임화를 당했다. 자연의 사다리를 증명하고자 했던 어느 과학자와 그를 추종하던 집단의 오판과 오만이 한 여성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린 것이다. 룰루는 조던의 행동에 구역질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룰루는 운전대를 잡고 애나를 찾아갔다.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평생을 정신지체자 취급을 받으며 생식기를 절단당한 여성. 하지만 룰루의 걱정과는 달리 애나는 너무나도 밝은 여성이었으며, 친한 친구 메리의 아이를 돌봐주면서 따뜻하게 룰루를 환대했다. 룰루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평생에 걸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봤던 질문이었다.. (중략) 애나도 답을 답을 알지 못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메리가 불쑥 말했다. "나 때문이지!". 애나가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물론이지. 매리 때문이야".


그것은 농담이었고, 우리 모두를 실수로부터 구해주는 메리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수록, 그 말이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다... (중략)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중략) 이제야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 본문 296-302 페이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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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했던 조던의 동기는 완전히 잘못되었었다. 어릴 적에 별들의 질서를 정복했던 경험은 조던이 분기학을 통해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명의 사다리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우생학자들은 실제로 우생학을 그 당시의 보편적인 사상으로 발전시켰으며, 예를 들어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생각하면 당시의 사람들이 장애인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애나의 사례에서 봤듯이 애나는 매리에게 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존재는 주위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었고 절대 열등하거나 의미가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이 책의 충격적인 반전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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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장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의 기술을 실행하고, 다윈의 충고대로 진화상의 친연성에 따라 생물을 분류함으로써 작동시킨 그 과정이 치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깨 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이 책의 결말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하고자 한다. 분기학에 따르면 생물의 진화가 어느 가지에서 속하는지를 밝혀내는 일은 단순하다. 타당한 하나의 진화적 집단은 특정한 한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해야 하며, 다른 것은 하나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 자, 그러면 "누가 누구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가?"라는 질문을 살펴보겠다.


종종 우리는 생물의 외모에 현혹되어 생물 간의 관계를 오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개와 달린 설치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박쥐의 특징은 실제로는 낙타와 훨씬 더 가깝고, 고래는 실제로는 유제류 (발굽이 있는 동물로, 사슴이 속한 과)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소, 연어 그리고 폐어를 셋 중에서 나머지 둘과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연어다. 폐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폐가 있고, 둘 다 후두개가 있으며 심장의 구조 또한 유사하다. 비늘이 있고 물에서 산다는 사실 이외에는 연어와 폐어보다는, 폐어와 소가 진화적으로 훨씬 더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룰루는 직접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찾아가 자신을 안내해 준 분류학자에게 질문한다. "어류가 존재하나요? 그러자 반세기동안 분류학자로 일해온 데이브 스미스는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말 몇 마디를 뱉어내다가 결국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인정했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물고기"라는 생명체들의 수많은 차이들을 덮어버린다. 조던이 평생에 걸쳐 증명하고자 했던 생명의 사다리는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어류라는 생명체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 한꺼번에 깎아내리려고 했지만 "어류"라는 범주 내에는 수많은 서로 다른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책은 마지막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 사건은 룰루가 물고기라는 범주를 포기하게 되면서, 즉 세상을 조금씩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얼굴은 반짝이로 뒤덮여있었다. 나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키가 작았다. 여자였다. 이런 여러 가지는 "짝"에 대한 내 기준에 맞지 않았다. 만약 내가 여전히 그 곱슬머리 남자에 집착하고 있었다면 그녀를 놓쳤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이건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키스하는 것은 이미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듯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남자를 필요로 한다고 확신했다. 내 영혼을 진정시키고, 이 크고 나쁜 세상에 맞서 내가 작고 보호받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줄 남자를...(중략) 어느 여름밤, 함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갑자기 그녀가 "당신의 섹슈얼리티를 존중해"라고 말했다. 내가 양성애자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펜으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버뮤다로 가는 티켓을 샀다.. (중략) 수영을 하며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여기서 나는 또 나 좋을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가 스노클 마스크 속에서 히죽거리며 활짝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거기 그들이 있었다. 아직 내가 이름도 모르는 존재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피부 아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나와 훨씬 더 비슷한 내장기관이 있다는 것. 나와 똑같은 이온이 흐르고 있는 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류가 아니라는 것.. (중략) 그녀가 청록색 삼각 수영복을 다리 사이로 빼내고 나를 향해 헤엄쳐 왔다. 완전히 자유로워져서, 개구리처럼 발차기를 하며, 그저 나에게 보여주려고.. 투명한 스노클을 통해.. 보여주려고. 그때 나는 이제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사람이 없는 인생은 결코 원하지 않아.'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체격이 아주 작고,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리며, 자전가 경주에서 나를 이기고, 툭하면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중략) 그 일이 다 끝난 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라디오에 출연했다.. 백인은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그것은 "그냥 과학의 문제"라고 그는 킬킬 거리며 말했다.


이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있다.

이 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

                                                                     - 본문 314 - 356페이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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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우리는 어떻게 잘못된 분류를 하게 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내면의 망치를 꺼낼 수 있을까?


본문에서 나오는 잘못된 분류에 대하여

"분류"는 이 책의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다. 크게는 세 가지 개념에 대한 분류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분류, 두 번째는 어류에 대한 분류, 마지막으로 성 정체성에 대한 분류를 이야기하고 있다. 위 세 가지 개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룰루는 인생의 진리를 쫓아가면서 앞서 말한 개념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즉 애초에 잘못 분류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주에 비해서 인간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는 없다고 분류하였다. 룰루는 이 사실이 무척 괴로웠고 정말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끔찍한 고통을 겪고도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애나를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우주의 입장에서는 인간은 정말 작고 의미 없는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우생학자들의 입장에서 애나는 박멸해야 하는 열성 유전자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서 애나는 사랑스러운 가족이자 친구였던 것이다. 결국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답이었다. 우주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는 게 한 생명의 가치였기에 그 생명은 결코 의미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물고기에 대한 분류도 잘못되어 있었다. 조던은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어류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서 분류했지만 알고 보니 "물고기"라는 단어 아래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룰루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어류라는 범주를 부수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는 자신이 처음에 존경했던 조던이 숨을 거둘 때까지 인정하지 못했던 진실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과학의 진리를 깨닫고 나니 룰루는 자신에 대한 진실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룰루는 어렸을 적에 해변가에서 만난 여자아이와 관계를 맺었지만 그녀는 그 사건을 일종의 사고로 치부하였으며 자신은 남성만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그동안 스스로를 잘못된 범주 속에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룰루는 그녀의 성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분류를 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잘못된 분류를 하게 되는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에게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듯한 충격을 주었다. 나는 그동안 자신 혹은 타인을 잘못되게 분류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예를 들어,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항상 사업가가 되고 싶었고 책장에는 항상 성공한 경영가들에 관한 책들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내가 열광했던 게 사업이 아니라 그들의 스토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 


고등학생 때 제네럴 일렉트의 전 CEO 잭웰치의 자서전 "위닝"을 읽고 나는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고 무려 12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경영학과에서 배우던 것들, 즉 회사를 차리고, 인재를 채용하고,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재무제표를 분석하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일에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진짜 관심 있었던 건 뛰어난 경영가들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세상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었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나의 눈을 반짝이게 했던 건 역사, 철학, 미술, 영화, 소설 등 세상에 관한 수많은 재미난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게 사업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서른 살이되서야 깨달았다. 


잘못된 분류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를 부정하는 것은 내 존재와 지금까지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친구가 나에게 사업가는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고 했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내가 사업가와 맞지 않는다거나 재능이 없다고 하는 건 아주 모욕스러운 말이었기에 나는 진실을 마주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사업 쪽의 재능이 없어서 스스로 괴로워했다. 


우리는 어떻게 망치를 꺼낼 수 있는가?

내가 존경하는 사업가 스티브잡스는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그것들은 어쩌면 이미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고 있습니다. 아직 못 찾았다면, 정착하지 말고 계속 찾으세요. 


우리는 직감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잘못된 범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귀기울여야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내면의 망치를 꺼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나는 주로 책이나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데 나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던 메시지들은 모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네가 파란 알약을 선택하면, 이야기는 끝나고 너는 너의 침대에서 일어나서 네가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을 믿게 된다. 네가 빨간 알약을 선택하면, 너는 이상한 세계에 남게 되며, 나는 토끼의 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줄 것이다" -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메트릭스" 중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중


"나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군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 황동혁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중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 " -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



위 대사들의 모두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현재 본인이 존재한 세상에 대해 의문을 갖고 범주를 부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본능적으로 스스로가 잘못된 분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비슷한 메시지들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어떤 영화나 소설, 어떤 경험이나 사건, 인물, 취미, 주제, 행위 등에 대해 마음이 가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답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가는 주제들이 없다면 아직 망치를 꺼낼 준비가 안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마음곳 어딘가에 존재할 망치를 찾아야 한다. 


우리를 옭아매던 관념들을 망치로 부수는 순간에야 우리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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